징역 12년 확정받고 또 법정 섰다…전 여친 두개골 함몰시킨 남성에게 날아온 청구서
징역 12년 확정받고 또 법정 섰다…전 여친 두개골 함몰시킨 남성에게 날아온 청구서
이별 통보에 망치·식칼 챙겨 찾아간 전 남친
형사재판 공탁금 5천만원, 민사 배상액 갈랐다

전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공격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A씨가 민사에서도 32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셔터스톡
"택배가 왔으니 받아 가라."
2024년 5월 18일 새벽 2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택. A씨는 3년 8개월을 사귀다 두 달 전 헤어진 전 여자친구 B씨(여·23)에게 거짓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A씨의 배낭 속에는 42cm 길이의 망치와 32cm 식칼이 들어 있었다.
B씨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악몽은 시작됐다. A씨는 망치로 B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고, 피를 흘리며 집 안으로 피신한 B씨를 쫓아들어가 무자비한 공격을 이어갔다.
이 잔혹한 살인미수 사건은 징역 12년형이라는 형사 판결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법적 다툼은 끝이 아니었다. 감옥에 갇힌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보낸 '민사 소송' 청구서가 있었다.
형사 재판에서 확정된 징역 12년, 그리고 이어진 민사 법원의 3200만 원 배상 판결. 이 두 숫자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배신감 느꼈다"… 망치 들고 찾아간 그날 밤
A씨의 범행은 치밀했다. 1억 원의 투자 손실로 빚더미에 앉고 가족과 불화까지 겹치자, 그는 자신의 불행을 이별을 통보한 연인 탓으로 돌렸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그는 고향 집에서 흉기를 챙겨 서울로 올라왔고, PC방과 모텔을 전전하며 기회를 엿봤다.
범행 과정은 엽기적이었다. 망치 공격을 받은 B씨가 머리를 감싸 쥐며 "119를 불러달라"고 애원했지만 A씨는 거절했다. 심지어 다량의 출혈로 오한을 느낀 B씨가 "추우니 안아달라"고 하자, 잠시 안아주는 척하다가 갑자기 팔로 목을 졸라 기절시키기까지 했다.
B씨는 두개골이 함몰되는 등 전치 5주의 중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해 직접 119에 신고하며 목숨을 건졌다.
법원 "간호사 꿈꾸던 피해자 인생 짓밟아"… 징역 12년 확정
1심 법원(서울서부지법 재판장 배성중)은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 도구를 사전 준비한 계획적 범행이며, 피해자가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 상황에서도 구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고, 형사 공탁금을 걸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2심 법원(서울고등법원 재판장 이재권)의 판단도 냉정했다.
특히 피해자 B씨의 사연이 양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되려던 B씨는 이 사건 후유증으로 합격했던 병원 근무조차 어려워지는 등 꿈이 좌절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민사로 이어진 심판… "치료비·위자료 물어내라"
형사 재판이 끝난 후, B씨 측은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 금액은 치료비 약 260만 원과 위자료 1억을 합친 1억 260여만 원이었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징수금을 냈으니 치료비는 배상된 셈"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민사 재판부(서울서부지법 유동균 판사)는 이를 일축했다. "피고(A씨)가 공단에 낸 돈은 공단이 부담한 돈을 구상해 준 것에 불과하다"며 원고(B씨)가 직접 지출한 치료비 261만 원 전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억 청구했는데 3000만 원 인정?… 형사 공탁의 딜레마
쟁점은 위자료였다. B씨는 1억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3000만 원만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총인용 금액은 약 3260만 원이 됐다. 왜 위자료가 대폭 깎였을까. 역설적이게도 형사 재판 과정에서 A씨가 걸었던 공탁금 때문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형사 재판 당시 B씨 앞으로 5000만 원을 공탁했다. 비록 B씨가 수령을 거부했지만, A씨는 이 돈을 다시 회수할 수 없도록 '회수제한 신고'를 해둔 상태였다.
민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며 "형사 공탁금 5000만 원은 손해배상금의 일부로 지급된 것으로 보아 위자료 산정에 참작한다"고 밝혔다. 즉, 이미 5000만 원을 준 셈이니, 이를 고려해 추가로 3000만 원의 위자료만 더 지급하라는 취지다.
결국 A씨는 12년의 수감 생활과 함께, 이미 공탁한 5000만 원에 더해 민사 판결금 3260만 원까지, 총 8260만 원 이상의 금전적 대가를 치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