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4)] '현대판 분신술' 대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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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4)] '현대판 분신술' 대리 제도

2019. 10. 02 12:26 작성
호문혁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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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신 하는 사람 '대리인'의 모든 것

한국에 있는 나 대신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리인' 이다. /셔터스톡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읽은 지 하도 오래돼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국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적과 싸우다가 머리에서 털을 하나 뽑아 훅 부니까 수많은 손오공이 생겨나서 싸움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도 알고 보면 이런 복제 손오공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바로 대리인이다.


민법상 대리제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법정대리와 임의대리가 그것이다. 제한능력자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기 위한 대리인이 법정대리인이다. 미성년자를 위한 친권자나 후견인, 성년후견인은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이 된다. 그리고 한정 후견인이나 특정 후견인도 법원으로부터 대리권을 부여받으면 법정대리인이 된다. 이러한 법정대리인의 특색은 대리권이 법률의 규정이나 법원의 재판으로 수여된다는 점이다. 법정대리는 사적 자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활하게 법률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이므로 ‘사적 자치의 보완’의 역할을 한다.


임의대리는 본인의 의사표시로 다른 사람에게 대리권을 수여하여 이루어지는 대리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매매에서 본인 대신에 계약을 체결하도록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면 그 다른 사람이 매매계약의 대리권을 갖게 된다. 보통은 이처럼 본인이 대리인과 일정한 사무의 처리를 위임하는 위임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터잡아 대리인에게 대리권을 수여 한다. 임의대리는 본인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무를 대리인을 시켜서 수행할 수 있으므로 그만큼 본인의 활동 범위가 확장된다. 본인이 미국과 중국, 독일, 인도, 이집트 등, 세계 곳곳에 대리인을 두면 손오공이 신통을 부리듯이 본인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그래서 임의대리는 ‘사적 자치의 확장’을 위한 제도라고 한다.


기업의 활동영역이 전 지구촌에까지 확대된 것의 일등 공신은 '대리 제도' 인지도 모른다 /셔터스톡


이처럼 사적 자치를 보완하거나 확장하는 대리제도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본인과 대리인, 상대방이다. 임의대리를 예로 들어보자. A가 C로부터 과수원 땅을 매입하려고 하는데, 직접 C와 흥정하고 계약을 할 수가 없으면 B에게 과수원 땅 매입에 관한 일을 처리하라고 위임(계약)을 하고, 그 사무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 한다. 그러면 B는 A가 수여 한 대리권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의사에 따라 매도인 C와 흥정하고 계약을 체결하는데, 계약 당사자는 실제로 행위를 한 B와 C가 아니라 A와 C가 된다. 즉, A는 매수인, C는 매도인이 되고, 그에 따라 A는 C에게 과수원 땅의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청구할 권리를 갖고 C에게 매매대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 C는 A에게 매매대금 지급을 청구할 권리를 갖고 과수원 땅의 소유권을 넘겨줄 의무를 부담한다. 간단히 줄이면, A는 B에게 대리권을 수여 하고 B는 자기의 의사에 따라 A의 이름으로 C와 법률행위를 하고, 그 효과는 A와 C가 받는다. 이것이 대리제도의 기본 틀이다.


그러나 대리관계에서 대리인이 일정한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대리권에 흠이 있는 경우이다. 대리권 없이 한 대리행위가 전형적인데, 이를 ‘무권대리’라고 한다. 위의 예에서 A가 대리권을 주지 않았음에도 B가 대리인 행세를 하여 C와 계약을 체결한 경우이다. 이때 만일 A가 그 계약을 추인하지 않으면 계약은 A에게는 무효가 된다. 그러면 C가 B를 상대로 계약 내용대로 과수원 땅의 매입을 청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는 것 같은 겉모습을 갖추었지만 실제로는 대리권이 없는 경우도 있다. 위의 예에서 (1) A가 B에게 대리권을 주었다고 C에게 알렸지만 실제로는 대리권을 수여 하지 않은 경우와 (2) B가 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대리행위를 한 경우, (3) 대리권이 소멸된 뒤에도 B가 대리행위를 한 경우 등이 있다. 이러한 경우를 ‘표현대리’라고 한다. B에게 대리권이 있다는 겉모습이 A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경우에 상대방인 C가 B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면 A가 책임을 진다.


어떻든 요새 세상에서는 대리제도 덕분에 웬만한 사람, 특히 기업은 모두 손오공의 신통력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기업의 활동영역이 전 지구촌에까지 확대된 것의 일등공신이 이 대리제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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