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외부에 알리지 마라" 샤넬의 비밀유지서약서⋯법적 효력 없다, '이 경우' 빼고
"성추행 외부에 알리지 마라" 샤넬의 비밀유지서약서⋯법적 효력 없다, '이 경우' 빼고
회사의 '주요 영업비밀' 유출 금지를 위해 작성하는 비밀유지서약서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요구한 샤넬코리아, 법적으로 문제없을까

10년간 10명. 샤넬코리아의 한 간부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피해 직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요구해 더 논란이 됐다. 이런 사측의 서약서 작성 요구는 문제없는 걸까. /샤넬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근로자와 기업 간에 작성되는 '비밀유지서약서'.
그런데 이 서약서에 "직장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기면 어떻게 될까. 피해자들은 여기에 따를 의무가 있을까.
KBS 보도에 따르면 샤넬코리아 소속 40대 간부 A씨는 지난 10년 간 직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10명. '포옹 시 가슴 밀착', '악수할 때 손바닥 긁기', '(A씨의) 가슴근육 만져보라고 강요하기' 등이 피해 내용이다.
10년간 10명이라는 피해 규모도 규모지만, 사건이 불거진 뒤 샤넬코리아 측이 보인 대응이 더 논란이 됐다. 피해 직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요구해서 이른바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로톡뉴스는 변호사들과 함께 직장 내 성추행 피해자들이 이같은 비밀유지서약서를 따를 의무가 있는지 검토해봤다. 그 결과 "작성할 의무도 따를 의무도 없지만, '이 경우'는 예외가 적용돼 "따라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내용을 정리해봤다.

변호사는 성추행 피해를 입은 직원들이 회사의 요구에 따라 '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비밀유지서약서에서 보호하는 비밀은 '회사의 영업비밀 혹은 영업상 주요한 자산'과 관련한 비밀이어야 하는데, 회사 간부의 성추행 행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의 제2호에 따라 '영업비밀'은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여야 한다는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무법인 최선의 정다은 변호사는 "직원이 상사로부터 강제추행 피해를 입은 사실이 회사의 영업비밀 또는 영업상 주요한 자산과 관련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피해자가 비밀유지서약서를 쓸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 직원들이 회사의 요구에 따라 쓴 '비밀유지서약서'가 실제로 법적 효력도 갖게 될까.
정다은 변호사는 "효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 이유로 "비밀유지서약서가 법적으로 유효하기 위해서는 ①(비밀성을 잃지 않는 한도에서) 가능한 구체적으로 영업비밀을 특정해야 하고, ②금지하는 영업비밀 유출행위를 특정해야 하며, ③직원이 비밀유지계약서의 내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그 내용을 이해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경우 "상사의 성추행 행위가 애초에 기업의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을 확률이 크고, 직원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회사와의 비밀유지서약서는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정 변호사는 "피해직원들이 합의금을 받는 등 사측과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비밀유지서약의 내용이 일종의 '합의서'로서 기능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직원들이 회사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그 대가로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했다면, 법적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밀유지서약서가 법적 효력 여부를 떠나서, 이것을 작성하도록 한 샤넬코리아 측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순 없을까.
정 변호사는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한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샤넬코리아가 피해자들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한 사실이 있다면 강요죄를 검토해볼 수 있다.
정 변호사는 "서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식의 협박이 있었다면, 형법상 강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형법 제324조 제1항에 따라 폭행 또는 협박으로 누군가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