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모 삼킨 김포공항역 승강장 틈…전치 3주에 철심까지, 공사에 책임 물을 수 있을까
80대 노모 삼킨 김포공항역 승강장 틈…전치 3주에 철심까지, 공사에 책임 물을 수 있을까
"발 빠졌는데 스크린도어 닫혀"
법조계 "공사 측 배상 책임 커"

사고가 발생한 서울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의 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새(왼쪽)와 허벅지와 종아리 부위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은 피해자 모습(오른쪽). /A씨 인스타그램
지난 3월 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김포공항역에서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팔순의 노모가 열차에 오르려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 넓은 틈으로 하반신 전체가 빠져버린 것이다.
곧이어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려는 찰나, 주변 승객들이 사력을 다해 노모를 끌어올리고 열차 출발을 막은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피해자의 자녀인 A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체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고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며 "오랜 항암 치료로 조심해야 할 상황에 척추에 철심까지 여럿 박혀 있어 큰 병원 예약을 잡아둔 상태"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A씨가 주말에 직접 찾아간 사고 현장은 270mm 신발이 다 빠지고도 남을 만큼 넓은 간격을 보였다.
로톡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피해 노모는 사고 직후 생사를 오가는 공포와 수치심에 자식들이 놀랄까 봐 일주일 가까이 사고 사실을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문이 스르르 닫히고 몸은 안 빠져나오는데, 주변 사람들이 양쪽에서 끌어당겨 준 덕분에 겨우 빠져나왔다"며 "진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려 고맙다는 인사만 남긴 채 정신없이 열차에 탔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실제로 피해자는 현재 엉덩이부터 이어지는 극심한 통증으로 신경 주사 치료를 거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대기 중이며, 밤마다 식은땀을 흘리는 등 심각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역이 곡선 구간에 위치해 유독 틈이 넓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16년에는 승객이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참사까지 발생했던 역이라는 점이다.
A씨는 "사망 사고가 났던 곳인데도 안내 표지만 붙여두고 방치하는 게 맞느냐"며 공사 측의 안전 불감증을 강하게 비판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사고 직후 서울교통공사의 대처다. 피해자는 사고 발생지인 김포공항역이 아닌, 도착지인 까치산역에 가서야 역무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A씨는 "공사 배상팀의 연락은 사고 발생 2일 뒤에야 왔다"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비 영수증을 챙겨오면 보상해주겠다고 안내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생사를 오간 끔찍한 사고, 피해 가족은 지하철 공사를 상대로 어떤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을까.
장애인·노약자 이용하는 공공시설, 더 엄격한 안전 설비 갖춰야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측의 '영조물 관리상 하자 책임'과 '불법행위 책임'을 무겁게 물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철 승강장은 일반 국민이 널리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인 만큼, 다른 공공시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 설비와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은 과거 유사한 지하철 발 빠짐 사고 재판에서 "승강장은 신체 건강한 정상인뿐 아니라 장애인, 노약자 등 위험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의 이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서울고법 2004나80337).
또한 "승강장을 관리하는 측은 승객이 추락하지 않도록 지도하거나 사고 발생 시 신속한 조치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서울남부지법 2014가단9810).
특히 이번 사고가 발생한 역은 곡선 구간으로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구조적으로 넓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철도건설규칙에 따르면 승강장은 직선 구간에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득이하게 곡선 구간에 설치할 경우 추가적인 안전 조치가 강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공사 측은 물리적인 안전장치 보강 없이 단순 안내 표지만 설치해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사 측의 관리상 하자를 입증하는 데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발 빠짐 사고 시 승객의 부주의(과실)를 이유로 배상액이 깎이는 '과실상계'가 적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의 경우, 피해자가 고령이라는 점, 정상적인 승차 과정에서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피해자의 과실 비율은 매우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치료 끝난 뒤 손해배상 청구해야 유리
그렇다면 피해 가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증거 확보다. 통상 이런 사고에서는 현장 사진이나 당시 상황이 담긴 역내 CCTV 영상, 목격자 진술을 발 빠르게 모으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피해자 가족은 신속하게 초기 대응에 나섰다. 사고 직후 피해자의 남편이 직접 역을 찾아가 CCTV를 확인하며 공사 측의 사과를 받았고, 핵심 증거인 영상이 일정 기간 후 자동 삭제되는 것을 막고자 이미 공사에 영상 보전 요청까지 마친 상태다.
이에 더해 사고 당시 도움을 준 승객들의 연락처를 추가로 확보하고, 병원 진단서와 의무기록, 치료비 영수증 등 의료 관련 서류를 꼼꼼히 챙겨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객관적 증거가 모두 갖춰지면, 피해 가족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실질적인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구체적인 청구 범위에는 지금까지 발생한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 개호비(간병비)가 포함된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매일 밤 시달리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에 대한 정신적 위자료 역시 주요 청구 대상이 된다.
다만, 현재 피해자가 척추 철심 수술 등으로 추가적인 정밀 검사와 치료가 예정되어 있는 만큼, 섣불리 합의에 나서기보다는 손해 규모가 전체적으로 확정된 이후에 배상액을 산정하여 내용증명 발송이나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하다.
아울러 2016년 해당 역에서 발생했던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관련 기사나 판결문을 확보해 둔다면, 공사 측이 과거 중대 재해 이후에도 여전히 안전 불감증을 안고 있다는 점을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손해배상 청구와 별개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권익위원회나 국토교통부에 고충 민원을 제기해 근본적인 안전 시설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적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이내에 행사해야 하므로 시효 관리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