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제추행으로 재판에 선 외국인⋯변호인은 왜 '신발'에 집중했을까
[단독] 강제추행으로 재판에 선 외국인⋯변호인은 왜 '신발'에 집중했을까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선 몽골 국적의 외국인
"성적 목적이 있었다" vs. "없었다" 재판의 쟁점⋯변호인, 문화적 차이 설명하며 변론
국민참여재판 이끈 조휴옥 부장판사 "그런 말 증인에게 묻지 말아라" 제지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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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몽골의 문화, 특히 '신발 문화'에 대한 설명이 장시간 이어졌다. 대체 어떤 이유였을까. /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10년 동안 재판 통역을 했는데, 이렇게 변호사가 준비를 많이 한 재판은 처음 본다."
지난 23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 몽골 국적 피고인 A(37)씨의 통역을 맡은 통역사는 이날 열린 재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재판 동안 피고인 측 변호인은 수십 페이지 분량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피고인은 죄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자료는 몽골이라는 나라에 대한 설명, 그중에서도 몽골의 문화적 특징을 자세히 담았다.
변호인은 "이번 사건은 문화 차이에서 일어난 실수"라며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 '문화 차이' 핵심에 신발이 있었다.
피고인 A씨는 20대 피해자 두 명을 '강제추행' 했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에 섰다. 사건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안산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피해자 신씨는 잠시 가게를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A씨와 마주쳤다. A씨도 출입문 밖에 있었는데, 신씨가 가게에 들어서려던 순간 A씨도 문에 다가서며 동선이 엉켰다. A씨가 문을 열고 이에 신씨가 먼저 들어갔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신체 접촉이 있었다. 허리에 손이 닿은 것.
다만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큰 마찰이 없었다. 문제가 커진 건 이 일이 있고 난 뒤 약 20분 후였다. 이번에는 신씨의 친구 백씨와 신체 접촉이 있었다. 복도에 있던 백씨에게 A씨는 다가가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이에 백씨는 "왜 이러시냐"고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A씨가 팔을 뻗었는데, 몸을 돌린 백씨의 배 부위에 그 손이 닿았다. 백씨는 이에 바로 "왜 만지냐"라고 말하며, A씨의 손을 쳤다. 20분 사이 두 번의 신체접촉이 발생한 것이다.
백씨와 신씨는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신체가 닿은 건 사실이지만 추행의 목적이 아니었다"고 항변했지만, 강제추행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사건은 수원지법 제15형사부(재판장 조휴옥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재판의 핵심은 "추행을 목적으로 한 신체 접촉이 있었느냐"는 것으로 모아졌다. CC(폐쇄회로)TV에 담긴 영상을 통해 피고인의 손이 두 피해자의 몸에 '닿은' 것은 확인됐지만, 실제로 '만지는' 행위까지 했는지는 정확히 판가름할 수 없었다.

이 날 A씨를 변호하기 위해 고소파크 법률사무소 서상윤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제2국제이사)와 법률사무소 글로벌의 박범일 변호사가 나섰다.
변호인들은 "추행 목적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몽골의 문화를 장시간 설명했다. 이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은 총 다섯 부분으로 이뤄졌는데, 서 변호사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세 번째 파트였다. 제목은 '한국과 몽골의 문화 차이'.
모두진술에서 서 변호사는 "몽골 문화의 핵심은 신발 문화에 있다"고 말했다.
"몽골 사람들은 신발을 제대로, 깨끗하게 신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라며 "몽골 여성들은 신발을 깨끗이 신는 남자들을 보며 정직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몽골의 문화가 이 사건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첫 번째⋅두 번째 신체 접촉이 있었던 때는 A씨 동선에 여성들이 있었던 상황이었다"며 "이때 A씨가 신발을 밟거나 밟히지 않기 위해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손을 뻗은 것"이라는 취지로 변론했다. "자기 뒤꿈치에 신발이 밟히지 않고 (상대방 신발을) 밟지 않기 위해서 살짝 손이 나간 것"이라고도 말했다.
즉, A씨가 본인과 신씨 그리고 백씨의 신발을 밟거나 밟혀 더럽혀지지 않도록 손을 뻗다가 다른 사람의 몸에 손이 스치는 실수가 벌어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최후변론을 맡은 박범일 변호사도 문화적 차이로 벌어진 일일 뿐,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추행을 범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예인 수지 사건으로 운을 뗐다. 박 변호사는 "2013년, 한 행사에서 사회자가 수지에게 위험할 수 있으니 뒤로 나오라는 취지로 팔을 뻗었는데 성추행을 했다는 오해를 샀다"며 "A씨 역시 본인 딴에는 매너 있는 행동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눈에 띄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재판장으로 앉은 조휴옥 부장판사가 재판 중 몇 차례나 변호인과 검사의 말을 끊으며 "그런 질문은 하지 말라"고 중단한 것.

조 부장판사는 증인 심문 진행을 위해 변호인이 질문을 하려 하자, 손을 들어 "잠깐만 기다리라"고 제지했다. 그의 손에는 변호인으로부터 미리 받은 질문지가 있었다.
그리고 "질문지 15항에 '(피해자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으로'라고 나와 있는데, 이 단어를 빼라"라고 지시했다.
이후에도 이런 제지는 여러 번 더 나왔다. 변호인이 피해자이자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백씨에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려 하자,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조 부장판사가 개입했다.
"그건 좀."
웃는 얼굴이었지만 단호한 어투로 말을 끊었다. 검사의 질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판검사가 피고인 측에 선 몽골인 증인에게 "몽골에는 모르는 여자 허리를 만지는 문화가 있냐"고 묻자, 곧바로 "(그런 것은) 묻지 말라"고 질문을 멈추게 했다.
성적 목적 접촉이 아니었다는 A씨 측 주장과, 성적 목적의 접촉이 맞는다는 검사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검사는 피고인 A씨에게 벌금 500만원과 3년간의 취업 제한을 구형했고, 배심원 평결이 시작됐다.
외국인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강제퇴거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무적으로는 벌금형을 받아도 추방된다. 보통 300~500만원선의 벌금형이 나오면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출국명령 처분을 내린다.
다만, A씨는 액수와 상관없이 벌금형을 받으면 추방될 확률이 높았다. 성폭력 범죄였기 때문이다.
오후 7시 반에 재판이 종료된 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오후 11시. 선고 결과가 나왔다. 조 부장판사는 "배심원은 두 사건 모두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결정을 내렸다"고 알렸다.
"증거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된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증인으로 나왔던 피해자 중 한 명도 재판 도중 뒤늦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재판 내내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앉아 통역을 귀 기울여 듣던 A씨는 선고를 받고 연신 배심원들과 변호인들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