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던 중 준 돈, 헤어지면 끝? 법원 "연인 사이라도 3,200만 원은 빚이다"
사귀던 중 준 돈, 헤어지면 끝? 법원 "연인 사이라도 3,200만 원은 빚이다"
"선물이었다" 주장한 전 연인
법원 "금액 크고 사업 목적이면 갚아야" 판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연인 관계에서 오가는 금전은 때로 사랑의 증표로 여겨지지만, 이별 후에는 가장 치열한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사랑해서 그냥 준 것"이라는 주장과 "잠시 빌려준 것"이라는 주장이 맞설 때, 법원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까. 최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수년간 교제했던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 수천만 원의 금전 거래를 단순한 '선물'이 아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으로 규정했다.
10개월간 12차례 송금된 3,200만 원의 행방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고 A씨와 피고 B씨는 수년 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였다. A씨는 2011년 10월 26일부터 2012년 8월 1일까지 약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총 12회에 걸쳐 B씨에게 합계 32,603,540원을 보냈다.
당시 두 사람은 별도의 이자나 언제까지 돈을 갚겠다는 변제기를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이후 관계가 끝난 뒤 A씨는 이 돈을 돌려달라며 대여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B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인 관계에서 호의로 주고받은 '증여'일 뿐이지 빌린 돈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또한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말한 적은 있으나, 이는 단순히 호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 법적인 변제 의무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맞섰다.
법원이 '사랑의 선물'로 인정하지 않은 3가지 이유
하지만 서울북부지방법원(2022가단6000)은 B씨의 주장을 물리치고 이 돈의 성격을 '대여금'으로 판단했다. 재판부가 연인 사이의 금전 거래를 단순한 증여로 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금전 지급의 횟수와 금액이다. 10개월간 12차례에 걸쳐 3,200만 원이 넘는 돈이 오간 것은 통상적인 연인 사이에서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선물이나 생활비 수준을 명백히 벗어난다고 보았다.
둘째, 금전 지급의 목적과 경위다. B씨는 당시 자신의 개인 사업체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이전하는 과정에서 A씨로부터 금전적인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법원은 이를 단순한 호의가 아닌 사업적 필요에 의한 자금 융통으로 판단했다.
셋째, 피고 스스로 변제 의사를 밝힌 점이다. B씨가 과거 A씨에게 돈을 갚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던 정황은 이 돈이 애초에 돌려받는 것을 전제로 한 '빌려준 돈'이었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가 됐다.
"이미 일부 갚았다" 피고 주장 수용... 최종 판결은
다만 재판 과정에서 B씨가 이미 A씨에게 일부 금액을 송금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법원은 B씨가 2011년 12월 14일부터 2017년 7월 14일까지 합계 9,901,400원을 A씨에게 변제한 사실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전체 대여금 32,603,540원 중 이미 갚은 돈을 제외한 22,702,140원을 최종 변제 금액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북부지방법원은 "피고는 원고에게 남은 차용금 22,702,14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원고 A씨는 당초 연 12%의 이자 약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3,130만 원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자 약정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아 나머지 청구는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연인 관계라 할지라도 고액의 금전이 사업적 목적으로 오갔다면, 명시적인 차용증이 없더라도 정황 증거를 통해 충분히 대여금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