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투표지 '부욱' 찢었는데, 감옥 가게 될까?⋯판결문 17건 전수조사해 봤다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홧김에 투표지 '부욱' 찢었는데, 감옥 가게 될까?⋯판결문 17건 전수조사해 봤다

2020. 04. 16 18:15 작성2020. 04. 17 18:13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 당일, 전국에서 투표지 훼손 잇달아

최근 2년 관련 판결문 17건 전수조사⋯'무죄'는 없었다

법원, "죄질 가볍지 않다"며 선고유예·벌금형·징역형 선고

지난 15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당일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특히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찢은 사건이 많았는데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해봤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당일에도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15일 선거 관련해서 112 신고는 모두 248건이었다. 이중 46건이 투표소 내부의 소란⋅방해 사건이었다.


특히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찢은 사건이 많았다. 울산 남구에서는 도장을 잘못 찍은 60대 남성이 투표지 교체를 거절당하자, 투표지를 찢었다. 서울 용산구⋅관악구에서도 발열 체크와 비닐장갑 착용에 대한 불만이 투표지 훼손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 서울 종로구, 포항 남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투표지를 훼손한 이상 이들은 모두 공직선거법 위반자다. 우리 법은 선거 업무를 방해한 책임을 무겁게 다스리고 있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고의가 드러날 경우 엄중 처벌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실제로 이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로톡뉴스는 최근 2년 판결문을 전수조사했다. 17건 중 10건(59%)은 벌금 250만원 처벌이 내려졌다. 6건(35%)은 실제로 처벌은 이뤄지지 않지만 유죄인 선고유예를, 그리고 나머지 1건(6%)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고의로 투표지 찢으면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는 없었다

공직선거법 제244조에서 "투표지 등을 은닉(隱匿⋅숨김), 손괴(損壞⋅망가뜨림), 훼손(毁損), 또는 탈취(奪取⋅빼앗음)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투표지와 관련한 사실상 모든 행위를 처벌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판례를 보면 고의로 투표지를 찢었다면 '유죄'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우리 법원도 17건의 재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무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우리 법원의 일관된 판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 모두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이 사건 범행은 공직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투표소에서 투표의 평온을 침해하고 선거사무의 원활한 수행을 방해한 것으로서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


"피고인의 범행은 공정하고 평온한 투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투표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비닐장갑을 낀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비닐장갑을 낀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①선고유예 : 실수로 다른 후보자 찍어서 우발적으로 찢은 경우

그렇다면 실수로 잘못 투표해서 우발적으로 투표지를 찢은 경우에도 유죄일까. 유죄는 맞았지만 사실상 처벌이 없는 선고가 나왔다. '벌금형의 선고유예'였다. 선고유예란 유죄는 인정되지만,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


지난 2018년 춘천지방법원은 기표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투표지를 손으로 찢은 사건에 대해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선거의 공정을 해치거나, 선거사무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했다. "별다른 소란행위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지난 2018년 한 해 동안 서울남부지법, 광주지법 목포지원, 춘천지법, 청주지법도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런 판결 태도로 볼 때 이번 총선에서도 '잘못 기표했다'며 투표지를 찢은 80대 할머니 등은 엄벌을 피할 것으로 보인다.


②벌금형 : 행패 부리거나, 관리원 지시 따르지 않은 경우

하지만 단순히 우발적으로 투표지를 찢은 게 아니라면 처벌 수위는 훨씬 올라간다. 투표지를 찢은 데 이어 술에 취한 채 행패를 부리거나, 투표관리원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 모두 25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지난 2018년 부산지방법원 판례다. 당시 피고인은 도장을 잘못 찍어서 투표지를 찢은 게 아니었다. 대신 투표용지에 정당이 2개뿐인 게 화가 나서 투표용지를 찢었다. 당시 피고인은 "내가 사람을 뽑으러 왔지 당을 뽑으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당이 2개밖에 없냐"며 투표용지를 찢었다. 술에 취한 상태였다.


투표관리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8년 창원지법 진주지원 판례다. 당시 피고인은 '기표소에 들어가라'는 투표관리원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화가 나서 "투표 안 해, 투표 안 하면 되지!"라고 큰 소리를 지르며 투표용지 3장을 손으로 찢었다. 고함을 치는 등 소란도 일으켰다.


지난 2018년 인천지방법원 판례도 비슷했다. 당시 피고인은 투표용지를 받고도 기표소로 들어가지 않았다. 데리고 온 아이가 운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장 투표관리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했고, 이후 실제로 기표까지 마쳤으나, 투표관리원이 한 번 더 검토를 요구하자, 그 자리에서 투표지 3장을 찢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반성하고 있고, 선거 과정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의 이유로 벌금을 깎아줬다. 처벌은 모두 벌금 250만원이었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도 투표용지를 찢은 데 이어 선거관리원을 폭행까지 한 서울 용산구 사례 등은 벌금형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③징역형 : 다른 사람의 투표지 찢고, 투표장 밖으로 들고 간 경우

여기까지는 모두 본인의 투표용지 또는 투표지를 찢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투표지를 찢는 등 투표에 간섭했다면 그때부터는 징역형도 각오해야 한다. 지난해 창원지방법원 판결이다.


당시 재판부는 "투표소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에 간섭하고, 투표사무원으로부터 제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따르지 않았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100세가 넘은 어머니가 투표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고령의 어머니를 투표소까지 모시고 왔으나, 정작 어머니가 투표를 마치자 "투표가 잘못되었다. 투표함에 넣으면 안 된다"며 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온 다른 남성에게 투표지를 넘겨줬다.


결국 노모의 투표지는 이 남성의 손에 찢겼다. 당시 투표관리원이 "그 투표지를 들고 가면 고발되니 돌려달라"고 했음에도, 남성은 투표소 밖에서 투표지를 양손으로 찢었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