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하라"⋯만약 폐지되면?
이재명 대통령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검토하라"⋯만약 폐지되면?
헌재 "합헌" 결정에도 대통령 "폐지 검토" 지시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두고 형사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민사로 해결할 일"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형법 제307조 제1항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이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 진실을 말해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당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이 법이 당장 사라질 수 있을까?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린 법을 폐지하는 것이 가능한지, 폐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법적 쟁점을 짚어봤다.
만약 폐지된다면?⋯'미투'는 살고 '사생활 폭로'는 막기 어렵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표현의 자유 확대'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나 직장 내 갑질, 공직자 비리 폭로 등 공익적 고발이 활성화될 수 있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을 위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뚜렷하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보호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행법(형법 제310조)은 진실을 말했더라도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만 처벌을 피할 수 있게 한다. 공익과 무관한 개인의 과거 병력, 채무 관계 등 사적인 약점을 악의적으로 폭로하는 행위를 이 조항이 막아왔다.
만약 이 법이 폐지되면, 공익성이 없는 사생활 폭로도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진다. 특히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은 전파성과 파급 효과가 심각해 사후 피해 회복이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 역시 2021년 합헌 결정 당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입법례와 달리 한국의 민사적 구제방법만으로 형벌과 같은 예방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사 소송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고, 손해배상액도 현실적인 피해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사실적시' 사라지면 다른 조항으로 처벌할 수 있나
일각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사라져도,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307조 2항)가 남아있어 괜찮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려면, 검사가 "적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과 "피고인이 그것이 허위임을 인식했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이는 매우 까다롭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하면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진실인지 허위인지 불분명한 사안의 경우,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해지는 처벌 공백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모욕죄'는 어떨까? 모욕죄(형법 제311조)는 구체적인 사실 적시 없이 "쓰레기", "멍청이"처럼 경멸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 성립한다. 따라서 "A가 과거 횡령을 했다"처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
'합헌' 결정난 법률, 대통령 지시로 폐지할 수 있나
가장 큰 쟁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재는 2021년 2월, 5대 4라는 근소한 차이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합헌' 결정이 난 법을 폐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문제없다. 헌재의 '합헌' 결정은 "이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는 않는다"는 소극적 판단일 뿐, "이 법이 가장 이상적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헌재가 아닌 입법부(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헌재의 결정이 5대 4로 팽팽히 맞섰다는 것 자체가 이 조항의 정당성에 논란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지시는 국회에 입법적 결단을 촉구한 입법정책의 영역이다.
만약 국회가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이 조항은 폐지된다. 다만,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는 것이 아니므로, 과거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람들까지 재심을 통해 구제받기는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