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는 안 되고 'TA'는 된다?…내 맘대로 여권 영문명 못 바꾸는 법적 이유
'YI'는 안 되고 'TA'는 된다?…내 맘대로 여권 영문명 못 바꾸는 법적 이유
'LEE→YI' 바꾸려다 패소
'TAE→TA' 바꾸려다 승소
엇갈린 판결의 결정적 차이는

여권 영문 이름 변경 소송에서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성인의 ‘LEE→YI’ 변경 요구는 기각됐지만, 아동의 ‘TAE→TA’ 변경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연합뉴스
해외여행 필수품인 여권. 그런데 내 이름을 내 마음대로 표기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최근 법원에서는 여권의 로마자(영문) 성명 변경을 두고 흥미로운 두 가지 판결이 나왔다.
첫 번째는 성인 이모씨의 사례다. 이씨는 자신의 여권 로마자 성씨를 'LEE'에서 'YI'로 바꿔달라고 외교부에 신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지만 1심 패소했다. 반면 두 번째 사례인 2020년생 아동 A씨의 부모는 자녀의 이름 중 '태' 자를 'TAE' 대신 'TA'로 쓰게 해달라며 소송을 내 승소했다.
비슷해 보이는 여권 영문명 변경 소송인데, 왜 법원의 판단은 정반대로 갈렸을까.
내 이름표기의 자유, 헌법상 기본권 아닌가요?
이씨의 패소 판결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재판부의 기각 사유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이씨가 표기를 변경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에 현실적인 불편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 이름을 내가 원하는 대로 표기할 권리는 일상적 불편함이 없더라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헌법적 권리가 아닐까?
실제로 그렇다. 성명권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0조(행복추구권)와 제17조(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근거한 독자적인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불편 여부를 따진 이유는, 여권법 시행령이 규정한 예외적 허용 요건 때문이다. 여권 영문명은 국내외 범법자의 해외 도피를 막고 대한민국 여권의 대외 신뢰도를 지키기 위해 원칙적으로 변경이 제한된다.
다만 시행령은 국외에서 이미 다른 영문명을 장기간 사용하여 "변경하지 않으면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변경을 허락한다. 즉, 재판부는 이씨의 헌법상 권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예외 규정(불편함의 정도)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시행령 위헌 주장, 대법원에서는 통할까?
그렇다면 이씨는 "변경 사유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한 여권법 시행령 자체가 위헌"이라며 법적으로 다퉈볼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단, 우리 헌법상 시행령 위헌 여부를 심사할 최종 권한은 헌법재판소가 아닌 대법원에 있다. 따라서 이씨는 진행 중인 행정소송을 통해 대법원의 최종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도 승소 전망은 밝지 않다. 법원은 국가의 외교적 신뢰도와 직결되는 여권 관련 시행령에 대해서는 행정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LEE'는 지고 'TA'는 이긴 결정적 이유
결국 두 사건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은 변경 사유와 최초 발급 여부였다.
이씨는 "1차 여권 발급 시 'YI'로 신청했으나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LEE'로 고쳐 발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이 명시적 동의 없이 임의로 수정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이씨는 이미 수십 년간 'LEE'라는 표기를 써왔기 때문에 최초 발급한 여권의 사용 전이라는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았다.
반면 아동 A씨의 사건은 완전히 달랐다. 부모는 최초 발급 당시부터 'TA'를 신청했다. 발급 기관이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며 'TAE'로 임의 변경해 발급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외국식 이름에서 A는 [æ]로 발음하는 경우도 존재한다"며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æ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A씨는 2020년생 아동으로 이제 막 여권을 처음 발급받는 상황이었다. 재판부는 "'TA'로 변경한다고 해서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 신뢰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내 이름의 영문 표기를 바꾸는 일은 단순한 개인의 자유를 넘어, 국가의 신분증명서가 가진 무게감을 증명하는 엄격한 법적 잣대 위에 놓여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