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 치기? 법이 일반 상식을 따라오지 못하면, 그 법을 고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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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 치기? 법이 일반 상식을 따라오지 못하면, 그 법을 고쳐야죠"

2020. 09. 16 11:29 작성2020. 09. 21 19:27 수정
안세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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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염전 노예' 사건부터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으로 알려진 최정규 변호사

그가 자신을 '변호사' 겸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기존 법이 이렇고, 판례가 이래서 안 된다는 건 리걸 마인드가 아닌 굉장한 게으름"

모두가 "어렵다"며 고개를 젓는 소송에 연거푸 도전장을 내미는 한 변호사가 있다. 원곡 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 이야기다. /서초=조하나 기자

모두가 "어렵다"며 고개를 젓는 소송. "법이 이렇고, 판례가 저래서 절대 안 된다"고 여겨진 사건. 여기에 연거푸 도전장을 내미는 변호사가 있다. "법 이전에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이지만, 어느 날 큼지막한 바위 한 덩이를 쪼갰다. "국가는 '염전 노예' 피해자들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판결을 끌어낸 것이다. 기존 판례와 법령에 집착했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자신을 "변호사이자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최정규 변호사(43⋅원곡법률사무소)의 이야기다. 굳이 직업을 두 개로 말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두 역할을 모두 해보겠다는 의미"이라며 "활동가로서 법에 질문하고, 만약 상식과 맞지 않는다면 그땐 변호사로서 법을 고쳐나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로 소송을 '혁명' 이라고 최 변호사는 표현했다. 혁명처럼 소송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불씨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무엇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법조계와 어울리지 않는 답 같았다. 기적도 있었지만, 실패가 더 많았을 것이다. 괜히 짓궂게 한 번 물어봤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냐.' 최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도 일단 던질 게 있는 것 아니냐."


이 긍정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내려짐에 따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그를 만났다.


Q. '염전 노예' 참상이 드러난 지 6년이다. 그동안 법률 지원으로 수십 명의 지적장애 피해자를 도왔다.

"보람도 있었지만, 사실은 너무 무책임했다고 생각한다. 1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은 피해자가 나중에 노숙인이 돼 돌아왔을 때 그렇게 느꼈다. 법률지원을 통해 '손해배상 소송 결과 1억원이 인정됐으니, 우리 할 일은 끝'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염전에서 탈출시킨 피해자인 만큼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또 다른 피해에 노출되게 했다면 사실상 염전주와 같은 가해자와 크게 다를 게 없지 않으냐. 그런 점에서 법률구조나 지원은 문제 해결에 있어서 아주아주 극소수 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Q. 법률 지원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

"맞는다. 사실 공부가 제일 쉬운 것처럼 '소송'이 제일 쉽다(웃음). 변호사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 활동가의 섬김이 정말 눈물겹다.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사회복지관 등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역할은 전부 활동가가 하고 있다. 이들이 더 조명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실제 본인을 소개할 때도 '변호사 겸 활동가'라고 하고 있다.

"두 역할을 모두 잘해보겠다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장애, 이주민 인권 영역에서 일하다 보면 활동가를 많이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기존 법과 판례에 질문을 던진다. '이 판례는 상식과 맞지 않는데,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고, 도전하는 것이다.


법률가 역시 활동가와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 법과 판례를 '금과옥조'처럼 여길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실제 주장을 펼쳐보는 것. 소송 그 자체가 혁명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활동가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런 상식에 맞게끔 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하지만 대부분의 법률가는 활동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과거 판례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법률가이면서 법률가 '디스'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웃음). 판례를 숙지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냥 판례가 이렇네'하고, 끝내버리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굉장한 '게으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운 것 이상으로는 더 이상 생각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리걸 마인드(legal mind)'라고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격하게 표현하자면 '기득권의 논리에 세뇌당한 것'이라고 본다. 판례와 법 자체가 소위 기득권, 힘 있는 자들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판례가 굳어지는 건 그것 자체로 문제다."


Q. 어떤 이유에서 법이 기득권의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인가.

"대표적인 사례가 '염전 노예'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20~30년 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하고도, 10년치 임금에 대한 부당이득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민사상 소멸시효 규정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넘게 노동력 착취를 당한 지적 장애인이, 그동안 문제 제기를 못 하는 건 당연한 상식 아니겠느냐. 이럴 땐 소멸시효 규정을 제한하는 게 상식인데, 현재 그렇지 않은 판례가 특정 법원이 아니라 전국 법원에서 쏟아지고 있다.


이런 걸 보면서 '법 제도가 힘 있고, 가진 자들을 위해 운영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Q. 하지만 예외를 넓히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적 안정성은 일개 변호사나 활동가가 고려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적 안정성을 걱정할 만큼 이주 노동자, 장애인들의 상황이 느긋하지 않다. 사실 굉장히 다급하다. 당장 오늘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는데, 정당한 임금이나 숙소 제공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분들의 피해를 묵인하고 있는 어떤 제도와 관행들. 지금까지 '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왔으니, 앞으로도 가만히 있자?' 이런 식의 논리는 우리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랑은 조금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법적 안정성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분들이 피해를 빨리 회복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법이 다 문제다'라는 어떤 불온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웃음).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겠다는 몇몇 지점이 있는 것이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나만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법률가라면 모두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판례가 굳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초=조하나 기자
그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판례가 굳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초=조하나 기자


Q. 어째서인가. "모든 법률가는 아나키스트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관련된 것인가.

"좋은 판례도 처음 시작은 누군가의 주장일 뿐이었다. 만약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하지 않았다면 좋은 판례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 말은 소송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기도 하다.


'아나키스트'라고 한다면 부정적으로 보는 분도 계실 텐데, 내가 '폭력으로 뭔가를 점거하자!'는 부류는 아니다(웃음). 어찌 됐든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은 필요하고, 일반 시민들도 국가 권력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배 변호사들을 만날 때도 늘 이런 말을 한다. 스스로 '너무 내 생각이 이상하지 않을까? 전례도 없는데?'라며 겁을 먹기보다는, 그래도 한 번 펼쳐보는 게 변호사로서 특권이고, 법률가로서 자부심 아니겠냐고."


Q.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때가 많을 것 같은데. 활동가와 회의하는 게 회의적인 분위기는 아닌가.

"그렇진 않다. 사실은 법률가끼리 회의를 하는 게 오히려 회의적이다. 기존 법과 판례에 의존하게 돼서 그렇다. 반면, 활동가와 회의를 하면 굉장히 큰 희망을 품고, 용기를 얻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맨날 깨지는 건 아니다(웃음). 그래도 일단 던질 게 있는 것 아니냐."


Q. 15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유혹의 순간은 없었나. 정치권의 러브콜이나, 대형 로펌의 스카우트 등

"내가 정~말 휴대폰에 걸려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부재중 통화도 다시 한번 걸어볼 때가 많다.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런 제안은 없었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섭섭하다는 건 아니다. 자기 역할에 맞는 옷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로서, 활동가로서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역할이 내 옷에 맞는 것 같다. 스카우트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크게 흔들리진 않을 것 같다."


Q. 칼럼에서 법원이나 검찰이 알려주지 않는 사실을 내부고발자처럼 폭로하고 있던데, 걱정되는 점은 없느냐.

"주위에서도 기자님처럼 '법원이나 검찰에 찍히면 어떡하냐' 그런 걱정을 해준다. 그런데 이미 찍혔더라(웃음). 변호사들 사이에서 '법원에 찍힐 수 있다'는 이유로 정말 기피하는 '재판부 기피 신청'도 해보고, 이재용⋅한동훈 말고 장애인 노동 착취 사건에는 왜 수사심의위원회 안 열어주냐고도 해보고(웃음).


이제 와서 '우리 법원, 우리 검찰' 한들, 무슨 소용이겠냐. 내가 할 수 있는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변호사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경험해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폭로하는 게 그렇게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런데도 법조계에서 침묵이 지켜지고 있는 건, '어떤 불이익 때문이 아니라 침묵으로 누릴 수 있는 이익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 변호사는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이 담긴 영상을 공익제보 했다가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서초=조하나 기자
최 변호사는 경찰의 강압수사 정황이 담긴 영상을 공익제보 했다가 최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서초=조하나 기자


인터뷰 직전. 최정규 변호사가 "형사 재판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경찰의 강압 수사 정황이 담긴 영상을 공익제보했다가, 화를 입은 것. 경찰은 해당 영상을 모자이크⋅음성 변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적용했고, 사건을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대한변호사협회 뿐 아니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까지 성명을 내고 이를 비판했다.


Q. 지난주에 법조계가 발칵 뒤집혔다.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자고 일어나니까 하루아침에 내가 경찰의 폭거에 대한 피해자가 되어있더라(웃음). 그런데 이것 때문에 내가 오늘 인터뷰도 최소하고, 두려움에 떨고, 그럴 이유는 없지 않으냐.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밤에 잠도 잘 자고 있다.(웃음)


Q. 그래도 초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할 때가 아니라 몸을 좀 사려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

"내가 처벌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도 좋은 선례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인 내가 이 문제를 눈감는다면, 공익제보를 고민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어떻겠느냐. 시민들이 처벌 등 불이익을 걱정하는 대신 마음껏 공익제보, 신고할 수 있도록 선례를 만들고 싶다.


경찰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사실상 공익 제보를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Q.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한 경찰의 논리가 무엇인가.

"경찰의 논리는 영상을 공익제보할 때 모자이크, 음성 변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에 이건 사실상 공익제보를 막는 조치다. 예를들어, 대통령이 갑자기 나한테 전화로 욕설을 했다고 쳐보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웃음).


그런데 이걸 내가 기자님한테 제보했을 때 목소리를 변조해서 제보하면, 언론에서 이걸 보도할 리가 없지 않으냐. 언론은 '이게 대통령인지, 누군지 어떻게 아느냐'고 할 텐데.


그런데도 경찰이 음성 변조, 모자이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고소하고, 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긴 건 사실상 공익 제보를 막겠다는 의미다.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Q. 이밖에도 거듭된 문제 제기 때문에 '자기 식구 찌른다'는 부담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문제 제기하는 건 '일부 법관', '일부 검찰 등 수사기관'의 부당함에 대한 이야기다. 대다수 법관과 수사기관의 모습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분들은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쪽이 훨씬 많다. 대부분의 선배, 동료, 후배가 공정하게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사안이라서 그렇다. 그러니 내가 법조계에 누를 끼친다기보다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있는 분들의 명예를 세워드리는 것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Q. 법조인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고 하신 것과 관련된 취지냐.

"맞는다. 법조인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일 수밖에 없다. 주연은 다름 아닌 사건 당사자다. 결국 변호사도, 판사도, 검사도 조연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저는 갑자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송치되면서 주연이 됐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웃음). 법조인은 당사자를 옆에서 묵묵히 돕는 게 맞는다.


현재 이 사건 자체도 내가 기소 위기에 처했다는 건 관심을 많이 받았는데, 정작 당사자인 피고인에는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우리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전쟁 때도 폭파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관리되어야 할 저유소가 불씨로 폭파된 건, 관리 부실 때문이지 피고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근거에서다.


나 역시 묵묵히 일하려고 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기자님들이 관심을 갖든, 안 갖든. 시민들이 상식에 맞지 않는 억울한 피해를 당했을 때 조연으로서 지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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