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당한 후 음주운전으로 도망쳤다면…이 여성의 음주운전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성폭행당한 후 음주운전으로 도망쳤다면…이 여성의 음주운전은 '유죄'일까, '무죄'일까
피해 사실 알리며 직접 음주운전 신고⋯음주운전으로 재판 넘겨진 여성
"긴급피난 행위였다"며 무죄 주장⋯검찰 "긴급피난 행위 요건 충족시키지 못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을까, 유죄를 선고했을까

성폭행을 당한 뒤 음주운전을 해 도망치려 한 행위가 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적 드문 산동네의 한 파출소. 새벽 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성폭행을 당해서 도망가는 중이에요. 어쩔 수 없이 음주운전을 하고 있어요. 파출소로 갈게요."
그렇게 잠시 뒤, 겁에 질린 여성 A씨가 정말로 파출소로 도착했다. 한 남성과 술을 마시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경찰은 A씨를 보호했고, 남성을 성폭행 혐의로 수사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성폭행 피해자인 A씨도 수사를 받아야 했다. 혐의도 명확했다. '음주운전'이었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4%, 면허 취소 수준(0.08%)의 약 2배. 만취 상태로 약 5km 거리를 운전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성폭행을 당한 뒤 도망치려 한 행위가 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A씨가 음주운전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다. 법정에서 A씨 측은 '긴급피난' 이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에 쟁점은 '이 음주운전 행위가 긴급피난에 해당하느냐, 마느냐' 였다. 긴급피난이 인정되면 무죄였고, 그렇지 않으면 유죄였다. 우리 형법(제22조)은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에서 이를 피하기 위해 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무적으로 긴급피난이 인정되는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대법원 판례(2005도9396)에 따르면 먼 저 당시 상황이 '현재의 위난(①)'이었어야 한다. 동시에 피난행위가 위난(危難)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어야 하고(②), 그로 인한 이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 우월할 것(③)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사실 지난 1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택시기사의 성폭행 시도를 피하기 위해 B씨가 약 50km 가까이 음주운전을 한 사건에서 당시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검찰 단계의 집행유예다. 재판에 넘겨지진 않지만, 그래도 '유죄'라는 검사의 판단이 전제돼 있다.
즉, B씨의 음주운전이 긴급피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B씨의 경우 장거리 운전이 긴급피난 인정의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운전 중 사고를 낸 점도 고려됐다.
그렇다면 A씨 사건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법원의 판결은 '무죄'였다. 지난해 11월,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형사 7단독 설동윤 판사는 긴급피난을 인정하며 A씨에게 음주운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스스로 음주운전을 신고한 점'을 긴급피난 인정하는 근거로 봤다. 설 판사는 "A씨가 음주운전을 하던 중 단속을 당하게 되자 뒤늦게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리며 음주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 것이 아니다"라며 "처음부터 파출소로 이동하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고, (음주운전 사실을) 스스로 먼저 신고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항소했다. 그러면서 "음주운전을 했을 때는 이미 성폭행이 이뤄지고 난 뒤였다(❶)"고 주장했다. '현재의 위난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다. 또한 "A씨는 (음주운전을 하는 대신) 도보로 현장을 벗어나거나, 112에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게 할 수도 있었다"고 했다(❷). '유일한 수단도 아니었다'는 취지다. 마지막으로 "A씨가 보전받은 이익이 음주운전으로 침해되는 도로교통상 안전이라는 이익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다(❸)"고 했다. 정리하면, A씨가 긴급피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의정부지법 형사 4-1부(재판장 이영환 부장판사)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며, 그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현재의 위난이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성폭행 이후였던 건 맞지만, 당시 A씨는 인적 드문 산 중턱에서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상당한 시간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매우 불편한 상황에 있었다"며 "격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므로 '현재의 위난'에 해당한다(①)"고 판시했다.
'유일한 수단이 아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보를 이용하는 건 추격당할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조난 당할 가능성도 상당했다"며 "경찰이 출동하게 하는 것 역시 피난의 신속성, 정확성,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려면서 A씨의 음주운전이 '유일한 수단이 맞는다(②)'고 했다.
마지막으로 법원은 "A씨가 보전받은 이익이 음주운전으로 침해되는 도로교통상 안전이라는 이익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평가된다(③)"고 판시했다. "A씨는 격심한 고통⋅공포 등에 시달리는 등 구체적인 침해를 받고 있었지만, 도로교통상 안전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익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도로에 인적이 드물었던 점 등도 고려한 판단이었다.
이 판결은 현재 확정됐다. 그 결과 성폭행을 당한 뒤 도망치다 음주운전을 한 A씨는 처벌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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