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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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

2023. 01. 06 11:13 작성2023. 01. 10 11: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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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6, 존 매든 감독

입법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채스테인 연기)이 총기규제 강화 입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반대세력이 그를 의회 청문회장으로 불러낸다. / EuropaCorp

전기통신법을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이 2014년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렸다. 당시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이 한창이던 때라 다소 뜬금없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주민들은 "송전선을 땅으로 묻어달라고 했더니 국회가 이 비용을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 물렸다"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들이 말하는 법률 조항은 앞서 2011년 국회가 전기사업법을 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지자체와 주민이 전선을 땅에 묻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비용은 수익자가 부담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제72조의2 제1항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토지소유자는 전주와 그 전주에 가공으로 설치된 전선로의 지중이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전기사업자에게 이를 요청할 수 있다', 제2항 '제1항에 따른 지중이설에 필요한 비용은 그 요청을 한 자가 부담한다.⋯'이다.


수익자 부담이 자명한 원칙이라 국회가 제2항을 만든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사업자의 로비가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한발 늦었다. 경기는 끝났는데 뒤늦게 심판을 제소하는 모양새가 됐다. 사법분야 전문가들은 "환경단체나 지역주민들은 국회가 법을 손보던 단계에서 강력하게 의사를 전달해 저지하는 게 맞았다"라며 "법률이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한다고 해서 뒤늦게 위헌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라고 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2018년 밀양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이 법률 조항이 전기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데는 입법 로비의 힘이 컸다. 이 과정에서 로펌은 다른 법과의 형평성, 해외 사례 등을 광범위하게 조사해 국회를 설득했다.


로펌들이 입법과정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한 법률 실력에서 시작된다. 법무부에서 입법과정을 담당하는 검사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로펌의 도움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가 크다"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의원들이 얼마나 엉성하게 법안을 만드는지 알게 된다"라고 말한다. 어느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기 위해 납세자가 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 이 법안을 검토한 관련 부처 사람은 "좋은 의도인 것은 알겠지만 절대로 통과될 수가 없었다. 미국법을 그대로 베껴 와서 한국에 도저히 적용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 법안은 별다른 논의 없이 그대로 묻혔다. 의원 개인이 아닌 로펌이 관여했다면 법안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렇다 보니 법제처를 비롯한 행정부까지도 로펌에 법률안 검토를 요청한다. 로펌 변호사들은 "정부가 발주한 사업은 봉사하는 심정으로 헐값에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헐값이 빈말은 아니다. 201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법제처가 대형 로펌에 법안 검토를 의뢰한 사실이 드러났다. 3대 로펌이라는 김앤장·광장·태평양이 2년 동안 107건을 처리하고 받은 비용은 5500만 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헐값을 받고 로펌들이 정부 일을 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로펌은 정부와 국회의 일을 봐주면서 정보력과 네트워크를 더 키운다. 일종의 투자이고 로비를 위한 발판이다. 사법분야 전문가들은 "그 많은 장·차관 출신 로펌 고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만한 것 아니냐"라고 지적한다.


<미스 슬로운>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채스테인 연기)은 입법 로비스트다. 인도네시아 정부 의뢰로 이 나라가 수출하는 팜유에 대한 미국의 관세 인상을 저지한다. 비누에도 쓰이는 팜유지만 빵에 발라 먹는 누텔라에 들어가는 점에 착안해, 누텔라 세금이라고 이름 붙여 분위기를 바꾼다. 비영리재단 이름으로 국회의원을 인도네시아 휴양지로 부른다. 팜유 생산이 환경에 주는 영향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데 굳이 세금을 올려봐야 생필품값만 오른다고 설득한다. 단역배우들을 모아 가짜 시위를 조직하기도 한다.


입법에 성공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은 실시간으로 표를 계산한다. 누구를 당기면 어떤 표가 끌려오는지 분석하고, 협박과 회유도 서슴지 않는다. / EuropaCorp
입법에 성공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은 실시간으로 표를 계산한다. 누구를 당기면 어떤 표가 끌려오는지 분석하고, 협박과 회유도 서슴지 않는다. / EuropaCorp


사실 로펌뿐 아니라 많은 조직이 입법 로비를 벌인다. 로펌은 입법지원 서비스로, 기업은 대관(對官)업무로, 시민단체는 시민운동으로 부를 뿐이다. 우리 편에 유리한 법을 만들겠다는 본질은 같다. 판결은 논리적 정당화를 요구받지만, 입법은 이유가 필요 없다. 판결은 사후적이지만 입법은 선제적이다. 판결은 특정한 사례만을 판단하지만, 입법은 사회를 조직하는 규범이다. 많은 이익집단이 이를 알고 있다. 입법 로비를 하면서, 선거에서 표를 몰아주겠다거나 후원금을 보낸다는 정도는 기본이다. 국회에서 법안의 문제점을 검토하는 전문위원들을 설득하고, 전직 보좌관들을 고용해 의원들에게 얘기를 넣는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움직여 의원을 압박하는 예도 있다.


이렇게 치열한 입법 분야이지만 정작 국회의원 중에는 자기 역할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국정 경험이 없는 진보 정당이 특히 그렇다. 가령 낙태죄에 관한 정의당의 입장은 짧은 시간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제269조와 제270조로 이뤄져 있는데, 2019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조항은 두 가지다. 낙태한 임부를 처벌하는 제269조 제1항과 임부의 촉탁 또는 승낙을 얻어 낙태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는 제270조 제1항이다. 이에 2019년 정의당이 낙태죄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헌재가 지적한 두 조항은 폐지하지만, 나머지 부동의 낙태죄 처벌은 강화하겠다고 했다. 부동의 낙태죄란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 없이 낙태하게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제270조 제2항 등에 있다. 부동의 낙태로 부녀가 상해에 이르면 징역 5년 이하, 숨지면 징역 10년 이하에 처한다. 정의당은 이를 7년 이하와 3년 이상으로 올리자고 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20년 정의당은 부동의 낙태죄 폐지안을 발의했다. 형법 제27장 전체를 없애겠다고 했다. 제27장을 없애자는 의견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10년 낙태죄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시절에도 있었다. 부동의 낙태죄가 없어도 상해죄로 처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2005도3832 등)에 따르면 상해죄로는 처벌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제27장을 없애려면 부동의 낙태죄를 제25장 '상해와 폭행의 죄'로 옮겨야 한다고들 했다.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정의당은 2019년 부동의 낙태죄를 살리고 이에 더해 법정형을 높이기로 했다. 그러다 지난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부동의 낙태죄를 삭제하겠다고 당론을 바꿨다. 20대와 21대에 모두 당선한 유일한 정의당 소속인 심상정 의원은 두 법안에 모두 사인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2021년 자신을 성추행한 가해자 김종철 대표가 고발되자 "제3자의 고발을 통해 다시금 피해를 지난하게 상기하고 설명하며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2차 가해를 감당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사법분야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친고죄가 아닌 중대 범죄에 제3자 고발이 있다면 수사기관은 반드시 수사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될 수 있다"라고 했다. 단체 내부의 조사 기록은 압수 대상이라고 했다. 보편적 규범인 법률은 그렇게 작동될 수밖에 없다. 결국 경찰은 장혜영 의원이 원하는 대로 처리했다. 이유는 국회의원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다. 비슷한 다른 사례에서는 그렇게 처리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장혜영 의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풀어가고, 마무리 짓는 방식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문장을 대부분 법률가가 친고죄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이 사건 당사자이자 입법기관인 정의당 의원들은 형법의 미비나 흠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성범죄가 친고죄에서 비친고죄로 개정된 취지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권리를 확장하자는 것이지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선언해서는, 제3자 고발로 시작되는 '부당한' 형사절차를 막을 수가 없다. 친고죄로 되돌리기 어렵다면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같은 2021년 류호정 의원은 비서 면직 문제로 정의당에서 경고받았다. 이에 자기 비서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어서 자른 게 아니며 오히려 배려한 것이라 해명했다. "국회 보좌진은 근로기준법, 국가공무원법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노동 존중 사회를 지향하는 정의당의 강령에 비추어 면직 과정에 부당함이 있었는지 당의 징계 기관인 당기위원회의 판단을 받으려던 것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어쩌면 류호정 의원 비서 같은 사례가 정의당 강령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정의당은 국회 보좌진을 어떻게 법으로 보호할지를 말했어야 했다. 그의 비서가 맞닥뜨린 면직 문제는 당원이어서가 아니라 보좌직원이라 생긴 것이다. 국회에는 당원이 아닌 보좌직원도 많다.


오히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보좌직원 면직예고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2020년 21대 국회가 시작되자 발의했다. 사인한 의원 34명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이 가장 많고 민주당, 국민의당, 시대전환 의원이 있다. "보좌직원에 대한 직권면직 절차는 면직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보좌직원의 고용 안정성을 낮추고, 재취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조차 확보할 수 없어 유능한 인재의 유입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제안이유를 밝혔다. 이런 내용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제일 앞에 넣으면서 아예 법 이름까지 바꿔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로 했다. 정의당이 노동자를 위한 좋은 강령을 자랑하고 있을 때, 정통 보수 야당이라는 국민의힘은 이렇게 법을 바꾸고 있었다.


영화에서 국회 청문회에 불려 간 슬로운은 로비를 이렇게 얘기한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 승자는 상대보다 한 발자국 앞서서 회심의 한 방을 상대보다 먼저 날려야 하죠. 상대를 놀라게 만들되 상대에게 놀라선 안 됩니다." 이는 자신을 궁지로 보는 반대 세력을 향한 얘기였다. 하지만 정치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민과 공동체를 향한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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