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판사가 맡아도 판결 잘할까요?" 우려에 대한 김동현 판사 대답
"시각장애인 판사가 맡아도 판결 잘할까요?" 우려에 대한 김동현 판사 대답
국내 2호 시각장애인 판사 김동현 판사 인터뷰
'듣는' 것만으로 실체적 진실 밝혀낼 수 있을까 우려에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

올해 신임 법관 155명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 실제 내년 3월이면 일선 법원에서, 한 사람의 '법관'으로서 재판을 담당하는 김동현 판사를 만났다. /일산=안세연 기자
올해 신임 법관들이 연수를 받고 있는 사법연수원. 이곳엔 '시체'가 되어보는 판사가 한 명 있다. 그는 목이 졸려 죽어보기도 하고, 직접 침대에 누워 범행에 당해보기도 한다. 사건 기록 속 피해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한 뒤 판결문을 쓰기 위해서다.
"내 목을 좀 졸라봐 주세요. 침대에 누웠을 때 사망한 피해자의 자세는 이렇게 돼 있었던 게 맞나요? 당시 가해자는 피해자 뒤에서 이렇게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정확한 재현이 가능해질 때까지 그는 직원에게 묻고, 또 묻는다. 사건 기록에는 '사진'이 제공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다른 접근법'을 쓰는 이유가 있다. 국내 제2호 시각 장애인 판사 김동현 판사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각 대신 청각과 촉각 등 오감(五感)으로 사건을 읽는다.
그는 올해 신임 법관 155명의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실제 내년 3월이면 일선 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한다. 한 사람의 '법관'으로서다.
"사진 자료를 설명만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럴 때 '재현'을 동원하는 거죠. 비록 제가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어느 순간 '이해가 됐다'는 감이 옵니다. 도면 같은 게 있으면 손으로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입체적으로 만져보기도 하면서 이해합니다."
김 판사는 로스쿨 시절에 겪은 의료사고로 앞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래도 그는 "(다른 비장애인 판사와)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이라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은 있겠지만, 재판은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정말 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 판사가, 복잡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지난 11일 사법연수원 개인 숙소에서 김 판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안 믿겼다. 합격 소식을 메일로 받았는데, 그때 안내 메일을 3번 들었다. '이게 제대로 온 건가?' 싶었는데 합격한 게 맞긴 하더라. 솔직한 마음으로 '안 되면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지' 했었는데, 바로 합격해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의 글자를 프로그램이 읽어주는 식인데, 노트북에서 바로 들려드리겠다."
실제로 기자가 들은 내용은 이렇다. <다만 공소기각결정(제328조, 제363조, 제382조), 항소기각결정(제360조, 제361조의4 제1항, 제362조), 상고기각결정(제376조, 제380조, 제381조)은 종국재판이므로 결정서를 작성함이 바람직하다. 재판에는 이유를 명시하여야 하고(제39조 본문), 특히 판결에는 필요적으로 그 이유⋯.>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은 스피커로 재생했는데, 이어폰으로 들으면 조금 더 잘 들리긴 한다. 이게 '1~10' 중에서 10으로 최고 속도다. 그런데 사실 저는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빨리 들으면,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도 그만큼 더 빨라지니까."
"처음 로스쿨 다녔을 때는 지금 속도의 절반 정도였다. 매일 10시간씩, 5년을 들으니까 지금 속도로 들을 수 있게 됐다. 로스쿨에서 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2년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1년 중 평일은 249일, 하루에 10시간씩 5년이면 1만 2450시간이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실 순 있다. 하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는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다. 일하는 방식 자체가 중간에 '스킵'을 할 수가 없는 구조다.
왜냐면 중요한 내용이 언제 나올지 미리 알 수가 없으니까. 기록을 대충 본다거나, 쓱쓱 넘기거나 할 수 없다는 뜻이다(웃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은 있겠지만, 다른 판사들보다 적은 사건을 배당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걱정하는 것만큼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자, "판사의 삶이란 기록을 보는 삶"이라는 어느 전 부장판사의 글이 떠올랐다. 실제로 많은 변호사가 기록을 꼼꼼히 살피는 판사에게는 '존경'을, 반대로 대충 보고 오는 판사에게는 '분노'한다. 적어도 김 판사에게 '분노하는 변호사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프로그램은 없다. 지금 기술로 이미지는 답이 없다. 대신 직원 도움을 받고 있다. 주간에 옆에서 업무를 도와주는 직원이 말로 설명해주는 식이다. 그게 어떤 사진이고, 어떤 이미지인지.
물론 말로만 설명 들으면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설명을 다 들은 다음, 약간의 재현을 거친다. 적어도 충분히 이해될 때까지는 직접 움직여보면서 몸으로 경험한다."
"최근 판결문을 작성해보는 과제를 받았는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목을 졸려서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때 사진 설명을 다 들은 다음, 실제로 침대에 누워서 목을 졸려봤다. 직원한테 '내 목을 좀 졸라봐라'고 하면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형사 사건은 아무래도 사진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직접 당해보면서 '피해자의 자세가 이랬던 게 맞느냐', '가해자는 뒤에서 이런 자세였느냐'고 물어보면서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했다. 실제 재판을 하게 됐을 때도 동료 판사들 또는 당사자에게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 같다."
이때 김 판사에게 다시 한번 "정말 진짜로 목을 졸려본 거냐"고 되물었다. 옆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직원까지 나서서 "정말 내가 졸라본 게 맞는다"고 '증언'했다.
"그런 우려가 생길 수는 있을 것 같다. '장애인은 소수자고, 소수자는 소수자 편'이라고 생각을 하실 텐데,
어쨌든 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이다. 그런데도 불공정한 재판을 받을 것 같다고 한다면, 섭섭한 느낌이 든다.
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이야기한들, 의심하는 분들이 믿어주겠느냐. 결국 그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공정한 재판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못 미더우면 법관을 기피하는 제도가 있으니까, 그거 신청하시라고 하고 싶다(웃음)."
"아니다. 인터뷰 요청이 없어서 굉장히 편하게 지내고 있다. 다행이다. 요청이 많이 들어오면, 연수받는 데 시간을 많이 쓸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한다. 애초에 시각장애인이 판사가 됐다는 게 기삿거리가 안 되는 게 더 좋은 세상 아닐까."
"있다. 사법부에서 판사용으로 만든 프로그램 중에 장애 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게 굉장히 많다. 심지어 새롭게 개발하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사실 '접근성'을 처음 개발할 때부터 고려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시작부터 고려를 안 하면, 나중에 굉장히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법관통합지원시스템에서 많은 부분에 접근할 수 없다. 판결문 작성은 되는데, 그 외 명령문⋅결정문 작성은 안 된다든지, 인사 프로그램에 접근을 못 한다든지 등의 문제가 있다. 기본적인 판결문 검색 시스템, 종합법률정보 등은 문제가 없지만, 일하면서 중간중간 마주치는 불편함이 있다."
"사실 조금 불안하다. 시각장애인 판사가 더 많아져야, 법원도 개선의 필요성을 느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다. 오히려 굉장히 오랜만에 한 명씩 들어오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법원도 외부적으로는 장애인 차별금지법, 국가정보화기본법 등의 규정을 잘 준수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 내부에서 장애인이 일을 할 것이라는 인식은, 오히려 부족한 것 같다."
기자가 외부에서 법원을 출입하며 느낀 감상은, 그래도 '노력하는 법원' 이었다. '장애인에게 문턱없는 〇〇지방법원',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 및 간담회' 등의 보도자료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고, 법원에 설치된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장애인용 화장실, 점자블록, 도움벨, 안내표지 등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인 김 판사가 느끼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그게 사실 3000배를 한 달 동안 나눠서 하는 건 줄 알고 갔다. 하루에 100배씩.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더라. 매일 3000배를 했다.
첫날은 3000배를 하는 데 10시간 30분이 걸렸다. 이때 정말 많이 울었다. 사고당한 뒤에도 울지 않았는데, 이때가 처음 운 거였다. 그땐 너무 갑자기 큰일을 당했으니까 눈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3000배를 하면서는 처음 일주일을 계속 울었다. 정서가 꽉 막힌 상태에서 쌓였던 한이 풀렸던 것 같다."
"3000배를 하면서는 없었다. 그게 왜냐면 할 수가 없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마지막 날 그랬다. 그땐 기도를 다 마치면 눈을 뜰 줄 알았다. 사실 그러려고 절에 간 거였으니까. 그런데 에이, 그런 기적은 생기지 않더라.
대신 그때 스님이 '육신의 눈은 못 떴지만, 마음의 눈을 떴으니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하신 게 되게 위안이 됐다. '3000배도 했는데 이제 뭘 못하겠느냐'는 마음도 있었고.
가족의 도움도 컸다. 초반에는 어머니도 3000배를 함께 해주셨고. 아버지의 도움도 있었고, 동생도 너무 고생이 많았다."
"공부 '외적으로' 적응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다. 판사 업무가 바쁜데도, 매주 토요일마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남산도 산책하고. 말하자면 '이정표'가 되어주신 분이다."
"없었다. 사실 그분이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늘 말씀하셨던 게 '공부는 알아서 하는 거' 란다. 그냥 '잘할 거야' 이렇게. 심지어 '이 부분을 좀 더 공부해라 이런 것도 말해준 적이 없다. 기사 나가면, 최영 판사님한테 전화가 올 수도 있겠는데(웃음).
그런데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사실 바쁜데도 시간을 써준 것 자체가 큰 도움이었다. 만약 3번째 시각장애인 판사가 나온다면, 저는 최영 판사님처럼 시간을 써주기 힘들 것 같다. 이 길을 처음 걸어간 최영 판사님이 닦아놓은 길을 후배들이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각장애인이 뛴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렵지 않나. 그런데 페이스메이커와 손목에 끈을 묶고, 바람을 맞으면서 뛰는 느낌이 되게 좋다. 2015년에는 10km를 완주했고, 재작년에는 하프 마라톤도 한 번 뛰었다. 그런데 하프는 도저히 사람이 뛸 게 아니더라.
최근에는 쇼다운을 즐겨했다. 쇼다운은 시각장애인 스포츠인데, 소리 나는 공을 배트로 쳐서 상대방의 골대에 넣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기다. 사실 제가 이 경기의 국가대표다. 작년에 전국 대회 우승도 했고,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역시 '세계의 벽'이란 높더라.
45명 중에서 뒤에서 3등 했다. 함께 간 다른 친구도 뒤에서 4등."
"이건 개인적인 이유인데, 제가 안내견을 케어할 능력이 없다. 안내견을 키우려면 밥도 줘야 하고, 화장실도 데려다줘야 하고, 또 씻겨줘야 하고 예삿일이 아니지 않으냐. 저는 그런 능력이 안 된다."
법원에 따르면 김동현 판사의 의향만 있다면, 안내견과 함께 근무하는 건 문제가 없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런 사항을 요청하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며 "안 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 법원은 그 사람이 능력만 있으면, 뽑을 의지가 있다. 장애인 채용목표제가 지켜지고 있지 않은 건, 법원이 '안 지키려고 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법관은 재판을 해야 되고, 재판은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국민 서비스다. 그런데 능력이 안 되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뽑을 수는 없지 않으냐. 물론 시각장애인이 그런 능력을 갖추는 게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능력만 갖추면 장애 때문에 법관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계속적인 차별을 받고 있어서다. 우선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로스쿨 때는 필요한 책을 신청했더니, 5개월 만에 받은 적도 있다. 지난 학기 수강 신청할 때 신청했던 게, 다음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온 거다. 이렇게 되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제때 할 수가 없다.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지원해주기는 하는데, 그래도 원시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①종이책을 사서, ②그걸 다 자르고, ③한 장씩 스캔을 뜨고, ④문자 추출 프로그램을 돌리고, ⑤워드에 넣어서 그다음에 음성 파일이나 점자로 변환하는 식이다. 모두 수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립장애인도서관 등에 워드 상태의 파일이 미리 확보되면, 단계(①~④)를 확 단축할 수 있다. 미리 인프라를 만들어두는 게 정말 중요한 이유다. 물론 저작권법에 걸리는 부분도 있지만, 이건 사회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국가가 나서서 시각장애인용 대체 자료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게 국가의 의무고, 그래야 더 다양한 직역으로 시각장애인이 진출할 수 있다. 지금은 안마 일을 하시는 시각장애인이 많지 않나.
물론 시각장애인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이러한 인프라 구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국가가 여건을 만들수록, 시각장애인 판사는 자연스럽게 많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