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수술 중 사망⋯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던 인재(人災)였지만 처벌은 '집유'
임신중절 수술 중 사망⋯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던 인재(人災)였지만 처벌은 '집유'
임신중절수술 중 사망한 피해자⋯해야 할 절차 모두 생략된 채 수술대 위로
"문제 있지만⋯본질적으로 위험 수반할 밖에 없다" 재판부, 집행유예 2년 선고

"임신중절수술을 제도권 안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결정이 나온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위험한 낙태 수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셔터스톡
"낙태갈등 상황에 처한 여성은 형벌의 위하로 말미암아 임신의 유지 여부와 관련하여 필요한 사회적 소통을 하지 못하고,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낙태를 실행하게 된다."
지난해 4월 11일 헌법재판소(헌재)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안전하게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권리'를 천명했다.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인 한 여성들을 위험한 수술로 내모는 결과를 보일 수밖에 없으니 "임신중절수술을 제도권 안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16개월이 지난 지금. 이런 명령은 얼마나 현실화됐을까. 여전히 법제화는 걸음마 단계다. 위험한 낙태 수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의정부지법에서 있었던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재판을 보면 그렇다. 낙태죄가 사실상 폐지된 이후인 2019년 하반기 임신중절수술을 받던 여성 A씨가 사망한 사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가 벌어진 인재(人災)였다.
A씨는 지난해 7월 의정부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 B씨는 임신중절수술을 해달라는 A씨 요구에 이날 정오(낮 12시)에 수술을 결정했다. 그리고 20분 뒤 A씨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A씨는 수술 전 기본적인 체온⋅혈압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자궁을 수축시키는 알약 2개를 복용했다. 원래대로라면 복용 전에 면밀한 검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40분 뒤인 오후 1시 간호조무사는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A씨에게 주입한다. 의사 B씨의 지시에 따랐다고는 하지만 해야 할 절차가 생략된 잘못된 조치였다.
또한, 대한의사협회 가이드라인에 따를 경우 수면마취제는 수술과 관계없는 독립적인 의료진이 놓은 뒤 수술 내내 환자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A씨에게는 수술을 직접 담당하는 의사 B씨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수술실에는 A씨의 산소포화도를 지속적으로 지켜볼 사람이 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수치에도, 의사 B씨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A씨는 의식불명에 빠져 4일 뒤에 숨을 거뒀다.
의사 B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결과는 지난달 2일 나왔다.
의정부지법 형사8단독 윤이진 판사는 의사 B씨가 수술 중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여러 단계에 걸쳐 어겼고, 그 결과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의사 B씨는 "수술 전, 수술 중 지속적으로 산소포화도 검사와 혈압 등을 감시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했고, 환자의 이상 증세를 알아채고도 30분 늦게 신고를 했다"고 판시했다.
또 의사 B씨는 오후 1시 30분쯤 피해자의 호흡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인공호흡 등을 시행하다 오후 1시 57분이 되어서야 비로소 119에 신고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의사 B씨가 반드시 지켰어야 할 의무를 어긴 과실이 있다면서도 실형을 선고하지는 않았다.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선처의 근거는 '의료영역의 특수성'에 있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전문적인 의료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의 유족과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들어 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지난해 4월 낙태죄를 사실상 폐지하면서 A씨 사고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안전한 방법으로 수술을 실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위험천만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단순히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는 것을 넘어, 임신중지 가능 기간과 사유 등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여성의 건강권 보장이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선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고 21대 국회로 공이 넘어왔다.
4개월 뒤 헌재가 법률을 바꿀 '마감 시한'으로 정해둔 시간이 도래한다. 2020년 12월 31일이 지나면 임신중절과 관련한 법과 제도는 완전한 공백 상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