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46)] 이런 사건은 변호사를 닦달해야 한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46)] 이런 사건은 변호사를 닦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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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돈을 걸고서 우연한 승부에 의하여 돈을 따거나 잃는 것을 말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돈 벌려는 것이다. 도박은 우연한 승부에 의하여 돈의 주인이 결정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흔히 도박하면 화투, 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심야에 깊은 산속에서 맹견들을 링 안에 풀어놓고 서로 싸우게 하여 물어 죽이게 한다. 이긴 맹견 주인이 판돈을 가지는 도박이다. 심지어는 싸움닭을 도박 도구로 사용한다. 오직 공짜로 돈을 따는 일이라면, 잔인하기 짝이 없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행위를 하다가 구속이 되어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만나보면, 범죄에 대한 뉘우침이 거의 없다. 피고인을 위하여 변호인을 선임해 주고, 피고인의 석방을 위하여 애쓰는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건은 마른 수건 쥐어짜듯 변호사를 닦달해야 한다."
이런 말을 변호사 면전에서 하는 사람들은 체면이고 뭐고 가리지 않는다. 피고인이 법을 어기고 재판을 받은 점에 대하여 죄의식도 없다. 석방되기만 하면 곧바로 다른 도박판으로 달려갈 기세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밤을 새워가면서 도박을 한 사건. 수십 명의 경찰이 현장을 급습하여 여러 사람을 체포하였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을 때 도박한 사실을 부인하였다. 그는 자신의 채무자가 돈을 갚는다고 하여 도박 장소까지 돈을 받으려고 갔다가 때마침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하였다. 그런 말이 통했는지 몰라도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거저먹고자 했던 사람들 대여섯 명이 도박죄로 구속되었다. 그들은 무슨 일인지 모두 나를 변호인으로 선임하였다. 동일한 도박 사건의 피고인들이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가족들도 모두들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변호사를 만나러 올 때는 20명 정도의 가족, 친척, 지인들이 몰려왔다. 처음에는 인내를 가지고 궁금해하는 점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에도 사람을 바꿔가면서 수십 명이 불시에 법률사무소를 찾아왔다. 나는 어제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고 없이 찾아와 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설 명절을 앞두게 되니, 보석으로 석방시켜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래서 보석청구를 하였는데, 얼마 후 담당 판사가 보석결정을 하지 않고 다른 법원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판사가 부임하여 그 사건을 맡았다. 얼마 후에 그 판사를 찾아가 보석청구를 검토해 달라고 했더니, 전임 판사가 그 사건 기록에 보석을 해주면 안된다는 부전지를 붙여놓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보석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후 재판을 받고 시간이 흘러 피고인들도 모두 석방되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에 재판이 있어 법정에 들어갔더니, 낯익은 모습의 사람들이 피고인석에 있었다. 일전에 도박으로 재판을 받았던 그 사람들이 또다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무슨 일로 또 법정에 나와 있나 궁금하여 재판 내용을 들어보니, 도박죄로 기소된 상태였다. 방청석에는 그 피고인들의 가족들도 앉아 있었다. 거의 매일 내 사무실에 찾아와서 빨리 빼달라고 독촉하던 분들은 나를 보고 민망해서인지 눈길을 피하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가족들도 사선 변호인 선임을 포기하였는지 국선변호인이 피고인들을 변호하고 있었다.
도박은 돈을 걸고서 우연한 승부에 의하여 돈을 따거나 잃는 것을 말한다.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돈 벌려는 것이다. 도박은 우연한 승부에 의하여 돈의 주인이 결정된다. 화투나 카드, 골프 운동 등 수많은 방법이 도박으로 이용된다.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고 실력이라는 판결도 나와 주목을 끌었다.
피고인들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사이에 전반 9홀 게임 중 1타당 50만원, 후반 9홀 게임 중 1타당 100만원, 동점인 경우 배판으로 1타당 200만원을 승자에게 주기로 했다. 이런 방식의 내기 골프를 총 32회에 걸쳐 합계 약 8억여원 상당의 도박을 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1심 법원의 단독판사는 아래와 같은 취지로 무죄판결을 선고했다(서울남부지법 2005. 2. 18. 선고 2004고단4361 판결).
화투, 카드, 카지노 등의 경우에는 가지게 될 패의 결정부터 우연성이 개입한 경우라서 이때는 도박으로 보아야 한다. 반면, 운동경기, 바둑, 장기 등과 같이 당사자의 육체적·정신적 조건, 역량, 숙련도, 재능 등에 의하여 승패가 결정되는 '경기'의 경우에는 참가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능과 기술을 다하여 승패를 결정하려고 하고 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피고인들이 한 내기골프는 그 승패 여부가 골퍼들의 기량과 재능에 주로 지배되는 운동경기의 일종이라서 그 승패와 관련하여 돈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도박죄가 되지 않는다. 골프 운동에서 버디나 이글을 하는 것이 우연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무죄판결이 나오자 언론에서는 내기 골프로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줄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비판과 함께 신선한 판결이라는 목소리도 나오는 등 논란이 일었다. 검사는 당연히 항소를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06년 1심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판시했다(서울고등법원 2006. 1. 11. 선고 2005노2065 판결). 판결의 결론이야 이미 예상된 것이라서 놀랄 것은 없었다. 판결문 중에 골프 경기를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골프는 풀밭, 숲, 모래밭, 연못 등이 어우러지고 그때그때의 기상변화에 따른 영향을 직접 받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나 자연 상태에 가깝게 인위적으로 조성된 방대한 경기장에서 탁구공보다 조금 큰 정도의 공과 그 공을 치는 채를 이용하여 짧게는 100m 내외, 길게는 500m 내외 떨어진 곳에 설치된 직경 10㎝ 정도 크기의 구멍(Hole)에 가급적 적은 타수로 공을 넣어 경기를 마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바⋯.
1심 판결이 내기 골프 참가자들이 기능과 기술을 다하여 승패를 결정하려고 하고, 그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므로 이를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에 대하여도 반대되는 결론을 밝혔다.
도박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아니한 재물의 취득을 처벌함으로써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기골프를 보더라도 그 승금은 도무지 정당한 근로에 의한 재물의 취득이라고 볼 수 없고 내기골프를 방임할 경우 경제에 관한 도덕적 기초가 허물어질 위험이 충분하므로, 이를 화투 등에 의한 도박과 달리 취급하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렇게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희한한 논리를 전개한 1심 판사 덕분에 무죄를 선고받은 피고인들의 실망이 컸을 것이다. 대법원은 2008년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하여 유죄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08. 10. 23 선고 2006도736 판결 [상습도박]). 피고인들이 각자 핸디캡을 정하고 홀마다 또는 9홀마다 별도의 돈을 걸고 총 26 내지 32회에 걸쳐 내기 골프를 한 행위는 도박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1심 판결처럼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면, 돈을 걸고서 하는 골프는 합법적이라고 공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골프장은 거대한 도박장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골프장을 찾는 이 중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잘 가꿔진 잔디를 걸으면서도 골프공 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반드시 돈을 걸고 내기를 하여 동료 골퍼를 이기고야 말겠다는 경쟁심과 승부욕으로 불타오른다. 변호사로 일할 때 동료들과 골프장에 가면, 처음부터 내기 골프를 하자고 한다. 그냥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초등학교부터 경쟁에 익숙한 법조인들의 속성 같기도 하다. 멋진 자연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곳에서도 경쟁을 즐긴다.
도박죄 사건의 피고인들은 재수 없이 걸려서 재판을 받는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 어떤 이는 국가도 로또를 발행하거나 카지노를 만들어서 도박하도록 하면서 왜 우리만 처벌하느냐고 불만을 드러낸다. 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도박하면서 서민들이 재미 삼아 하는 돈내기에 왜 관여하느냐고 대들기도 한다. 그래서 도박 사건은 앞으로 수임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곤 하였다. 그러고서도 그 사건이 끝나고 나면 고통스러운 기억이 사라졌는지 다시 수임하는 것을 반복한다.
설이 다가오니 명절을 가족과 함께 지내도록 보석으로 석방시켜 달라고 했던 의뢰인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전임 판사가 보석해 주지 말라고 부전지 붙여놓았기에 보석청구를 기각했던 그 판사는 한참 후에 변호사 개업하여 활동 중에 현재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있다고 한다. 설 명절을 맞아 모두들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