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소송, 산재 소송⋯아무리 용써도, 이기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 '기울어진 운동장'
의료 소송, 산재 소송⋯아무리 용써도, 이기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 '기울어진 운동장'
산재 인정, 의료 분쟁⋯'정보의 불균형' 으로 소송 어려움 겪어
법원이 자료 제출 명령할 수 있지만, 영업비밀엔 적용 어려워
김권우 변호사 "정보의 치우침 심한 소송, 영업비밀의 제한적 열람 필요"

산업재해 인정, 의료 분쟁, 환경권 침해를 둘러싼 소송에 자주 붙는 말이다. 거대 조직과의 싸움, 그래서 소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 게 뻔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어차피 질 싸움."
산업재해 인정, 의료 분쟁, 환경권 침해를 둘러싼 소송에 자주 붙는 말이다.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송당사자가 '개인 대(對) 기업' 혹은 '개인 대 국가'다. 거대 조직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소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 게 뻔하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법률사무소 새로의 김권우 변호사는 이런 소송에서 개인이 패소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재판에서 이기려면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의 획득이 관건인데, 그게 원천적으로 차단돼있어서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선 내 주장을 입증할 근거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증거를 소송 상대방이 갖고 있다면 어떨까. 상대방이 스스로 불리한 증거를 순순히 내줄리 없다.
김권우 변호사는 "환경권 침해, 의료 분쟁 등에 있어서 소송의 상대방은 국가나 의료기관, 기업체"라면서 "그들을 이기기 위한 직접적 증거는 그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의료 분쟁 소송에선 현행법상 피해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관련 진료 기록은 모두 병원이 갖고 있다. 결국 정보를 갖고 있는 해당 의료인이나 병원의 자료 제공에 기댈 수밖에 없다.
산재 소송도 마찬가지다. 산재를 입은 근로자가 근무 환경이 안전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면, 사측의 안전관리 체계나 근로자가 근무하면서 다룬 물질의 유해성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 또한 근로자보다 사측에 더 많은 정보가 있기 마련이다.
김권우 변호사는 "정보의 치우침으로 인해 소송의 당사자인 일반 국민과 소비자, 환자 등은 증명해야 할 사실에 대한 증거를 입수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증거를 제출해 주지 않아 내 주장을 증명할 수 없다면 사실상 패소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 법엔 이런 정보의 불균형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민사소송법 제344조에 규정된 '문서제출명령 제도'다. 이 제도는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특정 문서의 제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원고 A씨가 법원에 "피고가 갖고 있는 자료가 내 주장을 입증하는 데 필요하니, 피고가 제출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법원이 문서를 제출하라고 결정하면, 문서를 갖고 있는 당사자는 제출해야 한다. 만약 제출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법원은 자료를 요청한 사람의 주장이 진실된 것으로 인정한다.
김권우 변호사는 "문서를 갖고 있는 소송 당사자가 제출을 거부하면 (문서를 요청한) 신청자에게 그 자체로 유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제3자가 갖고 있는 경우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가 아닌 사람은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다. 특히 기업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가 아닌 사람은 법원의 문서 제출 명령에 따를 필요가 없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김 변호사는 "영업비밀은 경영상 정보인지 혹은 기술상 정보인지 무관하게 영업 활동에 관련된 것이라면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자산인 영업비밀을 침해당한 경우 그 피해의 범위는 예측이 어려우므로, 법적 보호의 필요성이 높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법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업비밀을 보호하고 있다. 이 법률은 타인의 상호를 부정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영업상 비밀을 침해하는 것을 금지한다.
실제로 지난 10일 판결이 난 한솔케미칼 근로자의 산재 인정 소송에서도 한솔케미칼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출하지 않기도 했다. 유족과 근로복지공단이 소송 당사자인 행정소송에서 사측은 제3자다. 김권우 변호사도 "현재로서는 절차법에 따라 문서 제출명령을 신청하는 것 외에 다른 제도적인 방법을 모색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덧붙여 "제 3자에 대해서도 문서제출명령 위반에 대해 과태료 등 제재 정도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구조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으로 김 변호사는 다음 2가지를 제시했다.
①영업 비밀 공개 범위 설정
김 변호사는 "정보가 구조적으로 치우쳐 사회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약자임이 명백한 몇몇 특정 소송의 경우에는 영업비밀의 등급을 분류하고 이에 따라 공개가 가능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② 제출된 영업 비밀 열람 제한
기업 입장에서 영업비밀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기밀이다. 따라서 영업비밀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문서의 제출을 강제하되 다만 열람이 가능한 자를 법원과 대리인에 한정해 극도로 제한하는 등 다각적으로 형평을 살펴 현행 법령을 보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