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아플까 봐…" 청주 성폭행 피해 중학생 유서, 유력 증거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아플까 봐…" 청주 성폭행 피해 중학생 유서, 유력 증거될 수 있을까
'청주 성폭력 피해 중학생 사망 사건' 피해자 유서 공개
"너무 아팠다"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막 떨려" "엄마, 아빠 아플까 봐 얘기 못 했어"
변호사들 "유서, 결정적 증거 아니지만⋯기존 증거와 종합하면 유력한 증거 될 수 있어"

친구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친구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중학생 A양. 가해자가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A양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 유서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충북 청주에서 친구의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친구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중학생 A양. 그가 사망한 지 100일 즈음, A양의 유서가 발견됐다. A양의 부모가 딸의 유품을 정리하던 과정에서였다.
앞서 A양은 지난 1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피해를 입었다. 이후 상담 치료를 받고, A양의 부모가 고소장도 접수했다. 하지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반려하면서 수사에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5월, A양은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친구와 생을 마감했다. 친구 또한 이번 사건의 가해자이자 의붓아버지인 B씨에게 성폭행과 학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2일, A양의 유족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엔 "너무 아팠다"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막 엄청 떨리고 심장이 두근대"와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월달에 있었던 안 좋은 일 꼭 좋게 해결됐으면 좋겠다"와 같이 사건을 암시하는 표현도 남겨져 있었다.
현재 재판에 넘겨진 B씨는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 사건을 진술할 피해자도 사망한 가운데 발견된 이 유서는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보통 피해자의 유서는 사건의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언론에 공개된 A양의 유서를 검토한 변호사들은 "가해자 B씨의 유죄를 입증할 강력하고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간접적인 정황 증거로서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무법인 화평의 이광웅 변호사는 "유서가 단독으로 가해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되긴 어렵다"면서도 "기존 진술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될 것"이라고 했다.
유서엔 A양의 심경은 담겼지만 B씨의 범행을 명확히 지적하거나, 사건 당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이에 따라 "유서를 보니 B씨가 범죄를 저지른 게 맞다"고 직접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되긴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A양이 경찰에서 했던 진술 △A양 부모가 접수한 고소장 △A양의 심리상담 내용 △다른 피해자인 친구 C양과의 생전 대화 △유서가 A양의 유품에서 발견된 점 등과 종합해 판단하면, 유서는 B씨의 혐의와 A양이 생전에 진술했던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비중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법무법인 한원의 고광욱 변호사도 "(유서가) 증거로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다른 증거들과 결합돼 유죄를 입증하는 간접증거로 쓰일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유서에 적힌 문장에 비춰볼 때, 당시 가해자가 A양에게 특정한 행동을 한 건 맞다고 생각한다"며 "그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지만 검찰에서 기존 심리상담 내용과 동일성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변호사 이연랑 법률사무소'의 이연랑 변호사 역시 "생전의 A양은 보호자 등이 동석한 가운데 수사기관에서 진술 녹화까지 했을 가능성이 높고, 피해를 호소하는 상담내용도 있을 것"이라며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에 이른 점에 비춰볼 때 별도의 변수가 없다면 가해자 B씨의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될 증거"라고 봤다.
법률 자문

A양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유서.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며 A양의 부모는 유서를 공개했지만, 재판에서 또 한 번 부모는 가슴앓이를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이 유서를 가해자 B씨 측이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광웅 변호사는 "B씨 측이 'A양이 직접 작성한 유서가 맞냐'고 주장할 수 있다"며 "A양이 생전에 사용하던 자료 가져와서 필적을 대조하는 등 신빙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A양 유족 입장에서는 성폭행 피해를 입은 A양이 죽음을 결심한 뒤 이를 직접 썼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