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정체성은 복수로만 쓰인다
[로드무비] 정체성은 복수로만 쓰인다
[law de movie]
무간도 (無間道), 2002 마이자오후이·류웨이창 감독
![[로드무비] 정체성은 복수로만 쓰인다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662610884665769.jpg?q=80&s=832x832)
진영인(량차오웨이·양조위 연기)의 비밀경찰 신분을 유일하게 아는 국장이 살해되면서, 진영인은 스스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 Media Asia Distribution
경찰학교 시절 범죄조직에 침투할 비밀요원으로 지목돼 입학 기록과 경찰 신분이 삭제된 경찰관 진영인(량차오웨이·양조위 연기)은 10년째 범죄조직을 전전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범죄조직 지령을 받아 경찰학교에 입학한 유건명(류더화·유덕화 연기)은 잘나가는 경찰 중간 간부로 성장했다. 진영인은 비밀요원 생활 7년째에 마약밀매 범죄조직에 들어가는데, 이곳이 유건명을 경찰로 침투시킨 조직이다. 이렇게 해서 진영인과 유건명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뒤바뀐 운명을 살아간다. 이 무렵 조직은 태국에서 마약을 들여오기로 하고, 이 정보를 확보한 경찰은 일망타진키로 한다. 하지만 두 스파이의 실시간 정보전으로 조직은 거래에 실패하고 경찰도 검거에 실패한다. 경찰과 조직은 모두 자신들 안에 스파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 <무간도>는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가고 5년도 지나지 않은 2002년에 나왔다.
"처음에는 3년이라 그래 놓고, 3년이 지나니까 다시 3년, 그 뒤에 또다시 3년, 벌써 10년째라고요."
진영인은 유일하게 자신의 신분을 아는 황지성 국장(황추생·황추성 연기)을 만나 경찰관으로 되돌려달라고 호소한다. 이에 "이번 일만 끝나면 그만두라"는 원하는 답을 들었지만, 진영인은 황 국장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가 언제 비밀요원 생활을 마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진영인의 욕망은 신분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은 경찰관이라고 농담처럼 털어놓는 것도 자칫 신분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진영인의 신분을 아는 경찰 간부는 둘이었지만 한 사람이 순직하면서 황 국장만 남았다. 순직한 이 간부의 운구 차량을 향해 진영인이 아무도 모르게 거수경례를 하는 데서 존재를 확인하려는 근원적인 불안이 드러난다. 조직과의 전쟁에서 황 국장마저 숨지자 진영인의 신분 회복은 위협받는다.
유건명의 욕망은 다층적이다. 조직은 유건명이 경찰에서 자리 잡도록 범죄정보를 제공하고 이런 도움으로 유건명은 빠르게 승진한다. 하지만 경찰에서 인정받을수록 유건명은 조직을 떠나 진짜 경찰관이 되고 싶어진다. 경찰관이 아닌 유건명은 조직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돌아갈 곳이 없다.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기회를 달라는 게 유건명의 서사이다. "나에게 기회를 줬으면 해. 과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이길 원해"라고 말한다. 유건명은 자신을 조여오던 조직의 보스를 죽이고, 자신의 정체를 알아낸 진영인의 경찰 신분 기록도 삭제한다. 그러나 보스가 남긴 유건명과의 통화 녹음을 진영인이 확보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겨냥한다. 이처럼 진영인은 과거를 회복하려 하고, 유건명은 과거를 삭제하려 한다.

영화 속 배경인 홍콩은 영국 조차(租借) 99년 만인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홍콩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중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불안을 주었다. 그래서 반환 15년 전인 1984년 영국과 중국은 반환 이후에도 50년 동안은 홍콩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로 협정도 맺었다. 불안은 근거 없이 자라지만 종종 실현되어 삶을 위협한다. 홍콩의 불안도 그랬다. 2019년 홍콩 정부가 범죄인을 중국으로 보내는 법안을 발표하자 시민들이 사상 최대 규모 시위를 벌였다. 앞서 2014년에도 홍콩 행정장관 후보를 중국 정부가 사전에 심사하겠다고 하자 홍콩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자본주의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에게 사회주의의 시간은 두려운 것이다.
홍콩 반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영화의 주인공은 진영인보다는 유건명이다. 진영인에게는 결론이 보이는 선택지가 있다. 갈등은 있겠지만 결정해서 나아가면 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경찰관으로 돌아가도 되고 어쩌면 범죄조직에 남아도 된다. 유건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홍콩의 운명과 닮았다.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하는 진영인을 보며 "차라리 내가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한 것도 유건명이다. 그가 원해 온 것은 경찰관이라는 지위라기보다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이길 원한다"는 얘기는 유건명의 자기최면일 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조직의 보스를 살해하는 것도 이상하고, 진영인의 경찰신분 기록을 없애는 일도 이해하기 어렵다. 유건명은 정체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짜 경찰관이 되려는 것이다. 스파이가 경찰관이 되려는 보기 드문 이야기는 이 시절 홍콩이어서 가능하다.
개인 성격이 집단 성격으로 표현된 것이 정체성이다. 그런데 대표적인 정체성의 토대인 민족이나 국민도 실재하지 않는 상상된 공동체에 불과하다고 <상상된 공동체>의 저자인 정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말했다. 정체성은 개인적이면서 집단적인 확신이다. 유건명은 경찰관이란 확신도, 범죄단체 조직원이라는 정체성도 없었다. 처음에는 조직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찰관이 되려 했다. 홍콩은 1997년 6월 30일까지 영국이다가 다음날 7월 1일부터 중국이 됐다. 하지만 공동체의 정체성까지 변경하지는 못했다. 사람의 정체성도 국가의 정체성도 법이 바꾸지 못한다. 중국 국적이 되었다고 중국인이 아니고,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이 적용된다고 중국이 아니다. 정체성은 시간과 확신이 만든다. 진영인은 경찰이라는 확신으로 10년을 살았고,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 확신을 확인하는 장치만 필요했다. 법과 제도는 확신을 수습할 뿐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정체성이 단순하고 적을수록 삶은 불행하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인 것이 정체성의 대부분이거나, 페미니즘이 자신의 거의 유일한 신념이라면 인생은 피폐해진다. 양성이 평등해질 때마다 상실감이 몰려올 것이고, 성차별에서 비롯되지 않는 문제는 인식하지 못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민이라는 거대한 정체성이 사회를 장악한다면 공동체는 불행해진다. 헌법과 법률은 다양한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역사를 전진시킨다. 서울시장과 같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외국인도 투표한다. 국민은 아니지만 주민이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불법체류라는 정체성이 노동자 정체성을 없애지 못한다. 이처럼 공동체의 다양한 확신을 포착해 권리와 의무를 잘게 구분하는 것이 법과 법률가의 역할이다. 유건명이 경찰 정체성을 원한 것도 다양한 정체성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국가를 비롯한 공동체의 정체성은 어떨까. 모든 대통령 선거 후보자가 국민 통합을 공약한다. 이들이 말하는 통합은 개인들의 정체성을 수습하고 추려내는 과정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체를 통합한다는 설명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018년 최신작 <정체성>(Identity: The Demand for Dignity and the Politics of Resentment, 한국어판 제목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정체성이 확립된 공동체만이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세계적인 석학인 후쿠야마는 배려와 통합이 모두 중요하다는 식의 어설픈 언설은 늘어놓지 않는다. "이 나라들은 민주적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는 모두 비민주적 체제 하에서 영토와 문화를 둘러싼 기나긴, 그리고 때때로 폭력적인 정치적 싸움을 하는 와중에 만들어진 역사적 부산물이었다."
후쿠야마는 정체성을 통합하는 일이 정치라고 한다. "정치 질서는 올바른 종류의 포괄적인 국민 정체성이 확립된 자유민주주의를 존속시키는 일에 달려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국가가 시대에 뒤진 낡은 개념이므로 국제 기구들로 대체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국제 기구에게 민주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이 지금껏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민주 제도의 기능을 좌우하는 것은 공통의 규범과 관점, 문화다. 이것들은 국민 국가의 차원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국적과 정체성을 통합할 필요성도 언급한다. 2017년 독일 총선 때 터키의 권위주의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독일 내의 터키계 유권자들에게 터키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라고 종용했다는 예를 든다.
지금 여기저기서 얘기하는 이른바 국민 통합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하지만 후쿠야마가 말하는 통합이 실현될 수 있을까. 실현된다면 나치 독일이 했거나 북한 정권 하는 일과 얼마나 다를까. 진정한 통합은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발언의 한계를 넓혀야 한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비난하고, 언어의 은유적 속성까지 시비해 혐오 표현이니 쓰지 말라고 화를 내서는 상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보를 표방하던 정당이 하루아침에 몰락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도 이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후쿠야마가 주장한 정체성 통합을 시도한 사람들이다. 다양성을 주장해 왔지만 그 다양성의 수혜자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자신들에게 투표하라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다수의 존재가 정체성의 전제이지만, 동시에 나와 다른 다수가 있어야 나의 정체성이라고 구별이 된다. 개인의 행복도, 국가의 발전도 정체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정체성은 언제나 복수로만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