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미투자 3500억달러 현금으로 내라, 수익 90%는 미국 것"…국내 계약이면 사기
美 "대미투자 3500억달러 현금으로 내라, 수익 90%는 미국 것"…국내 계약이면 사기
민법 104조 불공정 법률행위 요건 충족
궁박한 상태 이용한 현저히 불균형한 계약

지난 8월 열린 한미정상회담 모습. /연합뉴스
3500억 달러(약 480조 원)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투자처 결정권은 상대방에게 넘긴다. 원금을 회수한 뒤 발생하는 수익의 90%도 상대방의 몫이다. 만약 이런 조건의 계약서가 국내 법정에 제출된다면 판사는 어떤 판결을 내릴까. 민법 제104조에 따라 무효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투자 협상의 세부 조건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25%의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들이 지나치게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15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진행자인 김태현 변호사는 "미국이 제시하는 계약이 만약 국내 계약이었다면, 이는 상대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계약을 강요하는 행위, 즉 사기"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제 관계라는 특수성을 걷어내고 순수하게 법의 잣대로 들여다보면, 이번 협상안은 불공정 법률행위의 전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계약서에 숨은 독소 조항들
현재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미국의 요구 조건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 이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84%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 미국의 일방적 투자처 지정 : 투자금의 주인은 한국이지만,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미국이 결정한다.
- 수익의 90% 귀속 : 투자 원금을 회수한 뒤 발생하는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
- 통화스와프 거절 : 대규모 달러 유출로 인한 외환시장 충격을 완화할 안전장치인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 요구를 미국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건은 객관적으로 급부(주는 것)와 반대급부(받는 것)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존재함을 명백히 보여준다.
민법 104조 '불공정 법률행위'
우리 민법 제104조는 '불공정 법률행위'에 대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적용되려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궁박한 상태
급박한 곤궁을 의미하며, 경제적 원인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압박 상태까지 포함한다. 현재 한국은 미국의 25% 관세 부과 위협과 이미 유사한 조건에 합의한 일본의 사례로 인해 외교적·경제적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는 궁박 상태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2. 현저한 불균형
앞서 언급된 계약 조건들은 누가 보더라도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해 현저한 불균형 요건을 충족한다.
3. 폭리행위의 악의
상대방이 궁박한 상태임을 알면서도 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를 말한다. 미국이 관세 위협을 협상 카드로 사용하며 한국의 취약한 상황을 압박하는 것은 이러한 의도가 있다고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
대법원 판례는 "당사자가 처한 상황의 절박성, 계약 체결을 둘러싼 협상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불공정 행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017다201422 판결).
국제 협약의 특수성, 그러나…
물론 국가 간 협약은 국내 민사 계약과 달라 국내법을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 국제법적 관점과 외교적 역학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안을 국내법의 시선으로 분석하는 것은 그 계약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일방적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위는 설령 국제 외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더라도, 우리 법이 규정하는 불공정 행위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