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용산참사, 경찰 수뇌부에서 예행연습 논의하고도 무시"
[단독]"용산참사, 경찰 수뇌부에서 예행연습 논의하고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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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유가족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달 18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기한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저작권자 (C) 연합뉴스
대검 진상조사단 지난달 25일 검찰 과거사위 보고
경찰 수뇌부가 지난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기 전에 예행연습 필요성을 인식하고도 이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투입작전을 전개한 것으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재조사 결과 드러났다. 사건 당시 예행연습 없이 계획 수립 이틀 만에 작전이 전격적으로 진행돼 참사를 빚었다는 점에서 경찰 수뇌부가 무리하게 경찰특공대를 투입을 결정했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과거 검찰의 권한 남용을 조사 중인 대검 진상조사단 3팀은 이 같은 내용의 중간 보고서를 지난달 25일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대행 정한중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례회의에 내놓은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진상조사단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조사팀은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 정보부에서 작성해 검찰에 제출한 ‘정보 상황 보고’ 제목의 A4 한 장 분량의 문건을 발견했다고 과거사위에 보고했다. 이 문건에는 “컨테이너·크레인 사용 등 예행연습을 열심히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조사팀이 회의에서 별도로 보고한 내용에는 “더 큰 크레인으로 망루를 위에서부터 뜯었으면 사고가 없었다”는 신윤철 당시 제1특공대장의 검찰 진술조서 내용도 있었다.
당시 진행된 경찰특공대 투입 작전은 특공대를 ‘옥상조’와 ‘지상조’로 나눠 건물을 통하는 모든 길을 막아, 이른바 ‘출구 없는 작전’으로 불렸다. 이 때 옥상조가 대형크레인으로 공중에 올린 컨테이너를 철거민들이 옥상에 세운 망루의 측면을 부딪쳐 골조를 무너뜨리면, 건물 1층에서 옥상으로 올라온 지상조가 다시 망루에 진입하는 방식이었다.
서울경찰청 정보부가 작성한 ‘정보 상황 보고’ 문건은 경찰특공대 진입작전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2009년 1월 19일 오후 12시 30분 한강로 지구대에 모인 경찰 수뇌부들의 현장대책회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보고 내용에서 발언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조사팀은 오히려 이 같은 부분이 기밀성과 내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찰의 정보 업무가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건에 나타난 내용은 경찰대 투입 하루 전 급하게 돌아간 현장 상황을 보여준다.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석기(54·사진) 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찰특공대 투입 전날인 19일 오후 1시 30분쯤 철거민들이 농성 중인 용산 남일당 건물 현장 주변을 방문해 상황을 직접 파악하고 보고받았다.
같은 시각 출동한 경찰특공대는 용산역 근처 버스 안에 세 시간 동안 대기했다. 또 경찰특공대장과 특공대 1제 대장은 이날 오후 2시 50분부터 오후 3시 10분까지 헬기에 탑승해 현장을 답사했다. 경찰특공대 투입 예행연습 지시가 있고 난 후 두 시간 30분 만에 경찰 수뇌부들의 잇따른 현장 답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어 오후 7시 당시 서울경찰청장이던 김 의원은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서 특공대 투입을 공식 승인한 것으로 당시 검찰 수사 결과 나와 있다.
문제는 경찰특공대 투입은 정보 상황보고 문건과 달리 다음날 오전 6시 30분 예행연습 없이 전격 진행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당시 검찰 수사팀은 이 같은 정보 상황보고 문건을 확보하고도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한 건 아니라고 봤다.
사건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이 경찰특공대 작전 중 특공대원 1명과 철거민 5명이 사망한 것을 이유로 김 의원을 포함한 당시 경찰 수뇌부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때 검찰은 “당시 무전기를 꺼놔 상황을 몰랐다”는 김 의원의 서면 답변을 그대로 받아 들였다.
이 관계자는 로톡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문건을 보면 ‘경찰 수뇌부들이 왜 무리하게 진압 작전을 했나’라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문건 작성자가 특정되지 않아 추가 조사가 어렵고, 경찰이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해 검찰이 특공대 투입에 관여한 경찰 수뇌부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은 ‘확인 불능’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사팀은 무리한 경찰특공대 투입으로 인명피해를 초래한 혐의로 고발된 당시 경찰 수뇌부를 무혐의 처분했다는 검찰 수사팀의 부실수사 의혹에 대해선 경찰 수사자료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증 불능’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차출됐다가 공소 단계 이전에 빠진 한 고검장은 최근 조사팀의 방문조사를 받는 자리에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고 소명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또 당시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이던 정병두(57·사법연수원 16기) 변호사는 조사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 고검장은 로톡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초반 수사팀에 참여했지만 농성에 참석한 철거민을 검찰이 기소하기 전에 대검찰청으로 발령이 나 공소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수사를 이끌던 검사 중 다수가 변호사로 퇴직하는 바람에 진상조사단이 현직인 나에게 질문을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 수뇌부 스스로가 특공대 투입에 예행연습이 필요하다고 한 정보보고 문건을 확보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이 정도 잘못은 형사 처벌이 아닌 경찰 내부의 징계 수준으로 결론을 냈었다”고 해명했다.
실제 특수본이 지난 2009년 2월 9일 발표한 ‘용산 철거현장 화재사건 수사결과’ 발표문에 따르면 “경찰이 사전에 화학소방차와 에어 매트를 준비하지 않는 등 안전대책을 소홀히 함으로써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지 못하고 인명피해가 확산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면서도 “경찰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러한 점들이 화재 및 사망이라는 결과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 냈다. 무리한 진압이 특공대원과 철거민들의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 법리적인 이유를 들어 조사팀에 원론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면, 당시 작전을 지휘한 경찰 수뇌부는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며 협조에 거부하고 있다.
백동산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수사 협조 요청을 전달하기 위해 전화를 건 조사팀에게 “내가 왜 거기(조사단)에 가느냐”라고 반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시 경찰 수뇌부를 상대로 한 의미 있는 조사가 현재의 진상조사단 권한으로서는 어렵다는 게 조사팀 내부 분위기다.
특히 과거사위 설치를 규정한 법무부 훈령에 따르면, 조사단은 내부 조사위원인 검사가 동참한 상태에서만 과거 검찰의 수사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조사단이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의 권고를 받아 재조사를 진행하는 만큼, 행정안전부 내청인 경찰을 조사할 수는 없다.
조사팀은 역시 용산 참사 사건을 진상규명하고 있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유남영 변호사)에 경찰특공대 투입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공문으로 세 차례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진상조사단 관계자가 구두로 자료제출을 요청했을 때, 진상조사위원회측은 “안 줄 이유가 없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팀의 일부 위원은 지난달 25일 과거사위 회의에서 “장자연 사건은 경찰이 협조하고, 용산 사건은 경찰이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며 “이런 식의 조사라면 검찰과 경찰에게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견을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해달라고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