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 10일 살면 양육비 평생 안 줘도 되는 구조⋯'배드파더스'는 무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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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 10일 살면 양육비 평생 안 줘도 되는 구조⋯'배드파더스'는 무죄일 수밖에 없다

2020. 01. 15 18:11 작성2020. 01. 15 20:38 수정
안세연 인턴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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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뒤 "(죽은 아이) 양육비는 안 줘도 되는거지?" 연락한 나쁜 엄마

기부에 외제차 타고 다니지만, 양육비 한 번 안준 나쁜 아빠

'배드파더스'가 무죄 받을 수밖에 없던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사례1.

2016년 크리스마스. 두 딸은 이혼한 엄마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나쁜 엄마' A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강남의 한 클럽에서 동료 직원들과 파티를 벌였다. 파티 후에도 연락은 없었다. 지난해 둘째가 죽고 나서야 연락이 왔다. 애도가 목적이 아니었다. "죽은 아이 양육비 50만원은 포기할 거지?" 아이 두 명분 양육비가 100만원이었으니, 앞으로는 그 절반만 보내겠다는 말이었다.


사례2.

'나쁜 아빠' B씨는 밀린 양육비가 수천만원이 넘었다.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취미로 골프를 즐기고, 고급 외제차를 끌었다. 불우 이웃도 도우며 구청장에게 상도 받는 모범 시민이었다. 그러나 이혼 후 7년 동안 지급한 양육비는 단 60만원뿐이었다. 양육비를 달라는 요구에 '아이와 함께 무릎을 꿇으면 생각해보겠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재판을 받은 건 '나쁜 부모' A씨와 B씨가 아니었다. 양육비 미지급자인 이들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 운영자 구본창씨가 재판을 받았다. 혐의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었다. A씨와 B씨를 포함해 신상이 공개된 부모 5명이 "배드파더스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구씨의 처벌을 주장했다.


재판의 핵심 쟁점 '배드파더스에 공익성이 있느냐'

재판의 핵심 쟁점은 '배드파더스에 공익성이 있느냐'였다.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게시물이라도 공익 목적이라면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인단도 이 지점에 변론에 집중했다. 변호인은 "구씨가 배드파더스를 운영하는 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며 "부모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구씨가 대신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수원=안세연 기자


구씨는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했다'는 제보를 받으며 1년 반 동안 약 400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중 110명 이상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됐다. 구씨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며 "현행법으로는 양육비 지급 판결이 나와도 강제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사는 "피해자들은 공인이 아니다"라며 "양육비 미지급 사실을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맞섰다. 또 "법에 의한 신상정보 공개는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거치는데, 배드파더스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판사도 몰랐다⋯양육비를 받아내기 얼마나 어려운지

이 사건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었다. 재판 결과 유죄로 나올 경우 양육비 미지급자들이 단체로 배드파더스 측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위자료 청구까지 할 가능성이 높았다. 변호인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죄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무죄가 나오기엔 배드파더스가 공개한 신상 정보가 지나치게 자세했다. 사진과 실명은 물론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구조적 원인이 드러나면서 재판정 분위기가 바뀌었다.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씨는 "이혼 후 10명 중 8명이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렇게 되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는 양육비를 받기 힘든 구조적인 원인에 대해서 설명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구씨가 말한 구조적 원인이란 '❶ 소송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❷ 이 기간 동안 상대방이 재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숨기면 돈을 받아낼 수 없으며 ❸ 지급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구씨는 "양육비를 달라는 소송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평균 2년 4개월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상대방은 재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바꾼다"고 말했다. 어려운 소송에서 이겨도, 상대방이 '돈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배석 판사는 "여성가족부에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있지 않으냐"고 의문을 표했다. 법적인 지원 제도가 있는데도 양육비 지급 현실이 왜 이렇게 미흡하냐는 질문이었다.


구씨는 "실제로 양육비이행감독원을 통해 해결되는 사례는 아주 적다"고 했다. "감독원 말을 듣지 않아도 받게 되는 가장 무거운 처분이 감치(監置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 등을 어긴 사람을 경찰서 유치장에 최대 30일까지 가두는 제재)인데, 이를 집행할 현장 기동관은 전국에 2명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36개국 중 유일하게 양육비 지급 이행과 관련한 강행규정이 없는 나라다.


이날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선 '나쁜 아빠' B씨의 전 아내도 "2015년 이혼 후 딸의 양육비를 한 번도 지급받지 못했다"며 "관련 소송을 8차례나 거쳤으나, 이미 상대방이 재산 명의를 바꾼 상태라 받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또 "B씨는 이미 마지막 단계로 유치장에서 감치 10일을 살고 나왔다"며 "담당자조차 악성 사례라며 더는 할 수 있는 법적 조치가 없다고 한다"고 진술했다.


15시간 동안 진행된 재판⋯결국은 '배드파더스'가 이겼다

14일 오전 9시 30분 시작한 이번 재판은 15시간 이상 이어졌다. 양 측의 주장을 끝까지 들은 배심원 7명은 피고인 구씨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창열 부장판사)는 "배드파더스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한 건 이혼 가정 자녀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나아가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구씨가 대가를 받는 등 어떠한 이익을 받은 것도 전혀 없다"며 "공개 자체에 대해서는 모욕적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배드파더스 운영자 "양육비 피해자들, 이제 용기 낼 수 있을 것"

재판 직후 구씨는 무죄 선고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지난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은 15시간 동안 이어졌다. 15일 자정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는 결국 무죄를 받았다. 법원 앞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는 구본창씨. /수원=안세연 기자


"(지금까지) 양육비 피해자들은 어떤 액션을 하든 명예훼손이라는 덫에 걸렸다. 그런데 오늘 재판으로 그 덫이 어느 정도 회수된 거라고 본다. 이제 양육비 피해자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뿌듯한 눈빛으로 구씨를 바라보던 한 변호사가 "자 이제 축배를 들러 갑시다"고 외쳤다. 구씨와 변호인단, 배드파더스 관계자들은 다 함께 법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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