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 술·식사해도 이혼 사유 안 된다? 법원, 부정행위 인정 기준 엄격화
단둘이 술·식사해도 이혼 사유 안 된다? 법원, 부정행위 인정 기준 엄격화
단순 동행 넘어선 '성적 성실의무' 위반 여부가 핵심
단순 만남과 불륜 가르는 '결정적 기준'

단순한 의심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법의 문턱, 그리고 깊어지는 부부의 갈등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등산 동호회 활동이나 직장 동료와의 잦은 만남을 이유로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해 제기된 이혼 소송에서 법원이 잇따라 청구를 기각하며 '부정행위'의 인정 기준을 엄격하게 재정립하고 있다.
배우자가 이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심지어 잦은 카풀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법원은 이를 이혼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진 것이다.
단순한 '의심'만으로는 재판부를 설득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과연 법원이 인정하는 불륜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선고된 하급심 판례들을 통해 달라진 법적 판단 기준을 분석했다.
"술 마시고 잦은 연락해도 '이것' 없으면 무죄"… 법원의 엄격해진 잣대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최근 배우자가 이성과 자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단둘이 유명 닭갈비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신 사실이 인정된 사안에서 원고의 부정행위 주장을 배척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4. 12. 선고 2023가단251032 판결). 재판부는 이성 간에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곧바로 부정한 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었다. 문자 메시지에 성적인 접촉을 암시하거나, 이성으로서 교제하고 있음을 추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단순히 친밀하게 지냈다는 정황만으로는 부부의 정조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부산지방법원의 판결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부산지방법원 2024. 1. 12. 선고 2022나67326 판결). 직장 동료의 차를 타고 출퇴근하거나 원룸에 함께 머무른 사실, 늦은 시간까지 통화한 내역이 드러났음에도 법원은 이를 부정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해당 관계가 직장 선후배로서의 호의나 사교적 행위에 불과하며, 대화 내용이 정보 교환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 근거가 되었다.
심지어 상대방이 추궁 과정에서 "정신적 바람을 인정한다"고 답했더라도, 이는 강압적인 상황에서 나온 진술로서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불륜'인가? 승패 가르는 결정적 한 방
그러나 모든 산악회 활동이나 이성 간의 만남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단순한 만남'과 '부정한 행위'를 가르는 명확한 기준으로 '성적 성실의무 위반'을 제시하고 있다.
대구지방법원과 인천지방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등산이나 드라이브를 핑계로 만났더라도 그 양상이 달랐다. 인천지방법원은 피고와 배우자가 무주 덕유산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온 사건에서 부정행위를 인정했다(인천지방법원 2021. 5. 13. 선고 2020나65671 판결). 결정적인 이유는 문자 메시지였다. 두 사람이 "보고 싶다", "사랑해"와 같은 직접적인 애정 표현을 주고받았고, 성관계나 신체적 접촉을 암시하는 대화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의심을 하고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음에도 만남을 지속한 경우도 치명적이다. 대구지방법원은 배우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제3자가 만남과 연락을 지속하여 부부 공동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든 점을 들어 부정행위를 인정했다(대구지방법원 2021. 3. 11. 선고 2020가단119827 판결). 즉, 만남의 횟수보다는 그 만남의 성격이 '연인 관계'를 띠고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것이다.
의심만으로 소송 걸었다간 패소… '구체적 교제 증거' 확보 필수
최신 판례의 흐름은 명확하다. 단순히 이성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관계만으로는 부정행위를 입증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법원은 부부 공동생활을 침해할 정도의 '성적 접촉'이나 '이성 교제'가 있었는지를 엄격히 따지고 있다.
따라서 배우자의 외도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도 섣부른 소송 제기는 오히려 패소로 이어질 수 있다.
승소를 위해서는 단순한 동행 사진이나 통화 목록을 넘어, 두 사람이 연인 관계임을 입증할 수 있는 대화 내용, 편지, 애정 표현이 담긴 녹음 등 구체적인 증거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법원이 요구하는 '결정적 한 방' 없이는 심증만으로 이혼 법정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