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5)] 예수전도단의 독수리 예수제자훈련학교(BEDTS)
[정형근 교수 에세이 (55)] 예수전도단의 독수리 예수제자훈련학교(BED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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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감과 습관대로 일요일에 교회는 나가지만, 냉랭하게 식어버린 마음속에 어떤 변화도 주지를 못했다. /셔터스톡
한번 바닥으로 내려앉은 신앙심은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의무감과 습관대로 일요일에 교회는 나가지만, 냉랭하게 식어버린 마음속에 어떤 변화도 주지를 못했다. 일상적인 업무를 하고 틈날 때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무런 삶의 목표 없이 살아가는 것은 공허했다. 평소 생활의 전부나 다름이 없었던 신앙생활에서 벗어난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듯한 허전함은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내는 2003년에 예수전도단(YWAM)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독수리 예수제자훈련학교’(BEDTS) 과정을 다녔다. ‘학교’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4개월가량 기독교 신앙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유익하게 잘 마친 아내는 2004년 새해를 맞이하였을 때, 나에게 위 훈련과정을 다녀볼 것을 권했다. 그런 권유를 하면서도 아내는 내가 저런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방식의 예배 형태나 강의를 좋아할 것인지 의문이었다고 한다. 내가 처음부터 가지 않겠다고 거절하거나, 다니겠다고 나섰다가 프로그램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 그만둘 수도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내 영적 상태가 완전 바닥이었기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 모습을 날마다 보아왔던 아내는 내가 훈련과정에 다님으로써 새로운 신앙을 회복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성경 구약에는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한다.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여호수아 3:9). 강물에 들어서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발을 내디디라고 한 것이다.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에 들어섰더니,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는 것이다. 흐르던 강물이 멈춰 마른 땅으로 변한 그곳을 백성들은 맨땅을 걷듯이 건너갔다고 한다.
아내는 나에게 신앙교육을 받을 것을 권유하는 것이 믿음으로 요단강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권면 후에 내가 승낙을 하든, 거절을 하든 그다음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 진지한 속사정을 알지 못한 나는 평소 즐겨왔던 일들을 뒤로하고 새삼 낯선 일을 시작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고민 끝에 신앙회복의 길로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어쩌면 하나님이 아내를 통해서 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하여 2004년 3월부터 시작하는 예수전도단에서 하는 직장인 훈련과정(BEDTS)에 등록을 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면 충분하지, 신앙교육까지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적 고갈상태로 지내는 것이 힘들어 새로운 전환점을 찾아본 것이다. 삶의 목표가 없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훈련과정은 약 4개월 정도였다. 매주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신앙교육 강의가 있었다. 처음부터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영향인지, 나는 교회보다는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과정들이 익숙했다.
주말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평소 친분 있는 분들과의 저녁 식사모임이나 골프 운동 나가기가 어려웠다.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관심 쏟지 않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난 3년 동안 규모 없이 지내온 것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평소 친하게 지냈던 분들과 식사약속도 하지 않았고, 동료들과 운동 나가는 것도 중단하였다. 갑자기 변한 내 태도에 주변에서는 놀라기도 하였다. 특히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지방에서 그런 태도는 바람직한 건 아니었다.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변호사가 갑자기 친교 활동을 멈추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변호사는 대부분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지내는데, 인간관계를 단절해 버리면 법률문제가 생겼을 때 나를 기억하고 소개해 줄 이유가 없다. 실제로 지인들과 관계가 단절되니까, 사건수임에 안 좋은 영향이 있었다. 특히 향우회 모임은 주로 일요일에 있는데, 야유회 계절에는 참여를 독려하는 전화가 많았다. 그런 신앙훈련이 아니더라도 일요일에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향우회 같은 모임에 나가는 것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회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총무는 변호사인 내가 참석하면 자리가 빛난다면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그 모임에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 참석한다고 모두 나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면하는 전화를 하여 부담을 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볼 때 내가 갑자기 뭔가에 푹 빠져버렸다고 지적받기 딱 좋았다.
과거 분쟁에 휩쓸려 있던 선교단체를 나와 정신없이 지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신앙교육을 받으니 생활의 질서가 잡힌 거 같았다. 마음 안에 자유함이 가득하고 행복했다. 그런 내 모습이 만개한 꽃봉오리에 앉아 있는 꿀벌과 같고, 창공을 나는 독수리 같았다. 인생이란 한 번 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였다. 이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강의 장소는 유치원 건물을 빌려서 여러 강사들이 와서 신앙강의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첫 번째로 들었던 강의 중에 “하나님의 음성듣기”라는 과목도 있었다. 근 20년을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저런 유형의 강의를 자세하게 들어본 적은 없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이런 강의 내용에 대하여 일반 교회나 기독교인들도 인정하는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기독교 서점에 갔다. 하나님의 음성듣기와 관련된 책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분야의 서적들이 정말 많았다. 책꽂이에 가득이었다. 그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있었는데, 나는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여 오면서도 그런 분야는 정말 문외한이었다.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이론적으로 뭔가 내용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신앙인들에게 그 뜻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체험담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역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하였다. 노트에 질문을 기재하고 그에 관한 답변을 적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스치는 영감을 기재해 두기도 하고, 기도 중에 떠오르는 형상(image)을 메모해 두기도 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아니라도 나는 평소 메모하기를 즐겨하였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기억해 둘 사건이나 주목받은 사회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기재해 왔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나의 지나온 삶의 이력을 어떤 형식으로든 글로 쓸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음성듣기’ 강의를 듣고서 새로운 메모 사항이 생긴 것이다. 그 후로 기록한 노트가 수십 권이 쌓이게 되었다. 다만, 과연 어떤 생각이 하나님이 준 것인지, 내 생각과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였다. 당연히 잘못 오해될 여지도 많았다. 그래서 무슨 영감을 받았더라도 혼자 기억해 두고 신중하게 지켜볼 일이었다. 매사를 주의 뜻을 먼저 살피려고 한다는 점에 의미가 컸다.
그렇게 낯선 분야의 강의를 듣게 되면, 곧바로 서점으로 가서 그 분야의 책을 샀다. 4개월 동안 40여 권을 읽었다. 몇 시간 강의를 듣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책을 구독하였다. 신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은 일주일에 이틀에 불과했지만, 나는 매일 성경과 신앙서적 읽는데 보냈다. 퇴근 후 새벽녘까지 학자처럼 성경과 신앙서적을 탐독하였다. 주말에 신앙강의가 마친 후에는 강의실을 비롯한 건물 청소도 하였다. 강당 바닥을 걸레로 닦고 유리창도 깨끗이 청소하였다. 마치 초등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통하여 단순한 신앙심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