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7)] 술 접대를 요구하는 검사
[정형근 교수 에세이 (7)] 술 접대를 요구하는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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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나를 보자마자 "술 한 잔 사라는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소?"라고 했다. 정색하고 건네는 말을 듣고서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편집자 주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만 할 정도로 가난했다. 19세가 되어서야 중학교를 마쳤지만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검찰 공무원이 됐다. 만학도로 법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그 해 연탄가스 사고로 어머니와 형제를 잃는다.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36세의 나이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는 중,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교수를 찾던 모교 경희대의 제안으로 로스쿨 교수가 됐다. 경희대 로스쿨 원장을 역임했고, 청탁금지법, 법조윤리 분야 전문가다.
1980년 8월 말에 검찰 공무원 인사이동이 있었다. 대검찰청에서 인사이동 명단이 도착하면, 통신 담당 직원이 그대로 받아 적은 다음에 타자기로 타이핑해서 서무과로 전달되었다. 내가 인사대상자에 포함되었는지 궁금하여 통신실로 뛰어 올라갔다. 건네받은 인사이동 명단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찰서기보 정형근" 이렇게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야호! 드디어 서울 간다!" 서울지검으로 가게 된 것이다.
신이 나서 수사과, 사건과 등 여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서울로 발령 났다고 전하고 다녔다. 청사에서 평소 따뜻하게 대해준 직원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여러 선배들이 낯선 부산에서 고생하다가 서울 집으로 가게 된 것을 축하하며 섭섭하다면서 전별금 봉투를 주었다. 월급보다 훨씬 많은 전별금을 받게 되었다. 부산지검을 떠나는 직원들이 신고를 하려고 검사장실로 갔다. 검사장에게 서울지검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서울 거기 공기도 안 좋고 사람 살기 힘든 곳이다"라고 웃으시면서 악수를 청했다. 인사이동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오전에 서울지검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그 날 밤에 기차로 부산을 떠나야 했다.
서울로 가기 전에 얼마 전부터 펜팔로 편지만 주고받던 아가씨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부산역에서 만나자는 전보를 쳤다. 전화번호를 몰라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역 근처의 다방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간 편지만 가끔 주고받다가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서울 가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에 몇 마디 대화로도 좋았다.
그 아가씨가 밤 열차를 타고 가면서 심심할까 봐 과자 한 봉을 사 왔다면서 알사탕을 선물했다. 고맙다면서 받고 보니, 과자를 싼 포장지 한 귀퉁이가 찢어져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서면에서 버스 타고 오면서 심심해서 한 개 꺼내 먹었어예!"라고 했다. 너무 태연스럽게 말하는 그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아예 전부 드슈!"하며 돌려주고 싶은 장난기도 생겼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한 번 만나고 헤어졌다. 그날 밤 서울행 야간열차는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의 출발이었다.
서울지방검찰청으로 발령을 받은 다음 날 답십리 집에서 버스로 청량리로 가 전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렸다. 덕수궁 옆 서소문에 있는 서울지검으로 출근했다. 지금은 서초동으로 이전한 서울지검 검찰청사는 검찰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와 면접시험을 보았던 곳이라서 친숙한 건물이었다. 검사장과 사무국장에게 차례로 부임신고를 마치고 새 근무처로 지정된 증거물과로 갔다.
신입직원을 맞이한 증거물과장은 정년퇴직을 앞둔 연세가 많은 분이었다. 과장은 나에게 사무국장으로부터 "부산에서 올라온 유능한 직원을 증거물과로 보낸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무국장과는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 서울지검 사무국장은 조금 전 부임신고 때 생전 처음 뵌 분인데, 어떻게 그런 전화를 하였을까 의아했다. 혹시 부산지검에서 나를 위하여 전화를 하셨나 궁금했지만, 그럴 리 없는 일이었다.
부산에서 서울 집에 왔더니 긴장이 풀린 탓인지 퇴근 후에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저녁 식사만 마치면 잠이 쏟아졌다. 거의 보름 동안을 그렇게 계속 잠만 잤다. 2주쯤 지나고 나서야 저녁 식사 후에도 정신이 멀쩡했다. 어머니와 형님과 함께 지내는 단칸 셋방이었지만 포근하고 좋았다. 그토록 그리던 서울 집에 왔으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냥 편히 살자는 생각이 솟구쳤다. 직장 다니면서 시험 준비를 하는 게 어렵다 보니, 자꾸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사람이 욕심을 적당히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리고 평소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과 만나며, 다음 날에는 기억도 안 되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부산에서는 서울 집에 가면 정말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지만, 막상 와서는 그런 다짐이 허물어져 갔다. 그렇게 놀면서 지내는 날들이 쌓여가자 점점 마음이 허전해졌다. 퇴근 후에는 할 일이 없어 공허했다. 아침에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하는 그런 일상적인 삶이 무료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다시 고시합격의 꿈을 되살리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끊었다. 공무원이 아닌 수험생으로서의 자세를 굳게 하기 위해서 퇴근 후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침낭을 사 왔다. 밤에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거기서 잠을 자고 출근했다. 독서실의 의자 서너 개를 펴놓고 침낭에서 자는 바람에 피곤이 풀리지 않아 힘들었다. 방에서 편하게 허리를 눕히고 잠을 자는 것은 호강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의지를 굳게 하기 위해서 매일 한 갑씩 즐겨 피우던 담배도 격일제로 피웠다. 하루씩 띄어가면서 피운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학대이기도 했다. 출근할 때는 도시락을 가지고 갔다. 구내식당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 마음도 느슨해지는 것 같아서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압수물보관 창고에 들어가서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서울지검 증거물과는 경찰이나 검사 등 수사기관에서 압수한 물건을 처리하는 압수계와 그 물건을 창고에 보관·관리하는 영치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압수계로 배치되어 형사재판이 끝난 사건기록에 편철되어 있는 판결문에 따라 압수물을 처리하는 업무를 했다. 유죄판결이 선고된 사건의 압수물은 판결 주문에서 처리 방법(몰수⋅환부 등)을 명시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면 형사소송법과 검찰에서 제정한 압수물처리 지침에 따라 국고에 귀속시키거나 폐기하는 등으로 처리한다.
한번은 관세법 위반 사건이 무죄가 선고되어 확정되었는데, 그 증거물로 압수된 금괴의 처리가 문제 되었다. 검찰청 압수물 창고에 보관된 벽돌 크기의 금괴를 관세청으로 보내어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절차를 거치면 고액의 관세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금괴의 소유자는 검찰청에서 곧바로 돌려받으려고 한다. 관세청에서 보관 중인 중국에서 밀수한 고량주 수 천병을 깨뜨려 폐기하는 절차에도 참여해 보았다. 그리고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의 압수물은 제출자나 소유자에게 돌려준다. 강도 사건의 피고인이 빼앗은 보석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게 되었는데, 보석을 찾으러 온 금은방 주인아주머니는 그 사건으로 남편과 이혼했다면서 매우 냉랭한 표정이었다. 강도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두고서 부부 사이에 갈등을 겪다가 결국 헤어졌다고 했다.
압수물은 검사의 결재를 받아서 처리한다. 서울지검 근무 1년이 되어가던 1981년 무렵 결재를 받으러 검사실에 갔더니, 검사는 때마침 한 여자를 세워놓고 호통치고 있었다. "요즘 여자들, 정말 겁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의 여성에게 계속적으로 "요즘 여자들! 요즘 여자들!"을 연발하고 있었다. 저분은 무슨 잘못을 해서 저렇게 당하고 있나 궁금하였다. 결재받으러 온 나를 본 검사는 압수물카드 결재란에 도장을 찍으면서 "정 주임! 술 한 잔 사시오. 증거물과는 짭짤하지 않소"라고 했다. 농담으로 여기고 검사실을 나왔지만, 뭐가 짭짤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후에도 평소처럼 검사의 결재를 받으러 법원 건물로 갔다. 그 당시 공판부 검사실은 서울지방법원 청사 2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그 검사를 만났다. 검사는 나를 보자마자 "술 한 잔 사라는데, 왜 아무런 소식이 없소?"라고 했다. 정색하고 건네는 말을 듣고서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다. 검사가 하급 직원에게 술을 사라고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당시 내 월급이 10만원 될까 말까 한 상태에서 누구를 접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얼마 전에 검사가 '증거물과는 짭짤하다'고 하면서 술을 사라는 것은 곧 상납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무실에 돌아와 검사의 말을 전했더니, 과장님은 "수십 년 검찰 근무 중에 저런 놈은 처음 본다"고 황당해하였다. 다른 직원들도 "완전히 정신 나갔네!"라고 한마디씩 했다. 그 검사는 나중에 부장으로 승진하였고, 서울지검 공판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