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 오르면 한 끼 굶어야"⋯건보료 하한선 인상에 진통제로 버티는 70만 세대
"5000원 오르면 한 끼 굶어야"⋯건보료 하한선 인상에 진통제로 버티는 70만 세대
정부, 26년 만에 건강보험료 최저한선 인상
지역가입자 절반(486만 가구) 영향
밀알복지재단 김래홍 실장 "수천 원 인상도 저소득층엔 고통"

건강보험료 최저하한선 인상 추진으로 저소득 지역가입자와 생계형 체납자의 의료 사각지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단돈 5000원 인상에 병원 대신 진통제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26년 만의 건강보험료 최저한선 인상이 부른 '생계형 체납자'들의 비극이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독거노인 A씨는 서류상 오류로 수급자 자격을 잃었다. 본인이 받지도 못한 자산이 증여된 것으로 잘못 처리된 탓이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A씨에게 매월 2만 원의 건강보험료(건보료)가 부과됐다. 당장 굶을 처지에 건보료 납부는 불가능했다.
결국 3년 가까이 밀린 체납액은 60만 원으로 불어났다. 치료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체납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정지돼 병원비가 10배 이상 청구될 것을 우려한 A씨는 최소한의 진통제로만 버티고 있다.
26년 만의 하한선 인상⋯직격탄 맞는 486만 가구
정부가 추진하는 건강보험료 개편 핵심은 초고소득층의 보험료 상한선을 올리고, 26년째 사실상 동결됐던 최저 보험료(하한선)를 인상하는 것이다.
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상한선 조정 대상자는 직장가입자 하위 1%인 19만 명 정도지만, 지역가입자는 하위 50.7%인 486만 가구가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 거대한 하한선 대상자 집단에는 소득이 불안정한 자영업자, 폐지 줍는 노인, 독거노인 등 생계형 체납자가 대거 포함돼 있다.
"5000원으로 한 끼 해결하는데"⋯현장의 절규
건보료조차 내기 버거워 민간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의 현실은 참혹하다.
김래홍 밀알복지재단 국내사업실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한 달 건보료가 1~2만 원 선으로 낮은데도 당장 생계비가 빠듯해 납입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며 "건보료 체납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주로 장애 아동을 키우는 가정에서 지원 신청이 빗발친다. 한 달 20만 원의 치료비 바우처로는 일주일 치 치료비도 감당하지 못해 남은 비용을 가족이 온전히 떠안으며 공과금과 건보료 체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하한액 인상에 대해 "당장 5000원 이하의 금액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분들에게는 어딘가에서 금액을 또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2000원, 5000원이 일반 가구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더 큰 추가적인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소득 100만 원인데 의료 서비스 박탈⋯"제도적 보완 절실"
현행 제도상 건보료를 장기 체납하면 의료 서비스 혜택에서 제외된다. 건강보험 보호막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오히려 제도 밖으로 밀려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유승민 작가는 "통계에 따르면 5만 원 이하의 건보료임에도 체납하는 생계형 체납자가 매년 70만 세대 발생하고, 이 가운데 75%는 연소득이 100만 원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약 8만 명이 체납으로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돼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저소득층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하한액의 단계적 인상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몇천 원에 생계와 치료가 좌우되는 이들의 현실을 짚어보면, '단계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벼랑 끝에 몰린 의료 소외계층을 구제할 정교한 사각지대 해소 방안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개편은 누군가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가혹한 청구서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