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빚 대신 갚아준 5500만원, 법원 '증여 아닌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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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업소 빚 대신 갚아준 5500만원, 법원 '증여 아닌 대여'

2025. 12. 09 17:01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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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점 종업원과 손님으로 만나 연인 발전

5500만 원 '선불금' 대납이 화근

교제 기간이 2달 미만으로 짧고 거액인 점, 갚겠다는 문자를 보낸 점 등을 근거로 연인 간 송금액을 '증여'가 아닌 '대여'로 판단한 사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연인 관계에서 오간 금전은 사랑의 증표일까, 아니면 갚아야 할 빚일까. 교제 당시 55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상대방의 빚 탕감을 위해 건넸다면 이 돈의 성격은 어떻게 규정될까.


최근 법원은 유흥주점에서 만나 짧은 기간 교제하다 헤어진 연인 사이의 금전 거래에 대해, 명시적인 차용증이 없었음에도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이를 '대여금'으로 판단했다. 단순한 호의로 보기에는 교제 기간이 너무 짧고 액수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 핵심 이유였다.


만난 지 2개월, 송금 후 20일 만에 파국... 초고속으로 식어버린 사랑

사건은 2020년 2월, 서울 강남구의 한 유흥주점에서 시작됐다. 남성 A씨는 손님으로 방문했다가 유흥접객원으로 일하던 여성 B씨를 알게 됐다. A씨는 B씨에게 호감을 느껴 일주일에 2~3회씩 지명하여 만남을 가졌고, 곧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A씨는 B씨에게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선물하는 등 애정을 쏟았다.


문제는 B씨의 경제적 상황이었다. B씨는 해당 업소에서 일하며 선급금 명목으로 5500만 원 상당의 빚을 지고 있었다. 교제 직후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2020년 4월 4일,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하라"며 B씨의 계좌로 5500만 원을 송금했다. B씨는 이 돈으로 업소에 대한 빚을 청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돈이 오간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급격히 악화됐다. 4월 말경, A씨는 B씨가 업소 빚 외에 또 다른 채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지어 자신이 선물했던 롤렉스 시계마저 그 다른 채무의 담보로 맡겨진 상태였다. 신뢰가 깨진 A씨는 이별을 통보하며 "보내준 5500만 원과 시계를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결별 후 B씨는 2020년 5월경부터 A씨에게 여러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는 "다시 일을 시작해 돈을 벌어서 5500만 원과 시계를 전부 돌려주겠다", "당장은 돈이 없으니 기다려 달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실제 변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A씨는 법원에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조건 없는 증여" vs "변제 기한 없는 대여"... 엇갈린 주장

재판의 쟁점은 명확했다. A씨가 보낸 5500만 원의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A씨 측은 이 돈이 '대여금'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차용증을 쓰거나 구체적인 변제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피고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 빌려준 돈이므로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면 B씨 측은 '증여'라고 맞섰다. 연인 관계였던 A씨가 B씨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빚을 갚아준 것이며, 이는 호의에 의한 증여이므로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금전 수수 원인이 다툼이 될 때, 그것이 '대여금'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돈을 빌려줬다고 주장하는 원고(A씨)에게 있다. 특히 연인 간에는 대가 없이 돈을 주는 경우도 많기에 법원의 판단 기준은 더욱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법원의 판단 "증여로 보기엔 액수 과다... 문자 메시지가 결정적 증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민사부(사건번호 2021나51548, 1심 2020가단24005)는 원고인 A씨의 손을 들어줬다. B씨가 A씨에게 5500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돈을 보낸 경위와 두 사람의 관계 지속 기간, 그리고 결별 후 B씨의 태도에 주목했다.


우선 교제 기간 대비 과도한 액수가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돈을 지급했을 때 두 사람의 교제 기간은 불과 한 달여 정도였고,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관계가 끝났다"며 "연인 관계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2개월 남짓의 매우 짧은 기간에 5500만 원이라는 거액을 아무 조건 없이 증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연인 간의 호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한 B씨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A씨가 반환을 요구했을 때 B씨는 별다른 반박 없이 자신의 채무를 인정하며 '다시 일해서 갚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B씨 스스로도 이 돈을 갚아야 할 빚으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A씨가 B씨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이자와 변제기를 정하지 않고 돈을 건넨 것은 맞지만, 이는 '나중에 형편이 나아지면 갚으라'는 의미의 대여였을 뿐, 반환 의무 자체를 면제해 준 증여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B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인 2020년 8월 21일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포함한 5500만 원 전액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연인 사이라도 거액의 금전 거래가 오갈 때는 그 성격이 명확해야 하며, 특히 교제 기간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사랑의 선물'이 아닌 '법적 채무'로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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