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다면 최고형" 위법 체포로 50대 음주운전자 살려준 판사의 분노 섞인 일갈
"다시 만난다면 최고형" 위법 체포로 50대 음주운전자 살려준 판사의 분노 섞인 일갈
만취 운전자 놓아준 판사의 한탄
"야만의 시대에 적법 절차가 합당한가"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50대가 시민에게 붙잡혔지만, 경찰의 체포 절차 위반으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셔터스톡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1단독 최치봉 판사는 시민 손에 붙잡혀 넘겨진 50대 음주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깊은 한탄을 쏟아냈다. 명백한 유죄 상황에서도 법관이 무죄 방망이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이 잡은 만취 운전자, 경찰의 서류 누락으로 뒤집힌 재판
10년 전 이미 음주운전 사망사고 전력이 있는 53살 A씨는 소주 1병과 맥주 500cc를 마신 상태로 또다시 약 10km를 운전했다. 비틀거리는 차량을 의심한 시민들이 그를 직접 붙잡아 경찰에 인계했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자 A씨의 변호인은 "A씨가 위법하게 체포당했다"며 절차적 맹점을 파고들었다.
수사 기록을 살펴보니, 출동한 경찰관들이 시민들로부터 A씨의 신병을 넘겨받는 과정에서 두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사실이 확인됐다.
피의자에게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고지하지 않았고, 현행범인수서(일반인이 체포한 현행범을 인도받을 때 경찰이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공식 서류)조차 쓰지 않은 것이다.
위법한 체포의 나비효과…'독수독과' 원칙에 증거능력 상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에 따르면,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체포할 때 피의사실의 요지와 체포 이유 등을 반드시 알리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를 흔히 '미란다 원칙'이라 부른다.
시민이 붙잡은 현행범을 경찰이 인수할 때도 이 적법한 고지와 서류 작성은 필수다. 법원은 이 과정이 생략된 A씨의 체포를 적법하지 않은 위법 체포로 판단했다.
체포가 위법해지면 이어지는 수사 절차도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이를 법조계에서는 '독수독과(독이 있는 나무에서 열린 열매도 독이 있다)' 원칙이라고 부른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역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는 재판에서 쓸 수 없다는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체포 자체가 위법인 만큼 음주측정 거부 등의 위법성은 판단조차 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체포 이후 경찰이 요구한 음주측정이나, A씨가 이를 거부한 행위 모두 위법한 체포라는 잘못된 토대 위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유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라 범죄사실을 증명할 합법적 증거가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내 양심은 문명의 시대에 있는데"…법관의 고뇌와 엄중한 경고
판결을 내리며 최치봉 판사는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 판사는 법정에서 "음주운전 사망사고 내고도 또다시 음주운전 한 피고인"이라면서도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 양심과 법관의 양심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법관으로서 양심은 적법 절차 원칙을 따르는 것인데, 이는 문명의 시대에 요구되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살고 있고, 살려고 하는 야만의 시대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는 게 합당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실체적 진실을 눈감아야 하는 사법부의 딜레마를 질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낭독을 마치며 A씨를 향해 매서운 경고를 남겼다. "무죄를 선고한다고 해서 피고인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뒤 , "음주운전으로 다시 이 법정에서 만난다면 단언컨대 법이 허용하는 최고의 형을 선고하겠다"고 일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