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9)] 산속 암자로 들어가 시험공부 하려던 결심을 돌린 까닭
[정형근 교수 에세이 (9)] 산속 암자로 들어가 시험공부 하려던 결심을 돌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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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응시 자격, 법대 졸업자로 하기로" 사시 응시 자격에 학력 제한을 둔다는 내용 신문기사를 본 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기 위해서 대입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편집자 주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만 할 정도로 가난했다. 19세가 되어서야 중학교를 마쳤지만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검찰 공무원이 됐다. 만학도로 법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그 해 연탄가스 사고로 어머니와 형제를 잃는다.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36세의 나이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는 중,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교수를 찾던 모교 경희대의 제안으로 로스쿨 교수가 됐다. 경희대 로스쿨 원장을 역임했고, 청탁금지법, 법조윤리 분야 전문가다.
7급 검찰직 시험 합격자 발표 날에 고시 잡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같은 사무실에서 응시하였던 서울대 나온 그 동료는 합격했다. 답십리 이웃집에서 나와 함께 공부하며 관세직 7급에 응시하였던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친구도 합격했다. 불합격 소식에 온몸에 힘이 빠지고, 그대로 땅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 같았다. 머리가 휑하고 다리도 풀렸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왜 나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지 못하고 이토록 어렵고도 힘든 길을 가야 하나 절망이 밀려왔다. 밤새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다. 비좁은 방에 어머니와 형님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한번 실패했다고 너무 감상에 빠져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실패감에 젖어 방황하는 것도 사치라고 여겨졌다.
최종 목표도 아닌 공무원 시험에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목표는 사법시험 합격이지 7급 공무원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서른 살부터는 그 기반 위에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기껏 25세에 불과했음에도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것에 초조했다. 20대 중반에 바라본 나이 서른은 엄청난 것이었다. 26세가 되던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더는 7급 시험 준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해 연말까지만 근무하고 검찰청을 사직하기로 결심했다. 그 후에는 장흥군 천관산에 있는 빈 암자에 들어가 3년간 사법고시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언제까지 고시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 3년 동안에 결판을 내자는 생각이었다.
그 암자는 중학교 졸업 후에 들어갔던 탑산사라는 절 근처에 있는 것이었다. 문짝도 망가져 있었고 벽지도 비바람에 찢겨 있고, 황량한 큰 방에는 녹슨 불상이 놓여 있었다. 그 암자를 발견하는 순간 장차 고시 공부를 할 때는 이곳에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막상 그리 가기로 결정했음에도 마음 한편에는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홀로 지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밀려왔다.
그렇지만 그런 무서움 때문에 공부를 못 할 거 같으면 차라리 고시도 집어치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3년에 300만원 정도가 필요할 것 같아서 돈을 저축해 갔다. 2년 넘게 근무한 퇴직금 액수도 계산해 보았다. 그 후 암자에서 수도승처럼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법시험 과목 책도 사들였다.
그러던 1982년 2월 하순 퇴근 무렵에 내가 보안 담당이라서 사무실 안의 캐비닛 개폐 여부를 전부 확인하느라 늦게 퇴근해야 했다. 보안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석간신문이 출입문 틈으로 휙 들어왔다. 신문을 올려놓으려고 집어 들었더니 서울신문이었다. 신문 첫 면 우측에 놀라운 기사가 있었다. "사법시험 응시 자격, 법대 졸업자로 하기로" 사시 응시 자격에 학력 제한을 둔다는 내용이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기사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사법고시에 관한 제도개선 공청회를 하였는데, 응시 자격을 법대 졸업자로 제한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공청회가 뭔지를 몰랐다.
정말로 그 기사처럼 응시 자격에 학력 제한을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법대 졸업은커녕 고등학교 교문도 가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응시 자격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독학으로 고시 공부하자며 산속 암자로 들어갈 것인지, 지금이라도 대학을 가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사법시험 응시 자격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산속으로 갈 수는 없었다. 이 사회는 중학교 졸업자가 역경을 극복하고 고시에 합격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받은 자를 원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대학을 가야 했다. 지금이라도 법과대학을 가자! 발걸음을 재촉하여 검찰 청사를 나온 즉시 시청역에서 전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렸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기 위해서 대입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