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주간, 법정 기록으로 다시 보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
광복절 주간, 법정 기록으로 다시 보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
문학적 업적과 친일은 별개
범죄는 처벌 못 해도 '재산 환수'는 합헌
무턱대고 '친일파' 불렀다간 명예훼손

현행법상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어렵지만, 친일행위 결정과 재산 환수는 행정·민사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셔터스톡
이번 주는 빼앗긴 빛을 되찾은 광복절이 있는 주간이다. 해방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뼈아픈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법적 다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며 친일파를 형사 처벌할 길이 열렸으나, 일부 세력의 반대로 공소시효가 단축되고 1951년 법이 폐지되면서 결과적으로 면죄부만 부여한 꼴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현행 법체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대신 현재는 친일반민족행위 결정·공표와 재산의 국가귀속이라는 행정적·민사적 방식을 통해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친일 행위와 그 후손들의 재산, 그리고 오늘날 '친일파'라는 단어의 무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판례를 통해 법정의 시선을 분석해 봤다.
친일의 기준⋯ '자리'만으로도 유죄인 자 vs '적극성'이 필요한 자
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어떤 직책을 맡았느냐에 따라 친일 행위의 판단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직기간이 매우 짧거나 실제로는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그 자리에 앉은 것 자체를 변명할 수 없는 친일로 본 것이다.
반면, 일제강점기 '판사'로 일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판사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로 인정되려면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의 탄압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적극성도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항일독립운동가 이성태 등의 재판에 참여하고 일본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판사에 대해서는 '적극성'이 인정되어 친일행위 결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예술은 예술, 친일은 친일"… 소설가 김동인을 향한 판사의 일침
징병과 학병을 선전·선동하는 산문과 황민화 선전 소설 「백마강」을 썼던 소설가 김동인. 그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문인의 글이 가진 영향력을 언급하며 그의 행위에 '주도성'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특히 이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인상 깊은 문구를 남겼다.
>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 개인의 전인격적 평가가 아님"
즉, 그의 문학적 업적이 뛰어나다는 사실과 친일 행위에 대한 역사적·법적 평가는 철저히 별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친일 재산 환수, '헌법의 이념'으로 정당성을 얻다
일제에 부역하며 쌓아 올린 재산을 훗날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친일재산귀속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비록 과거의 행위로 소급해서 재산을 빼앗는 '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3·1운동의 헌법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며 예외적인 허용을 인정했다.
또한, 친일재산이 아닌 후손 스스로 경제활동을 통해 모은 재산까지 뺏는 것은 아니므로 헌법상 '연좌제 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심지어 친일재산은 위원회의 별도 결정이 없더라도 취득 시점에 소급하여 당연히 국가 소유가 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함부로 '친일파'라 불렀다간 모욕·명예훼손
역사적 청산과는 별개로,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섣불리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엄격한 법적 제재를 받는다.
사자명예훼손
자신의 블로그에 사망한 피해자를 향해 아무런 근거 없이 "친일파 기업인"이라고 지칭한 사건에서 법원은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모욕 및 손해배상
학교 급식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 동급생에게 "할아버지가 친일파"라고 말한 학생과 그 부모에게, 법원은 공동으로 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라는 말은 단순히 우호적이라는 의미를 넘어 상대방을 경멸적으로 표현하거나 조롱하는 표현"이라며 명백한 모욕 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독재자의 딸인 정치인을 향해 "그의 아버지는 친일파이자 독재자"라고 한 게시글에 대해서는 사실 적시가 아닌 널리 알려진 사항에 대한 개인의 가치판단이나 의견 표명으로 보아 무죄가 선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