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님들이 조용히 있어서 그렇지, 신고만 하면 '군기 잡은' 선배님들 위험할걸요?
후배님들이 조용히 있어서 그렇지, 신고만 하면 '군기 잡은' 선배님들 위험할걸요?
개강 전 '신입생 공지' 전달하며 군기잡는 일부 대학생들
선후배 간 군기 잡기, 형사상 '강요죄'로 처벌 가능
해당 학교에 법적 책임 묻기는 힘들어

'잘못된 조직문화'로 끊임없이 지적받는 군기잡기를 근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게티이미지코리아
1. 여학생은 귀가 보이게 머리 묶어라.
2. 캠퍼스 내에서 에어팟 쓰지 마라.
3. 평일 학교 근처에서 아이섀도 바르지 마라.
4. 카톡 프사에 여행 사진 업로드 하지 마라.
최근 새 학기를 앞두고 각 대학의 학생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단체카톡방)'이 '신입생 공지'로 떠들썩하다. 곧 있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 공지를 암기해오라거나 캠퍼스에서 지켜야 할 내용이라는 알림들이었다.
이 내용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자 "선배들의 갑질", "군대보다 엄격하다", "어떻게 저건 매년 똑같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규칙을 정해 선후배 간 복종을 강요하는 일명 '군기잡기'라는 것이다.
학과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미명 하에 가혹행위와 강요를 당연시하고, 마치 전통처럼 후배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엔 이를 견디다 못한 한 대학생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잘못된 조직문화'로 끊임없이 지적받는 군기잡기를 근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군기잡기를 처벌할 수 있을지 변호사들과 함께 분석해봤다.
변호사들은 '대학 내 군기잡기'는 '형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이지만 형사 처벌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종합법률사무소 기쁨의 송준선 변호사는 "신입생이나 저학년의 경우 앞으로 다녀야 할 학교생활을 고려할 때 (신고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선배들을 고소하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처벌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조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 후배 입장에선 선배와 대학 졸업까지 함께 학교생활을 하려면 불합리하다고 느껴도 견뎌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기원의 강기원 변호사도 "군기잡기에 대해 형사 처벌된 사례가 적은 이유는 군기잡기 행위가 형사적으로 문제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며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후배고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볼 가능성이 높아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군기잡기의 특징은 조직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선배의 말을 어기면 집단 따돌림을 시키고, 이를 다른 학과생에게까지 강요한다. 이렇게 집단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선배들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에 적용할 수 있는 혐의는 '강요죄'다. 강요죄는 ①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②다른 사람의 의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한다.
송준선 변호사는 "군기잡기는 폭행·협박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고, 신입생은 이를 거부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강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구체적인 사건에 따라 상해죄 등 다른 범죄도 성립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강기원 변호사는 "만약 단체 또는 다중(많은 사람)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으로 가중처벌된다"며 "조직적인 가해에 해당한다면 해당 가해자 모두 가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기잡기로 피해를 입었다면, 형사 고소 외에도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강기원 변호사는 "가해자인 선배가 강요죄 등의 형사 처벌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인 후배는 해당 선배를 상대로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청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송준선 변호사도 "형사처벌이 되지 않은 미미한 수준의 군기잡기의 경우라도, 민법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며 "구체적인 사건과 불법행위 정도에 따라 손해배상금액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고 했다.
군기잡기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불거지는 문제는 학교 측 책임이다. 학내 부조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측이 예방에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 측에 군기잡기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애매하다. 교수나 학과 측이 선후배 간 벌어지는 모든 일을 확인하거나 교육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송준선 변호사는 "만약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①군기잡기를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와 ②이를 막기 위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마지막으로 '군기잡기'로 발생한 피해와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 인과관계 등이 모두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학교 측에 군기잡기를 예방해야 할 의무가 존재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학교 측이 그 의무를 다했는지 따져본 뒤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반면 강기원 변호사는 "교수 등 교직원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방치했다면 형사상 강요죄에 대한 방조(幇助)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