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기회뿐인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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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기회뿐인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2022. 07. 08 14:02 작성2022. 07. 08 16: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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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2004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왱크 연기)에게 트레이너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거듭 가르친다. / Warner Bros. Pictures

권투 선수는 경기 중에 종종 살이 찢겨 피가 터진다. 피가 멈추지 않으면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고 패배를 선언한다. 그래서 지혈사가 선수와 함께 팀을 이룬다.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 연기)은 경험 많고 솜씨 좋은 지혈사이다. 어지간한 출현은 감쪽같이 잡는다. 선수에게 20초 뒤에 피가 다시 터지니 그 안에 승부를 내라거나, 상처 부위에 펀치를 맞아 피를 멎게 하는 방법까지 일러준다. 지혈사로 시작한 그는 트레이너이자 매니저이다. 선수를 훈련 시켜 적절한 상대를 잡아 시합을 붙이면서, 선수의 경력과 실력을 쌓아 챔피언을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프랭키의 체육관은 좁고 낡았다. 선수를 태우는 자동차는 걸핏하면 멈추고, 청소용 세제는 가장 싼 것만 쓴다. 체육관 운영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선수를 키워 챔피언을 만들어야 한다.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유일하게 전망이 있는 선수 윌리 리틀(마이크 콜터 연기)은 프랭키에게 타이틀 매치를 붙여달라고 한다. 타이틀 매치에서 이기면 챔피언 벨트를 받는다. 단 한 번 기회인 타이틀 매치에 프랭키는 신중하다. 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때 붙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윌리는 이미 훈련할 만큼 했으며, 타이틀 매치가 늦어질수록 벌어들일 돈만 적어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꾸 시합을 미루자 윌리는 다른 매니저에게 가겠다고 선언한다. 프랭키는 "그자는 장사꾼이야. 거기선 배울 게 없어"라고 하지만, 윌리는 "필요한 건 이미 다 가르쳐주셨습니다"라며 체육관을 떠난다. 오랫동안 프랭키가 훈련시킨 윌리는 다른 트레이너에게 가서 곧바로 챔피언이 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권투 트레이너로 별달리 빛을 보지 못하고 늙어가는 프랭키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프랭키는 윌리에게 챔피언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었지만, 윌리는 프랭키에게 챔피언 트레이너로 성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챔피언 매치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프랭키의 신중함, 이와 달리 이미 챔피언 실력을 갖추었다는 윌리의 자신감이 충돌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프랭키 판단이 틀렸고, 윌리 생각이 맞았다. 플랭키가 왜 이렇게 신중한 사람이 됐는지 추측할 수 있는 이유가 영화에 나온다.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는 에디 듀프리스(모건 프리먼 연기)는 젊은 시절 권투 선수였다. 어느 날 시합에 코치가 나타나지 않아 지혈사인 프랭키와 둘이 나갔다. 4라운드에 상처가 벌어져 피가 멈추지 않았다. 프랭키는 게임을 포기하라고 했지만, 에디는 흑인이라 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계속 싸웠다. 프랭키는 코치가 아니어서 링으로 수건을 던져 게임을 중단시키지도 못했다. 에디는 15라운드까지 마쳤지만 판정패했고, 눈으로 들어간 피 때문에 한쪽 눈을 잃었다.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는 에디 듀프리스(모건 프리먼 연기)는 젊은 시절 권투 선수였다. 무리해서 경기를 하다가 한쪽 눈을 잃었다. / Warner Bros. Pictures
프랭키의 체육관에서 청소와 잡일을 하는 에디 듀프리스(모건 프리먼 연기)는 젊은 시절 권투 선수였다. 무리해서 경기를 하다가 한쪽 눈을 잃었다. / Warner Bros. Pictures


유일한 유망주 윌리가 떠날 무렵 서른 살 넘은 여자 연습생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왱크 연기)가 들어온다. 트레이너 프랭키는 여자를 가르칠 생각이 없지만, 체육관에 회비가 궁한 걸 아는 에디가 받았다. 프랭키는 권투를 가르쳐 주지 않고 다른 체육관을 알아보라고 한다. 하지만 매기는 권투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며 체육관에서 혼자 연습한다. 어떻게 해도 가르쳐 줄 생각 없는 프랭키에게 매기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열세 살에 시작한 식당 종업원 생활이 끝이 나질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빠는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아버지는 죽었으며, 어머니는 140kg 몸무게로 산다"면서 "더는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도 한다. 프랭키는 매기를 가르치고 그에게 배운 매기는 승리를 이어간다. 매기는 다른 매니저들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한다. 두 사람은 깊이 신뢰하는 관계가 된다.


마침내 100만 달러(Million Dollar)가 걸린 타이틀 매치가 성사되지만, 시합 중에 일어난 사고로 매기는 전신마비가 된다. 매기는 프랭키에게 안락사를 원한다며, 아직 관중 환호성이 기억날 때 떠나게 해달라고 한다.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지만, 챔피언이 될 기회가 있었기에 행복한 삶이었다고 한다. 프랭키가 거절하자 매기는 스스로 혀를 깨문다. 목숨을 끊는 데 실패하자 다시 깨문다. 결국 프랭키는 매기가 원하는 그 기회를 준다.


사법분야를 취재하면서 요즘 변호사들 실력 없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왔다. 2022년 1500명인 합격자가, 1000명이던 시절은 물론 700명, 500명, 300명 때도 이 얘기가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71년 사법시험에서 처음으로 정원을 정해 뽑았다. 이전까지 절대평가였다. 이 때문에 사법연수원 교수가 "실력도 없는 무자격자를 뽑았다"고 했다고 했다. 이 연수원 제1기 입학생은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32명에 불과했다. 이른바 요즘 변호사들 실력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은 주로 몇 해 앞서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이 얘기는 합격자 수를 줄이라는 주장으로 곧잘 이어진다. 하지만 더 오래전에 임관한 법조인은 오히려 요새 법조인이 공부를 더 많이 한다고 한다. 합격자 50명 시절 임관한 고위 법관은 합격자 1000명 시절 변호사들을 두고 "요새 연수원생들 공부량은 우리 때와 비교가 안 되게 많다. 처음부터 많은 법률지식을 쌓아 법률가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다.


무엇이 기회인지 단정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연구과정에 다니던 시절, 법학을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끼리 종종 모였다. 이 중에 로스쿨을 휴학하고 사법시험 예비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었다. 예비시험은 로스쿨 검정고시 같은 것으로, 합격하면 사법시험 응시자격이 생긴다. 로스쿨을 후다닥 졸업하면 될 텐데 왜 예비시험을 치고 있는지 궁금했다. "도쿄대학 로스쿨 졸업장보다는 예비시험 합격증을 취업시장에서 더 알아주고, 더구나 나는 출신학부가 도쿄대학이 아니라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 사법시험 합격자 4명 가운데 1명이 예비시험 출신이고, 이들이 대형 로펌 변호사 자리를 휩쓴다. 2020년 사법시험 합격자 1450명 출신을 보면 예비시험이 26.07%(378명)로 가장 많다. 도쿄대학 8.69%(126명) 게이오대학 8.62%(125명) 교토대학 7.38%(107명) 순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던졌다고 사람들이 분개했었다. 사람들은 갑질이라며 분노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가벼운 폭행 사건에 불과했다. 다른 이의 기회를 빼앗는 진짜 갑질 의혹은 물컵이 논란이던 2018년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었다. 조현민 전무의 형제자매 3명이 주식 100%를 소유한 회사에 대한항공이 일감을 몰아주다 적발된 사건이다. 대한항공이 고객과 주주, 경쟁 납품업체의 기회를 빼앗고 손해를 끼쳤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2017년 부과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3남매인 현아·원태·현민씨가 주식 100%를 가진 싸이버스카이와 90%를 가진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일감으로 손쉽게 대규모 이익을 올렸다. 기내 면세품 인터넷 예약 사업을 받아 업무대행 수수료로 매출액 일부를 챙긴다거나, 국내선 면세품 카탈로그 제작을 하고 판매액 일부를 수수료로 받았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이를 두고 외국에서는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해서 터널링(tunneling)으로 부른다. 기업 관계자가 내부거래를 통해 자신과 가족에게 기업의 부를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는 공정거래법 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공정위는 적용했다. 이 조항은 2014년 신설된 것으로 다른 부당지원과 비교해 가족 등에 대한 부당지원은 규제가 쉽도록 했다. 국회가 제시한 개정이유에도 "현행법상 부당지원행위는 (회사 간 거래에 주로 인정되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어 (가족 등) 특수관계인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입증이 곤란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특수관계인이 대상이면) 공정거래 저해성이 아닌 부당이익 제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규정을 신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한진그룹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식구들이 부당한 이익을 주고받은 게 아니라고 했다.


마침내 100만 달러가 걸린 타이틀 매치가 성사되지만, 시합 중에 일어난 사고로 매기는 전신마비가 된다. / Warner Bros. Pictures
마침내 100만 달러가 걸린 타이틀 매치가 성사되지만, 시합 중에 일어난 사고로 매기는 전신마비가 된다. / Warner Bros. Pictures


기회는 경쟁의 출발점이다. 기회가 없으면 경쟁에 뛰어들 수 없다. 경쟁에 참여하는 이유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시장에서 챔피언이 되는 순간 다른 이의 기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 이른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다른 사람의 출발을 봉쇄할 수 있다.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면 일시적으로 상품 가격을 크게 내리는 등의 방법으로 경쟁자의 싹을 자르는 일이 가능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경쟁에 참여하는 목표가 참여가 아니라 챔피언이 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참여할 기회가 아니라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이에 관한 논쟁이 '경쟁 보호냐, 경쟁자 보호냐'이다. 우리 대법원은 2007년 이른바 포스코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경쟁 보호'라고 방향을 밝혔다.


포스코 사건은 이렇다. 냉연강판은 표면이 매끈한데 프레스 가공에도 견뎌 자동차 차체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냉연강판 원료인 열연코일 시장은 포스코가 독점 사업자였다. 하이스코가 냉연강판 공장을 세우고 열연코일을 주문했지만 포스코는 "팔지 않겠다"고 했다. 포스코가 냉연강판 시장의 사업자이기도 했는데 이 시장의 경쟁자 진입을 막은 것이다. 공정위는 2001년 포스코의 거래 거절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이라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공정위 패소로 판결했다. 다수의견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의 부당성은 독과점적 시장에서의 경쟁촉진이라는 입법목적에 맞추어 해석하여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경쟁의 보호가 아닌 경쟁자의 보호를 위한 규제가 되어 시장경제의 본래적 효율성을 저해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이에 맞서 소수의견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이미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경쟁제한의 우려와 관계없이 지위남용으로 야기될 수 있는 폐해를 규제하여야 한다"고 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가 전신마비가 되는 사고는, 상대의 반칙 때문에 생겼다. 선수를 보호해주지 않는 링에서 주어지는 출전 기회는 기회가 아니다. 경쟁을 위해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챔피언이 되려고 경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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