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법의 새 패러다임, '회복적 사법' 10년 이끈 조균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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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법의 새 패러다임, '회복적 사법' 10년 이끈 조균석 교수

2019. 08. 20 15:3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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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mi@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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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어 '회복적 사법센터'도 국내 첫 설립

"국가 역할, 가해자 엄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회복적 정의로"

경찰·검사·판사 등 형사법 실무자들과 매달 연구모임, '100회' 맞아

로톡뉴스가 조균석 교수를 만나 회복적 사법의 개념과 역할, 회복적 사법에 천착하게 된 계기 등을 상세히 들어봤다. /안세연 기자

[편집자 주] 판사나 검사, 경찰관 등 형법 전문가들이 최근 ‘사법의 역할’에 회의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가해자를 엄벌한 이후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깨어진 그대로고, 피해자의 상처받은 심리와 옅어진 사회 소속감은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 사법의 역할은 단지 범죄 사건에 적용할 법조문을 찾아 그에 맞는 형벌을 가하는 것, 거기까지일까.


10여 년 전 검찰을 떠나 이화여대 로스쿨로 오면서 ‘회복적 사법센터’를 설립한 조균석 교수(회복적 사법센터 소장)는 매달 ‘회복적 사법 포럼’이라는 연구모임을 개최하며 형사사법이 나아갈 길을 찾는데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다수의 경찰, 변호사, 검사, 판사, 학자, 교정관 등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회복적 정의’가 형사사법의 모든 실무 단계에 적용되도록 힘쓰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에 로톡뉴스가 지난 13일 조균석 교수를 만나 회복적 사법의 개념과 역할, 회복적 사법에 천착하게 된 계기 등을 상세히 들어봤다.



**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회복적 사법센터 소장) /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역임 / 前 한국피해자학회장


‘회복적 사법’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 있는데요, 설명을 부탁 드립니다.

‘회복적 사법’은 ‘리스토러티브 저스티스(Restorative Justice)’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저스티스(Justice)’는 ‘정의’를 뜻함과 동시에 ‘사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회복적 사법’은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의 속성이 어떠해야 하는가, 또한 우리 사법제도의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시한 하나의 철학이자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형사사법 제도는 그 동안 국가와 가해자만을 절차의 당사자로 여겨왔습니다. 국가가 피해자를 대신하면서,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게 형사사법의 지향이라고 말해 왔어요.


그랬기 때문에 경찰-검찰-법원-교도소로 이어지는 모든 형사 절차 단계 종사자들은 지금까지 피고인의 범행과 그에 따른 처벌을 살피는 일에만 몰두했고 또 그게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조금 진보한 것이 재범 방지를 위해 가해자를 교육하고 교화하자는 형사정책인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가해자만 주목할 뿐입니다.


회복적 사법은 이런 관점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가해자에만 관심을 두는 형사 절차가 아니라 피해자를 중심에 두는, 그것도 피해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서 범죄피해가 있기 이전의 상태로 최대한 회복시켜주려는 사법제도가 바로 ‘회복적 사법’입니다.


사실 ‘회복적 사법’이라는 말 자체는 새로울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이 이념이 구현된 제도가 시행되고 있고, 우리 조선 시대의 향약(鄕約·조선시대 지방자치 규약)도 이 회복적 사법의 이념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국가 형벌에 기대기 이전에 이해와 존중에 기반한 대화로써 화해를 먼저 도모하고, 할 수만 있다면 형사적 갈등을 가해자와 피해자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회복적 사법을 위해서는 모든 형사사법 단계의 실무자들 역할이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 검찰, 판사, 교정직원 등이 그동안 범죄 사안을 바라보던 시각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가해자가 어떤 법을 위반해서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에서 끝나지 말고, 피해자와 회복에도 동일한 관심을 둬야 합니다.


‘회복적 사법’ 이념을 처음 체계화하고 이론화한 하워드 제어 교수는, 이 때문에 회복적 사법을 받아들이려면 '렌즈 바꾸기(changing lens)’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어 교수는 사진작가이기도 해서 이런 비유를 한 것인데, 적절한 말입니다.


범죄에 대한 국민 정서가 엄벌만을 중시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범죄 피해라는 게 원래 알던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관계에서 당사자들은 엄벌만이 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회복을 더욱 간절히 원합니다.


대부분 “이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강하게 품고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게 재산상 피해가 됐든, 심리적 피해가 됐든, 관계적 피해가 됐든, 사회적인 어떤 피해가 됐든, 피해자가 핵심적으로 원하는 것은 ‘회복’이라는 것을 많은 실무자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가해자도 마찬가지 마음을 갖고 있어요.


실무자들은 지금보다 더욱 ‘피해자는 어떤 상황이고, 피해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피해자의 감정은 어떤가, 어떻게 하면 양 당사자가 깨어진 관계와 심리, 사회 소속감을 회복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양측의 의사는 어떠한가’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은 이해와 존중, 대화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경찰은 이러한 변화 요구를 상당히 전향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회복적 경찰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4월부터 전국 15개 경찰서에서 시범 운영을 실시했고, 이걸 내년에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해요. 아주 고마운 결실입니다. 형사 절차 초기 단계인 경찰에서부터 화해와 회복이 일어나면 더욱 바람직하다는 데에 경찰도 공감을 해 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상 촬영 및 편집 = 안세연 기자


10년 전 ‘회복적 사법센터’라는 이름으로 이화여대에 처음 깃발을 꽂고, 회복적 사법 전파를 위해 한결같이 노력해 오신 데 대한 결실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하워드 제어가 ‘회복적 사법’ 이론을 정립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고, 우리나라에 이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제가 2008년에 이화여대 로스쿨로 와서 다음 해인 2009년에 이 센터를 설립하고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으니 올해가 10주년이죠. 마침 매달 한 번씩 갖던 연구모임도 올해로 100회를 맞아서 지난 7월에 10주년과 100회를 함께 기념하는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어요.

처음 시작하던 때엔 크지 않았지요. 그래도 점차 참여하는 인원이 꾸준히 늘어났고, 모든 분들이 함께 노력해 주신 덕분에 이런 결실을 보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회복적 사법에 관심 있는 누구나가 참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뒀기 때문에 우리 모임에는 경찰, 검사, 판사, 교정직 공무원, 학자,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서 함께 공부하고 생각을 나눕니다.


회복적 사법은 우리 형사사법 제도가 가야 할 길이고, 또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급함을 갖지 않았습니다. 조급함을 가졌다면 10년이 되어서야 가시적인 결실이 나오는 게 답답할 수도 있을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처럼 각계 각 영역에서 공감하는 사람들이 저변에서부터 서서히 변화를 일으키는 방식은 속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 센터와 모임을 누군가 맡아서 잘 이어가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복적 사법 연구에 집중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1985년에 검사가 되고, 5년 후 검사 신분으로 일본 게이오대학에 유학을 갔는데, 그때 제 지도교수가 일본의 고(故) 미야자와 고이치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분은 세계 피해자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한 피해자학의 최고 권위자셨어요.


지도교수님의 영향으로 피해자 중심 형사법과 피해자 인권을 많이 생각하는 검사가 된 것 같습니다. 검사가 피고인만 만나는 게 아니라 피해자도 만나지요. 억울한 사연의 피해자를 상당히 많이 만나요. 그런데 국가와 학자들이 피고인 인권은 생각해 주는데, 아무 잘못도 없이 범죄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그 당시에 매우 드물었습니다.


유학을 하고 1년 뒤 한국에 들어와서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으로 파견을 나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곳에서 피해자학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연구원에 있는 동안 민건식 변호사님과 함께 한국피해자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간사를 맡아 여러 일을 많이 했죠.


제가 김천지청장으로 부임한 2003년은, 지식으로 알던 것을 실행에 옮긴 때입니다. 지청장이라는 자리는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는 자리예요. 저는 피해자 중심 형사법의 중요성을 지역 민간단체와 주민들과 공유했고, 지역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한국피해자지원센터를 김천에 만들었습니다.


당시 성범죄 피해자나 가정폭력 피해자는 국가로부터 도움을 좀 얻을 수 있었는데, 살인이나 강도 같은 일반 형사 피해자들은 그런 지원이나 보호를 받지 못했어요. 이런 공백을 우리가 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서 메워줬던 거죠.


이게 알려지니까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검찰에서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국가가 관심 가져주지 않는 피해자를 검사가 도와준다고 하니까 다들 좋게 본 거죠. 얼마 안 있으니 대검찰청에서 “이걸 전국에 다 설치해라”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 전국 검찰청에 피해자지원센터가 다 있습니다.


이 센터를 전국에 만들면서 그 근거법으로 2005년에 제정한 것이 범죄피해자보호법입니다. 제가 검찰에 있으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씀 드렸듯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단계가 이 회복적 사법이거든요. 2008년 9월에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오게 되면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회복적 사법 연구와 전파에 매진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회복적 사법에 대한 신념은 피해자 중심 형사법을 추구한 데서부터 이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회복적 사법에 대한 국내 연구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교수님 견해를 부탁드립니다.

앞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에 회복적 사법이 소개된 시기는 많이 늦은 편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학자들도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시행이 아주 잘 되는 축에 속합니다. 경찰이 대대적으로 회복적 경찰활동을 시행하는 것만 봐도 상당한 것이죠.


연구수준도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학 관련 분야는 우리보다 훨씬 앞섰던 일본이, 회복적 사법 연구는 우리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회복적 사법 연구에 선진적인 우리 연구를 참조하기 위해 우리 서적 중 하나를 내년에 일본에서 출간하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지금 그 작업이 번역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검찰이 하고 있는 형사조정, 법원이 하고 있는 소년재판 화해 권고가 현재 시행 중인 회복적 사법 활동에 해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일어나는 범죄 건수가 약 200만 건인데, 그 중 12만~13만 건이 형사조정으로 해결되고 있으니 비중은 높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아직까지는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특히 법원이 이를 더욱 확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사실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전국 각 지역에 이 회복적 사법센터 또는 회복적 사법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봅니다. 경찰로 가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양 당사자가 자치적으로 풀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역할을 하자는 것이죠.


지금 서울시가 이웃분쟁조정센터를 만들어서 운영을 하고 있죠. 이 센터는 현재 층간소음이나 민사적인 부분만을 다룬다고 하는데, 여기서 다루는 사건에 형사 사건을 포함시키면 기능적으로 제가 말한 회복적 사법센터나 위원회가 되는 겁니다. 이런 센터는 서울시에 하나가 아니라 각 동사무소, 전국 각 지역 단위마다 설치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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