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새로운 해석 기다리는 헌법 제21조
[로드무비] 새로운 해석 기다리는 헌법 제21조
[law de movie]
더 포스트(The Post), 2017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쪽 번호가 잘린 펜타곤 페이퍼를 뒤늦게 입수한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순서를 맞추고 있다. 2014년 부고 기사에서 워싱턴포스트는 "브래들리가 뉴스룸을 지휘하는 동안, 세계 주요 신문사로 성장했고 발행부수도 2배가 됐다"고 했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Twentieth Century-Fox Film Corp.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경계가 사라져간다고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1936)」에서 말했다. 소수의 쓰는 사람과 수천 배의 읽는 사람으로 나뉘던 시절에서, 독자도 언제든 필자가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노동하는 유럽인이라면 누구라도 노동 체험이나 르포르타주(reportage, 기록문학)를 발표할 기회를 가진다고 했다. "저자와 대중을 구별하는 근본적인 성격은 사라지고 있다. 독자는 언제든 필자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
벤야민의 말대로 누구에게나 쓸 기회가 생겼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 카피를 인쇄하는 미디어는 누구나 쓰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미디어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투표수로 권력을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등장은, 신문 윤전기와 방송 송출기를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에 정치권력에 버금가는 힘을 주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는 권력의 다른 얼굴, 반권력(antipower)이었다.
영화 <더 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의 낙종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1971년 뉴욕타임스가 국방부인 펜타곤 1급 기밀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확전하기 위해 사건들을 조작해 왔다는 내용이다. 이때까지 베트남전에 미국이 개입한 계기는 1964년 베트남 근해 통킹만 사건이었다. 북베트남 어뢰정이 공해에서 미국 구축함 매덕스 호를 선제공격했다고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이 함정은 구축함이 아니라 정보수집 소형함이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함정을 공격한 증거도 없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기사가 '펜타곤 페이퍼로 밝혀진 미국의 군사개입 확장 30년'이다. 법무부는 추가 보도를 금지하는 임시처분을 신청했다. "계속해서 이 보고서가 보도된다면 미국의 안보 이익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연방법원 1심에서는 임시처분이 인용됐고, 2심에서 본안까지 인용됐다.
뒤늦게 워싱턴포스트도 펜타곤 기밀문서를 입수한다. 그런데 취재원이 뉴욕타임스와 같다. 따라서 추가 보도 금지 임시처분의 효력이 워싱턴포스트에도 미친다고 했다. 회사 변호사들은 사주와 편집국장이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고, 이사들은 상장을 통한 투자유치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의 결단으로 기밀분서는 보도된다. 기사가 나가자 법무장관이 워싱턴포스트로 전화한다. "이러한 보도는 안보에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하므로 더는 보도하지 말기를 요청한다." 이 전화를 한 법무장관이 이후 연방대법원장이 되는 윌리엄 렌퀴스트이다.
두 신문사 사건 모두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가고, 연방대법원은 언론사가 펜타곤 문서를 보도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New York Times Company v. United States; United States v. The Washington Post Company, June 30, 1971). 다수의견은 휴고 블랙 대법관이 썼다. "안보는 포괄적이고 불분명한 일반화이다. 그 그림자가 수정헌법 제1조의 원칙을 폐지할 수는 없다." 1789년 발효된 미국헌법은 1791년 10개 조항이 추가됐다. 기본권에 관한 것으로 흔히 수정헌법이라 부른다. 수정헌법 제1조에 표현의 자유가 들어있다.
영화에서는 판결과 함께 신문 제작 과정이 나온다. 기자가 타자기로 원고를 쓰면, 납으로 만든 활자가 추려지고, 네모난 틀에 넣어져, 거대한 윤전기에 걸린다. 종이가 잘리고 접혀서 한 부의 신문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듬해 1972년 워싱턴포스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언론학 교과서들은 수정헌법 제1조가 과거의 유물이라고 의심한다.
"누구나 언제나 뉴스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수정헌법 제1조 자체가 과거 한결 엘리트주의적이고 표현이 제약되던 시기의 유물이 아닌가도 싶다(Bill Kovach & Tom Rosenstiel, The Elements of Journalism, 2021)."

신문과 방송이 가진 권력의 원천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윤전기와 송출기와 같은 발행 수단이 권력의 토대다. 대한민국헌법 제21조 제3항 '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도 이를 반영한 조항이다. 신문사가 되려면 윤전기가 있어야 했고, 윤전기가 있어야 신문사가 됐다. 윤전기를 법률로 요구했다. '타블로이드 2배판 4면 기준의 신문지를 시간당 2만부 이상 인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윤전기와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수인쇄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옛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정했다.
이 조항은 2005년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로 바뀌면서야 사라졌다. 현재 한국 일간지 가운데 윤전기를 소유하지 않은 회사가 더 많다. 2019년 현재 신문협회 소속 일간지 46개 사 가운데 윤전기를 보유한 곳은 22개 사에 불과하다. 중앙일간지 10개 사 가운데도 2개 사에 윤전기가 없다. 외부에 인쇄를 맡긴다. 윤전기를 소유한 언론사도 절반 이상을 세워두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방송사도 비슷하다. 공중파 송출을 위한 값비싼 시스템이 무용지물이다. 유튜브 등에 프로그램을 올려 시청자에게 전달한 지 오래됐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 전후로 시작된 인터넷 환경에서 비롯됐다. 묶음으로 팔리던 기사가 낱개로 풀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일간지는 매일 200여 개 기사를 통째로 팔았다. 조선일보에서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를 읽으려면 '김대중 칼럼'도 구입해야 했고, 한겨레에서 '정운영 전망대'를 읽으려면 '날씨와 생활'도 사야 했다. 하지만 지면에 있는 기사가 인터넷에도 서비스되면서 기사는 낱개로 잘려서 유통되기 시작했다.
방송뉴스도 마찬가지다. KBS 9시뉴스와 MBC 뉴스데스크에서 순서대로 방영되던 1분 30초짜리 아이템 30여 개가 낱개로 유통되고 있다. 이런 신문과 방송의 새로운 상황은, 디지털 음원이 등장하면서 CD를 비롯한 음반이 사라진 일과 같다. 이제 가수들은 12곡을 통째로 팔지 않고 1곡씩 판다. 가수로서는 끼워 팔던 노래가 없어졌고, 소비자로서는 묶어 사던 노래가 사라졌다. 덤으로 사고팔던 노래가 불량품일 수도 있고, 상업성은 없지만 예술성이 있는 작품일 수도 있다. 아무튼 뉴스도, 노래도 개별 가치를 평가받는다.
과거 지면과 전파라는 한정된 자원에서 나오던 레거시 미디어의 권력이 게이트 키핑과 에디팅이다. 이를 통해 언론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엄청난 사건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한정된 지면은 사실(fact)을 진실(truth)로 만들었다. 신문사가 보도한 사실이 허위임을 밝히려면 다시 그 신문 지면을 빌려야만 하는데, 복잡한 법률절차를 밟아야 했다. 레거시 미디어의 권력이 포털로 일부 이전됐지만, 공급자와 수용자가 구분된다는 점은 유지됐다.
하지만 낱개 기사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면서 기존 권력은 스러졌다. 뉴스가치를 판단하는데 공급자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수용자의 참여가 힘을 발휘했다. 공급자와 수용자를 구분하던 물적 토대가 사라졌다. 콘텐츠 생산에 수용자와 공급자 구분이 없어지고, 기사 공유라는 수용자의 콘텐츠 소비 자체가 유통과정이 됐다. 수용자는 여러 팩트를 모아 사실을 구성했고, 여러 의견을 모아 자신만의 견해를 만들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에디터의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수용자 자신의 기준으로 팩트와 의견을 받아들였다.
팩트는 진실도 허위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나 허위(false)가 되는데 결론이 나지 않기도 한다. 별다른 차이가 없는 단편적인 기사들이 유통되면서 수용자가 요구하는 팩트의 수준이 한결 높아졌다.
가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에서 정경심 교수가 자녀의 입시에 쓰려고 표창장을 위조했는지가 문제가 됐다. 하루아침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수용자가 원하는 정보는 '표창장이 위조됐는지'보다 '검찰수사가 과도한지'가 됐다. 법무장관 후보자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하다면, 표창장 위조가 사실이 아니라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다. 반대로 주요 공직자 후보라고 해도 가족의 입시자료까지 수사하는 게 부당하다면, 설령 표창장 위조가 사실이어도 수사는 문제다.
요즘 검찰이 수사하는 범죄로 직권남용이 많다.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2004헌바46)에서 권성 헌법재판관은 소수의견인 위헌의견을 냈다. "정권교체의 경우에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 여전히 낮은 수준에서 의견과 팩트를 구분하고, 팩트 보도에는 윤리가 개입되지 않는다고 믿으면, 이런 수사 중계를 기자 본연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미디어 수용자들은 더는 제목뿐인 기사, 깊이 없는 기사에 돈과 시간을 쓰지 않는다. 공급자와 수용자가 구분되지 않는 단편적인 기사로는 저널리즘 역할을 하기 어렵다. 수용자가 비용을 치르고 응원하는 고품질 저널리즘이나 탐사보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미디어는 이대로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선언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도 대한민국헌법 제21조도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