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단죄 혹은 보복
[로드무비] 단죄 혹은 보복
[law de movie]
그때 그 사람들 2005, 임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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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백윤식 연기)이 쏜 총탄에 박정희 대통령(송재호 연기)이 숨을 거뒀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해 직권남용으로 국민을 억압하던 18년 독재가 그렇게 끝이 났다. / MK Pictures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조항은 1970년대 유신헌법에도 있었다. 이 조항을 풀어 말하면,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빼고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뜻인지 1995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기소할 수 없기에 공소시효도 정지된다고 헌법재판소는 설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5‧18, 12‧12 범죄를 불기소한 검찰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면서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기소가 가능한 내란죄는 시효가 완성됐지만, 재임 중에 기소하지 못하는 반란죄는 시효가 정지돼 남아있다고 헌법재판소가 밝혔다.
혹시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서 퇴임했다면, 후임으로 신군부가 아닌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다면, 그의 여러 범죄를 기소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의 혐의로는 5‧16 반란을 시작으로 무엇보다 직권남용을 꼽을 수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은 직권남용으로 만들어진 체제이다. 박정희 후임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있던 직권남용이지만, 사실상 첫 판례는 6월항쟁과 관련한 사건에서야 나왔다. 1987년 서울대 학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황적준 부검의에게 기자회견용 가짜 메모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강민창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는데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메모작성 지시가 치안본부장의 직권에 속하지 않고, 메모작성이 국과수의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다. 1991년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의 직권남용이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이고), 의무란 법률상 의무를 가리키고, 단순한 심리적 의무감 또는 도덕적 의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직권남용죄가 규정된 형법 123조를 보면 이렇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러한 직권남용을 쉽게 알려주는 판결이 있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 재건지원단 본부 지원과장은 부하인 인사장교와 군수장교에게 점심도시락을 심부름시켰다. 국방부 검찰단은 직권남용을 인정했다. 지원과장은 직권을 남용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검찰단이 혐의가 있지만 기소유예한다고 결정하자, 지원단장은 사건을 헌재로 가져갔다. 헌법재판소는 직권남용 혐의가 없다고 했다. "청구인은 지원과장이고 상대는 (업무가 다른) 인사장교와 군수장교다. 청구인이 인사장교와 군수장교에게 자신의 점심도시락을 가져오도록 지시할 일반적인 직무권한(직권)이 없다. 따라서 형법 123조에서 정한 '직권의 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리하면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지시할 직권이 있고, 그걸 남용해야 하는데, 애초 그런 직권이 없던 것이다.
직권남용으로 처벌되지 않는 유형이 하나 더 있다. 이른바 사실행위는 시켜도 직권남용이 아니다. 사실행위란 간단히 말해 법률행위가 아니란 것이다. 2011년 대법원은 소부(小部) 판결에서 이런 내용을 선언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실무 담당자에게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다. 따라서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도 그래서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다스(DAS) 문제로 분쟁 중이던 김경준에 대한 범죄인인도청구 검토를 지시한 부분이다. "자신을 보좌하는 대통령실 공무원에게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게 한 것에 불과하다"라며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행위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2011년 대법원 사건 주심은 대검찰청 중수부장 출신 안대희 대법관이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사실행위는 직권남용이 아니다"라고 선언만 하고, 이 사건 피고인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로 확정했다. 내용은 이렇다. 2006년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이 승진후보 순위 41위인 장학사를 장학관에 승진시켰다. 당시 인사담당 장학관은 41위 장학사를 승진후보자 8명에 넣어 최종 4명에 뽑히게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공정택 교육감이 인사담당 장학관에게 직권을 남용했다고 했다.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무 담당자에게도 직무집행의 기준을 적용하고 절차에 관여할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면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러한 기준과 절차에 위반하여 직무집행을 보조하게 한 경우에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 이 사례는 사실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택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직권남용의 구성요건을 '가해자 공무원, 피해자 민간인'에 더해 '가해자 공무원, 피해자 공무원'까지 확대했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직권남용은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누구를 처벌하는 조항이냐는 논란이 생겼다. 우리나라 직권남용죄는 일본에서 따왔는데 일본에서도 설명이 갈린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설명, 이와 달리 공무의 적정(適正)을 위한 것이란 주장이 각각 있다. 1882년 시행된 일본의 옛 형법에는 권리방해죄가 있는데 개인(국민)의 권리·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1907년 새 형법에서 권리남용죄로 이어지면서 공무의 적정성을 보호하는 조항이 됐다. 그러다 전쟁을 거치면서 주요하게 개인의 권리·자유를 보호하고 부차로 공무의 적정성을 보호하는 성격을 갖게 됐다고 와세다대 마쓰바라 요시히로 교수는 설명한다.
이 무렵만 해도 직권남용 기소는 드물었다. 기소 된다고 해도 무죄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는 판례만 있지, 무엇이 직권남용이라는 판례는 드물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의 직권남용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 때다. 당시 정권은 문재인 정부이고 수사 주역은 다음 대통령이 되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직권남용죄가 정치보복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들은 2006년 헌법재판소가 직권남용죄를 합헌으로 결정할 당시 권성 재판관의 반대의견을 꺼냈다. "'직권남용'과 '의무'는 그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다.⋯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어내거나 정치보복을 위하여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고 때로는 악화하는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도 매우 크다."
보복수사 논쟁이 한창이던 2020년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앞서 2018년 서지현 검사는 2010년 자신이 안태근 검사에게 성추행당했으며 이를 문제 삼자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글을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성추행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되지 못했고, 인사 불이익만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다. 안태근 검찰국장이 검찰국 검사인사 담당 검사에게 서지현 검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사안을 작성토록 했고, 이에 따라 서지현 검사는 차장검사 없이 부장검사만 있어 상대적으로 작은 부치지청(部治支廳) 근무를 연달아 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 모두 징역 2년 유죄를 선고했다. 이 인사안이 검사인사 원칙과 기준을 어긴 것이고, 검사인사 담당 검사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두 재판부는 봤다.
하지만 대법원이 무죄로 뒤집었다. 누군가를 부치치청에 잇따라 근무시키는 것이 위법하지도 않고, 인사담당 검사가 이러한 인사안을 작성하는 것도 단순 작업에 불과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사실행위 지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실무 담당자로 하여금 그 직무집행을 보조하는 사실행위를 하도록 하더라도 이는 공무원 자신의 직무집행으로 귀결될 뿐이므로 원칙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이어 잇따른 부치지청 전보가 위법도 아니라고 했다.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는 부치지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강도로 근무한 것을 고려하여 차기 전보인사에서 해당 경력검사의 인사 희망을 배려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 사건 인사안 작성 당시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가 인사기준 내지 고려사항의 하나로 유지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부치지청에서 근무한 경력검사를 차기 전보인사에서 배려한다는 내용에 불과하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10‧26으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전두환 신군부가 12‧12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하자 검찰이 전두환을 내란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서울지방법원은 전두환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2심 서울고등법원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전두환을 살려준 사람이 권성 부장판사이고 이후 헌법재판관이 되어 직권남용이 위헌이라고 했다. 2022년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자 검찰이 문재인 대통령 시절 정책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한창이던 무렵 권성 전 재판관이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직권남용죄가 남용될 위험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정권이 바뀔 때는 틀림없이 남용되리라 봤어요. 불행하게도 우려했던 현상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봤습니다. 당시 의견을 발표했을 때만이라도 개정 작업을 서둘러 했다면 그런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총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정권도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로 선출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직권남용으로 수사받았고 받고 있다. 계속해서 앞선 정부의 정책 이행이 다음 정부에서 처벌 대상이 된다면, 선거 위에 수사가 있고, 국민 위에 검찰이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때 그 사람들>을 보고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