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폄훼·안기부 미화 논란' JTBC 드라마 설강화는 문제없이 방송될 수 있을까
'민주화운동 폄훼·안기부 미화 논란' JTBC 드라마 설강화는 문제없이 방송될 수 있을까
'조선구마사' 폐지 후⋯실존 인물·민주화 운동 다룬 드라마 '설강화'도 역사왜곡 논란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해 재판부는 '블랙코미디·허구성' 인정해줬다

'조선구마사'가 지핀 역사왜곡 논란이 JTBC에서 오는 6월 방영 예정인 '설강화'(가제)로 옮겨붙은 가운데 만약 방영 문제가 법정에 가게 되면 이 사건은 어떻게 판단될지 영화 그때 그사람들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봤다. /네이버 영화·왓챠피디아
'조선구마사'가 지핀 역사왜곡 논란이 JTBC에서 오는 6월 방영 예정인 '설강화'(가제)로 옮겨붙었다.
배우 정해인, 지수 주연의 드라마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는 어느 날 갑자기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임수호(정해인)와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은영초(지수)의 사랑 이야기를 담는다.
드라마 '설강화'는 줄거리(시놉시스)가 공개됐을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무장간첩인 남자 주인공을 운동권 인사로 여자 주인공이 오해를 한다는 점 △남녀 주인공 모두 실존 인물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이름, 행동)이 있다는 점 △안기부 인사를 미화한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군사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 민주화 인사들을 '간첩'으로 몰고 갔었다"며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왜곡을 사실인 양 방송으로 내보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지난 26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JTBC의 드라마 설강화의 촬영을 중지시켜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30일 오전 기준 13만명 동의)이 올라왔다. 그와 함께 가처분 신청을 걸어 법정에서 "방영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 법정에 가게 되면 이 사건은 어떻게 판단될지 로톡뉴스가 살펴봤다.
실화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특정인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재판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때 명예훼손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극에 등장하는 사람을 실존 인물로 특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지난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실존 인물의 재현을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과 10·26을 다룬 이 작품은 실존 인물을 묘사하며 당시 호칭과 직책을 그대로 사용했다. 당시 '실존 인물의 특정성'과 '실제 사건을 주제로 한 표현의 자유' 등에 여러 논쟁을 촉발했다.
이 작품은 긴 송사를 거쳤다. 개봉을 한 달 앞둔 지난 2005년 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영화 '그때 그사람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때부터 시작된 다툼은 가처분 이의신청과,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까지 거쳐 꼬박 3년 동안 진행됐다.
①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 "일부 인정⋯ 다큐멘터리 부분 삭제하라"
이 영화와 관련해 법적으로 처음 결론이 내려진 것은 지난 2005년 1월 31일의 일이다. 당시 재판부는 영화의 인격권 침해를 일부 인정했다. '영화에 삽입한 다큐멘터리 장면 때문에 영화가 허구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재판장 이태운 부장판사)는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삽입된 3곳의 다큐멘터리 장면(부마사태 시위 장면, 박 전 대통령 장례식 장면, 김수환 추기경이 추모하는 장면)을 삭제한 뒤 상영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화가 가진 '풍자적 가치'는 인정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이 영화는 허구에 기초한 블랙코미디로 풍자가 본질적이며, 몇몇 패러디 장면은 관객들이 실제와 같다고 인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이 영화로 인해 고인에 대한 평가가 크게 바뀌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영화 자체의 상영금지는 지나치다"고 밝혔다.
당시 영화계는 이 같은 재판부의 결정에 "사전 검열"이라고 반발했다. 영화제작사 ㈜엠케이버팔로와 ㈜명필름은 2월 3일 개봉을 결정했기에 법원의 명령대로 3분 50초를 자르고 상영했다.
②본안소송 1심 : "손해배상 1억원, 상영금지는 기각⋯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실제 사건과 매우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관객의 입장에서 극 중 '각하'가 곧 고인(박정희 전 대통령)을 특정한 것임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2005년 11월 본안소송으로 옮겨간 후에도 실존했던 인물을 특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다퉜다. 영화 상영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을 맡은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조경란 부장판사)가 판결문에서 위와 같이 지적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본안소송 1심 재판부는 박지만 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만 판결했을 뿐 상영금지나 내용 삭제 요구는 기각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문적, 예술적 탐구와 표현은 역사적 인물의 인격적 법익을 보호함으로써 달성되는 가치보다 소중한 것으로 배려돼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 인물에 대한 탐구와 평가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봤다.
고인(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을 침해했다는 점을 금전으로 배상하고, 영화 상영을 금지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의 이때 결정은 실존했던 인물을 특정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에 '표현의 자유'를 우선했다.
③본안소송 2심 : "영화 속 자막으로 허구성 알려라"
▲원래 자막 "이 영화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
▲조정 후 자막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모두 픽션입니다"
항소심 재판부 서울고등법원 제14민사부(재판장 이광범 부장판사)는 양측의 조정을 끌어내며 지난 2008년 2월에 종결했다. 제작사 측은 영화 속 문구를 박지만 씨 측이 제시한 대로 바꾸고, 영화 속 등장인물과 관련된 분들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할 것을 받아들였다. 박지만 씨에게는 1심 판결로 받은 가지급금 1억 원을 제작사 측에 돌려주도록 했다.
드라마 '설강화' 또한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사건과 묘사가 등장한다면,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보여줬듯, 드라마에 방영등금지가처분 신청 소송을 낸다 해도 표현의 자유와 작품의 허구성 등을 이유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6일 JTBC는 드라마와 관련한 논란에 공식 입장을 냈다. 누리꾼들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며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완성 시놉시스의 일부가 온라인에 유출되면서 앞뒤 맥락 없는 특정 문장을 토대로 각종 비난이 이어졌지만 이는 억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공식 입장은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있다.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를 주장했다는 점에서다. JTBC 측이 실존 인물을 모티프로 하면서 이 같은 설명을 내놓은 것은 영화 '그때 그사람들' 판결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로톡뉴스=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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