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국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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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국민은

2022. 03. 18 15:04 작성2022. 04. 08 10: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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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행복한 사전 (舟を編む), 2013 이시이 유야 감독

영화 <행복한 사전>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주인공들은 표제어 24만개 중형 사전을 만들기 위해, 100만 개 넘는 단어를 모으고 뜻을 풀이해 카드마다 담아두었다. / Shochiku

영화 <행복한 사전>은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다. 유명한 사전이 많은 일본에서 또 다른 사전 만들기에 도전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전'을 편집 방향으로 잡아 단어를 그러모으고 설명한다. 부원을 찾는 사전편집부 사람들은 사내에서 후보를 물색해 불쑥 '오른쪽'을 설명해보라고 한다. "서쪽을 향했을 때 북쪽⋯, 보수적인 사상⋯." 어수룩하게 답하던 청년은 결국 사전을 찾아본다. 그래서 뽑힌다.


오른쪽을 어떻게 설명할지 토론하는 모습은 사전 발간을 앞둔 후반 장면에 다시 나온다. '아날로그 시계의 문자판을 바라보고 섰을 때 1시에서 5시까지 있는 쪽'이라는 신메이카이 사전, '이 사전을 펼쳐서 읽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이라는 이와나미 사전의 설명이 소개된다. 영화 초반에 서쪽과 북쪽을 이용한 설명은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잘못된 설명이라고 한다. 주인공들의 정의는 '숫자 10을 썼을 때 0이 있는 쪽'이다. 명색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나에게 오른쪽은 '심장이 뛰지 않는 가슴 쪽'이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의 개념을 번역하면서 시작됐다. 가령 '사회'는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 후쿠자와 유키치가 발명한 단어다. 조금 자세히 말하면 소사이어티(society) 단어를 두고 후쿠자와를 비롯한 일본 학계와 사회가 80년 넘게 논쟁을 벌여 1875년 후쿠자와의 책 『학문의 권장』에서 사회(社會)를 정착시켰다. 소사이어티가 사회가 되기까지 여반(侶伴), 상반(相伴), 인간교제, 정부(政府), 회사(會社) 등을 거쳤고 서구와 일본의 현실에 관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토론이 있었다. 이 '사회'가 1000년 이상 써온 '세상'과는 어떻게 다른지 논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단어들이 개인(個人), 근대(近代), 연애(戀愛), 존재(存在), 자연(自然), 권리(權利), 자유(自由) 등이다. 일본은 개념과 사상뿐 아니라 조직과 물건도 번역했다. 폴리스(police)를 경계하고 살핀다는 경찰(警察)로 번역한 것도 그 예다. 서구의 폴리스와 일본의 경찰은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 우리는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본의 단어와 제도를 수입했고, 제도도 이식했다. 그래서 한국의 경찰은 서구의 폴리스가 아니라 일본의 경찰과 같다.


오른쪽의 정의를 답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던 마지메 미쓰야(마쓰다 류헤이 연기)는 하숙집 손녀(미야자키 아오이 연기)를 짝사랑한다. 한자를 정성껏 담은 러브레터를 손녀에게 건넨다. 하지만 다음 날 손녀는 마지메에게 퍼붓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내가 그걸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분명 잘 썼겠지. 무식해서 못 읽는 내가 문제겠지. 편지 말고 말로, 목소리로 듣고 싶어. 말해줘."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한다.


주인공 마지메는 한자를 정성껏 담아 러브레터를 쓴다. 하지만 다음날 가구야는 마지메에게 퍼붓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내가 그걸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이 사건은 언어를 대하는 마지메의 태도를 바꾼다. / Shochiku
주인공 마지메는 한자를 정성껏 담아 러브레터를 쓴다. 하지만 다음날 가구야는 마지메에게 퍼붓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내가 그걸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이 사건은 언어를 대하는 마지메의 태도를 바꾼다. / Shochiku


이 사건은 언어를 대하는 마지메의 태도를 바꾼다. 살아 있는 사전은 머리만 가지고는 만들 수 없다고. 이는 사전편집부 원로 감수자의 말이다. "단어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각이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단어의 바다는 끝이 없이 넓지요.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줄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을 만듭시다." 그래서 <배를 엮다(舟を編む)>가 이 영화의 일본어 제목이다.


언어로 사회를 건너는 과정을 제도화한 게 재판이다. 사회가 법률을 만들었지만 이에 앞서 언어가 사회를 만들었다. 그래서 재판에서도 국어사전을 쓴다. 얼마 전 대한항공 소액주주 소송에서 '이 절은 이 장 다른 절에 우선하여 적용한다'는 상법 제542조의2 제2항 해석을 두고 판결이 갈렸다. 1심 법원은 "먼저, 어떤 것에 앞서서란 의미의 우선(于先)"으로 봤고, 2심 법원은 "앞서 다루어지거나 특별히 여겨진다는 우선(優先)"으로 해석했다.


이렇게 중요한 국어사전이지만, 좋은 사전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여러모로 아쉽다는 얘기가 더 많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다 보면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설명이 적잖다. 우선 무성의한 경우. '불가능하다=가능하지 아니하다', '관광객=관광하러 다니는 사람' 같은 풀이. 또 일관성이 부족한 경우. 표제어 비(B)를 찾아보면 '종이 규격을 나타내는 단위. B3 B4 B5 따위로 숫자가 올라갈수록 크기가 작은 것을 이른다'는 설명이 있는데, B보다 자주 쓰이는 규격인 에이(A)의 풀이에는 종이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꼽자면 한이 없다. 어법을 무시하는 사전도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분백색=분처럼 하얀 흰색'과 같은 동어반복을 거듭한다. 사전이라 부르기가 어렵다.


국어사전이 이 정도이니 법언어(法言語)는 더욱 모호해진다. 헌법부터 애매하다. 제32조 제6항은 "⋯근로의 기회를 부여받는다"고 돼 있다. 하지만 '부여(附與)를 받는다'는 표현은 있을 수 없다. 헌법에 정해진 자문회의들도 문제다. 자문(諮問)은 묻는다는 뜻으로 질문(質問)과 같다. 자문에 응하는 기구를 자문회의로 부를 수는 없다. 이들 기구의 본질이 조언이라는 점을 드러내지 못하고 심지어 뒤집는다. 제27조 제2항은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이다. 주어가 1. 군인 2. 군무원이 아닌 국민으로도 읽힌다. 자연스럽게 "군인도 군무원도 아닌 국민은"이라고 했으면 될 일이다. 그렇지 못해 "군인과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으로 오해된다. 일본어 법문장에 나오는 '마타(又)'를 그대로 옮긴 '또는'이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법학 교과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형법 교과서 처음에 나오는 자유형, 재산형, 생명형부터 제대로 된 말이 아니다. 형 앞에 자유, 재산, 생명을 붙여 이를 빼앗는다는 뜻을 만들지 못한다. 자유형이 자유를 빼앗고 재산형이 재산을 빼앗는다면, 징역형과 벌금형은 징역과 벌금을 빼앗아야 한다.


일본 최대 출판사인 도쿄의 고단샤 사옥에 이 회사가 만든 책들이 전시돼 있다. 출판 대국이라는 일본 여러 출판사의 책들로 일본어가 풍부하게 만들어지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 2020년 8월 3일 이범준


사법 작용을 알리는 언론은 불명확한 현실을 더욱 악화시킨다. 대표적으로 '검찰 소환'이 있다. 형사소송법에 검사가 피의자를 소환할 권한이 없다. 법원이 피고인을 소환할 수 있다. 형소법 제68조(소환)에서 '법원은 피고인을 소환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검찰은 출석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왜곡의 연원을 찾아보면 식민지 시절 검찰이 조선형사령에도 없는 피의자 소환권을 스스로 만들어낸 데 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 본토의 다이쇼 형사소송법에서 소환은 출석 의무를 발생시키고 불응하면 강제 구인이 가능했다. 따라서 판사 영장으로 가능한 강제처분이었다. 이렇듯 본토 검사들은 출석 요구만 가능했다. 하지만 조선 식민지 검사들은 소환권이 조선형사령에서 유추된다고 주장하고, 일제강점기 내내 소환권을 행사했다. 여기에 더해 요즘 언론은 '소환 통보' 같은 어법에도 안 맞는 표현을 쓰고 있다. 소환은 사전적으로 '부른다'는 뜻뿐인데 여기에 통보를 붙여서, 소환을 출석이란 뜻으로 왜곡한다. 검사가 부르면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식민지 시절 몸에 밴 의식을 해방 이후 없애기는커녕 '소환=출석'으로 강화한 것이다.


어법을 무시한 잘못된 표현은 인권보호라는 법의 이념을 흔든다. 학문‧예술‧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세계 모든 헌법 조항에 주어가 없거나, 있어도 모든 사람이다. 예를 들어 독일기본법 제5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Jeder hat das Recht, seine Meinung⋯frei zu äußern)로 시작한다. 대한민국헌법 제22조 제1항만 주어를 국민으로 제한해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이다. 한국에서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국민이어야 한다. 실제로 국적 보유자로 기본권 주체가 제한된다는 의견을 임기 내내 밝힌 헌법재판관도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이 이중으로 복잡하게 영향을 준 탓이다. 1947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그대로인 일본국헌법 제23조는 '학문의 자유는, 이를 보장한다(学問の自由は、これを保障する)'이다. 연합군최고사령부(GHQ)가 만든 새 헌법의 영문 초안은 '학문의 자유는 보장된다(academic freedom is guaranteed)'였다. 처음에 일본 정부는 국민을 넣어 번역했다. 천황이 신민에게 내린 1890년 대일본제국헌법 형식을 유지한 것이다. 연합군은 국민을 빼라고 했다. 그러자 일본에서 '학문의 자유는 보장된다(学問の自由は保障される)'고만 하면 '문제가 생긴 경우 보장된다'고 오해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는, 이를 보장한다'는 어색한 문장이 됐다. 대신 우리가 신민을 국민으로 바꾸어 대일본제국헌법 형태를 유지했다.


Q. 아양, 아첨, 아부의 차이는?

A. 아양은 법률상 모욕의 반대, 아첨은 진실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반대, 아부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반대 개념이다.


다시 말해, 아양은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무작정 귀여움을 떠는 것이고, 아첨은 실제 있는 내용으로 상대방을 띄우는 것, 아부는 있지도 않은 얘기로 상대방의 기분을 들썩이는 것이다. 십수 년 전 법조기자를 시작한 무렵 전주혜 서울고법 판사에게 들었다. 전 판사는 형법 조항을 설명하지 않고 아양, 아첨, 아부 얘기를 해줬는데, 나는 다행히 명예훼손과 모욕의 구성요건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개념은 세계를 구성한다. 일본에서 소사이어티를 번역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당시 일본에 서구의 소사이어티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현실에 살아 있는 일본어를 연구해 새롭고 이질적인 서구의 사상을 얘기하려 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인의 일상에 살아 있는 단어의 의미를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현실 자체를 바꾸려 한 것이다(야나부 아키라 『번역어의 성립』). 지금 우리나라 법언어는 오히려 일상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법의 지배를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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