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늦었으면 내가 5번째 사망자”…다리 잃은 노동자의 절규,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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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늦었으면 내가 5번째 사망자”…다리 잃은 노동자의 절규,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

2025. 08. 21 16:19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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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이앤씨 현장, 한 달 전 유사 사고 묵살 의혹

'속도전'이 부른 예고된 인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발이 축 처져 밑으로 떨어진 걸 보고 끝났구나, 인생이 끝났구나 싶었다.”


28년간 건설 현장을 누빈 베테랑 노동자 이모씨(53)는 지난 7월, 한순간에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가 일을 배우던 레미콘 트럭이 경사로에서 뒤로 밀리며 콘크리트 펌프카와의 사이에 그를 덮친 것이다. 이씨는 “3초만 늦었어도 내가 (올해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숨진) 5번째 사망자가 됐을 것”이라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끔찍한 사고는 그러나 막을 수 있었다.


경사로에 놓인 반쪽짜리 멈춤턱, 예고된 사고

사고 현장은 명백히 위험했다.


레미콘 트럭이 정차한 곳은 평지가 아닌, 아래로 기울어진 경사로였다. 하지만 차량이 밀리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인 멈춤턱(스토퍼)은 바퀴 한쪽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6년차 레미콘 기사 A씨는 “애초에 이렇게 기울어진 데는 거의 없다”며 “경사로라면 양쪽 타이어에 다 걸리게끔 기다란 멈춤턱을 설치해야 하는데, 평지처럼 하나만 뒀다”고 증언했다.


한 달 반 전에도 똑같은 사고…개선 없이 ‘개인 과실’ 처리

더욱 충격적인 것은 A씨의 다음 증언이다. 그는 “사고 나기 한 달 반 전쯤, 다른 레미콘 트럭이 뒤로 밀려 펌프카와 충돌하는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명피해가 없자,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대신 운전자 개인 과실로 처리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때 바로잡고 멈춤턱을 양쪽에 설치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포스코이앤씨, “유사 사고 없었다”…노동자 증언과 엇갈린 해명

이에 대해 포스코이앤씨 측은 “유사 사고는 없었고, 운전자 미숙으로 인한 단순 접촉사고였다”고 반박하며 경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명 목숨 앗아간 올해 사고들, 공통점은 ‘빨리빨리’ 현장


이씨의 사고는 단순한 부주의나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설 현장에 만연한 ‘속도전’ 문화와 구조적 문제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올해에만 벌써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터널 붕괴 징후를 무시하고 작업을 강행하다 노동자가 숨졌고, 추락 방지 안전고리 없이 일하던 노동자들이 17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모든 사고의 배경에는 ‘빨리빨리’를 강요하는 현장이 있었다.


불법 하도급과 속도전, 안전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

이 속도전의 근원에는 ‘물량하도급’이라는 고질적인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정해진 공사량을 특정 금액에 통째로 맡기는 방식으로,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은 인건비를 아끼고 공사 기간을 단축해야만 이익을 남길 수 있다. 안전 절차를 생략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이재명 대통령이 “건설 현장의 만연한 불법 하도급 관행이 사고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한 이유다.


단속만으로는 한계…“일당제 직접고용이 대안”

정부는 불법 하도급 단속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법망을 피하는 교묘한 방식이 일반화돼 적발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건설노조 출신 김태완씨는 “물량도급이 아닌 일당제 직접고용을 하되, 노사가 합의해 적정한 하루 생산량 기준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독일·일본처럼, 노사 자율 안전문화 정착이 해법

결국 해법은 현장에 있다. 법과 제도의 빈틈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메워야 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장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업종별 노사가 자율적으로 안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준수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노동자의 비극으로 드러난 건설 현장의 구조적 모순, 이제는 ‘사즉생의 각오’라는 말뿐인 다짐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시스템 혁신으로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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