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싸워볼래요…성폭행 피해자에게 주는 조언 "내용증명에서 시작하라"
이제라도 싸워볼래요…성폭행 피해자에게 주는 조언 "내용증명에서 시작하라"
"성폭행 가해자에게 내용증명 보내면 수사와 재판에 도움 된다"는 누리꾼의 조언, 사실일까?
성범죄 다수 다룬 변호사들의 팩트체크⋯"답이 오든, 오지 않든 피해자에겐 도움 될 것"

성폭행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렸지만 소용없었다. 이제는 법적 대응에 나서려는 A씨에게 누군가 조언을 했다. "내용증명을 보내라. 수사와 재판에서 모두 효과적일 것이다." 이 조언은 정말 효력이 있는 걸까? /게티이미지·편집=조소혜 디자이너
1년 전 벌어진 성폭행. 피해자 A씨는 이제서야 신고를 마음 먹었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기다렸지만 받지 못해서다. 그간 A씨는 가해자에게 수차례 사과를 요구했지만 무시 당했다. 사과를 하면 형사처벌을 피하게 해주겠다던 A씨의 배려가 부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는 이제라도 어떻게든 대응을 하고 싶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그러자 A씨의 고민에 대해 한 사람이 조언을 했다. "성폭행 가해자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라." 피해 사실과 가해자의 사과 없는 태도를 지적해 내용증명으로 보내면, 차후 수사와 재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간단하면서도 시원한 '사이다' 해법 같았다. 이 조언이 실제 사건에선 얼마나 효과적일지, 성범죄 사건을 많이 다뤄본 변호사들과 팩트체크를 해봤다.
A씨의 사연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누리꾼의 조언이 "대체로 맞는 내용"이라며 "가해자가 A씨의 내용증명에 답변을 하든, 무시하든 피해자에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선, 내용증명은 문자 메시지 등 다른 연락 방법에 비해 효과적이다. 주고받은 기록이 모두 남기 때문에, 가해자가 "그런 내용증명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할 수 없다.
법률자문

법무법인 방향의 이청아 변호사는 "실제 성범죄 재판에 들어가 보면, 문자 메시지 등이 증거로 제출 됐을 때 조작 여부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있다"며 "이에 반해 내용증명은 우체국을 통해 송달 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 불필요한 조작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피해사실 입증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성범죄가 일어난 후 벌써 1년이나 지나버린 상황. A씨가 법적 대응을 마음 먹은 이상 최대 관건은 피해사실을 어떻게 입증하느냐다. 현재로선 가해자로부터 범행 사실을 인정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때 내용증명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법무법인 동광의 민경철 변호사는 "내용증명은 피해자가 범죄 관련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며 "피해를 입증할 증거가 없을 때 가해자의 '잘못했다'는 의사표시는 피해자의 진술을 보강하는 증거가 된다"고 했다.
이청아 변호사는 "내용증명을 받은 가해자가 범죄를 인정하는 취지의 연락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내용증명까지 보냈다는 점에서, 수사기관에 피해자의 진정성을 인지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용증명의 효과는 또 있었다. 실제 재판이 진행된다면, 가해자의 양형에도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청아 변호사는 "가해자가 피해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고도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재판에 활용 가능하다"며 "재판부 역시 가해자가 피해자의 사과 요구에 전혀 답변하지 않고 고통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판결문에 이러한 내용을 명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가해자가 범죄를 인정하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양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다만, 변호사들은 내용증명을 보낼 때 주의할 점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범죄 피해자라도 가해자를 향해 '협박성' 내용을 담으면 형법상 협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해자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범행 사실을 인터넷에 공개 하겠다는 식으로 내용증명을 보낸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변호사들은 말했다.
민경철 변호사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되짚어서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어야 한다"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일관성을 위해 필요한 점"이라고 했다.
이청아 변호사는 "피해 사실을 특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상황 등에 대해 적으면 된다"며 "적절한 사과 조치가 없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수준이 좋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