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땅 57만 평 환수 소송, 왜 '단 1평'만 되찾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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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땅 57만 평 환수 소송, 왜 '단 1평'만 되찾았나

2025. 08. 18 16:20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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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소송 끝에 0.0002% 환수

법 조항의 '빈틈'과 확정판결의 '무게'가 만든 기막힌 결과

기사 본문과 무관한 사진. /셔터스톡

충북 괴산의 한적한 2차선 도로 옆, 잡초만 무성한 자투리땅 한 평(4㎡). 이곳은 대한민국이 대표적인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으로부터 16년간의 법정 다툼 끝에 되찾은 유일한 땅이다.


국가가 환수하려 했던 전체 토지 190만㎡(약 57만 평)의 0.0002%에 불과한,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바로 옆 수백 제곱미터의 땅은 여전히 후손의 소유로 남아있다. 대체 왜 이런 기막힌 결과가 나온 것일까.


그 이유는 법 조항의 허술한 문구 하나와 '한 번 끝난 재판은 뒤집을 수 없다'는 법의 대원칙 때문이었다.


1차 패소: '친일의 대가'라는 여섯 글자의 덫

2007년, 정부는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일제로부터 조선 귀족 작위를 받은 이해승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후손 측이 제기한 1차 소송에서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당시 법 조항은 친일재산을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후손 측은 이 '대가'라는 단어를 파고들었다. "이해승이 작위를 받은 것은 친일 행위 때문이 아니라, 원래 조선의 왕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국가가 '이해승의 작위가 친일 행위의 대가였음'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국가는 환수했던 땅을 모두 돌려줘야 했다.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친일의 대가'라는 희한한 문구를 넣는 바람에" 패소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2차 소송: '확정판결'의 벽에 막히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회는 2011년, '친일의 대가'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단순히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의 재산은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환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국가는 후손을 상대로 2차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큰 벽이 가로막았다. 개정된 법의 부칙 조항이었다. 거기엔 "이 법이 시행되기 전 법원의 확정판결로 결정이 취소된 경우에는 (개정된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이는 '이미 법원에서 끝난 사건은 존중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따른 조항이었다.


결국 이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1차 소송에서 이미 후손의 손을 들어준 땅들은 '확정판결이 난 사안'이 되어버려, 새로 만든 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기막힌 사연의 '1평'…소송 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단 1평은 어떻게 되찾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숨어있다. 국가가 2차 소송을 준비하며 환수 대상 토지 목록을 다시 살피던 중, 1차 소송 당시 목록에서 누락됐던 바로 그 4㎡의 땅을 발견한 것이다.


이 땅은 1차 소송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확정판결'의 효력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국가는 비로소 개정된 법을 이 작은 땅에 적용할 수 있었고, 16년 만에 '승소'라는 이름으로 단 한 평의 땅을 돌려받게 된 것이다.


재판을 지켜본 독립유공자 후손 이석문 씨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방청석에서 판결을 들었죠.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라며 긴 싸움의 허무한 결말에 말을 잇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 사건을 '승소' 사례로 분류했지만, 그 이면에는 법 조항의 빈틈과 절차적 한계로 인해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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