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봉환하자" 아픈 역사 돈벌이로 이용한 사기꾼의 말로
"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봉환하자" 아픈 역사 돈벌이로 이용한 사기꾼의 말로
"유족들에게 돈 많이 받을 수 있다"며 유골 봉환 사업 제안
가짜 서류 등으로 피해자 속여⋯총 5500만원 뜯어내
8년간 사업 진행도, 돈도 돌려주지 않아⋯징역 10개월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돼, 목숨을 잃은 선조들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자며 수천만원을 뜯어낸 사기꾼에게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참고용 이미지./셔터스톡
지난 2010년 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사무실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 이야기가 오갔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돼, 목숨을 잃은 선조들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사업을 구상한 A씨. 사업 설명을 마친 그는 B씨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B씨는 그 자리에서 제안을 수락했다. 이날, 적지 않은 사업 자금도 A씨에게 바로 보냈다. 해당 사업이 실현되면, 국가적으로도 뜻깊은 일이었다.
하지만 둘의 사업은 수년이 지나도록 당시 논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 정치적·역사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게 아니었다.
A씨의 역사적인 사업은 모두 '사기'였다.
지난 2019년, 법정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로 만난 A씨와 B씨. 이들은 맞잡은 두 손을 이미 오래전에 놓아버린 상태였다.
긴 시간 동안 사기를 당한 배경에는 A씨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A씨는 "정치권에 아는 사람이 많이 있다"며 로비를 통해 유골 봉환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A씨는 사업 수익도 크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성공하면, "유가족에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를 모두 신뢰한 B씨는 '한국에서의 유골 관리 사업'을 맡으면서 사업에 동참했다.
이후 A씨는 B씨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일본 출장 비용 1500만원이었다. A씨는 일본에서 유골 봉환 업무를 봐야 한다고 했다. B씨는 선뜻 해당 금액을 A씨에게 보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A씨는 "일본에서 일이 잘됐다"면서 B씨에게 또 '돈'을 요구했다. 한국으로 가져올 유골 100기의 보관함과 그 함을 덮는 태극기 값이었다. 그 비용만 3500만원. 이번에도 B씨는 돈을 보냈다.
B씨는 A씨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A씨는 일본어로 된 '업무제휴협약서' 등 관련 서류를 보여주곤 했었기 때문이다.
A씨는 국세청에 인맥이 있는 것처럼 B씨를 속여 개인적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했다. B씨의 동생이 국세청에서 부과받은 양도소득세로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A씨는 B씨에게 "국세청의 높은 사람에게 부탁해서, B씨의 동생이 양도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B씨에게 청탁 비용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B씨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유골 봉환 사업도 소식이 없었다. 그럼에도 A씨는 피해 금액 55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결국 B씨는 8년을 기다린 끝에 A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 일로 피고인 A씨는 재판정에 섰다. B씨의 돈은 자신의 생활비 등에 모두 사용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피고인이 '유골 국내 봉환' 사업을 할 여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수사 결과 피고인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는 절차를 알지 못했고, 해당 작업을 진행할 의사도 없었다. 일본 강제징용 피해 문제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에서도 A씨의 사업 내용을 알지 못했다.
B씨에게 보여준 일본어로 된 업무협약서는 가짜 서류였고, 국세청 직원은 가상의 인물이었다.
지난해 4월, 재판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3단독의 송유림 판사는 "(피고인은) 피해 금액이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8년 이상이 경과하도록 피해회복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피고인이 B씨에게 받은 돈의 일부를 실제로 유골 국내 봉환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했고, 범행을 인정한 점은 양형에 유리하게 참작됐다.
그 결과, 피고인에게는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피고인이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같은 해 6월 기각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