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 스타트업 멘토가 말하는 AI 만난 법조계..."전관 무너지고 사법 신뢰 높아질 것"
리걸 스타트업 멘토가 말하는 AI 만난 법조계..."전관 무너지고 사법 신뢰 높아질 것"
남편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와 신생 스타트업 멘토 활동
'노스테라스'에서 이전과 다른 삶 연 노소라 변호사
여성 드물던 초임 법관 시절 돌아보며 에피소드 전하기도

노소라 변호사 / 사진 이민정 기자
'스타트업의 친절한 법률 멘토'로 잘 알려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종로구 노스테라스 빌딩을 찾았다. 북쪽으로 낸 5층 테라스에 들어서자 창덕궁이 바로 눈 앞이다.
“북쪽과 남쪽, 두 방향으로 테라스를 만들었지만 창덕궁이 보이는 이 북쪽 테라스가 건물의 상징이라고 생각해서 빌딩 이름을 ‘North Terrace(노스테라스)’라고 지었어요.”
이 빌딩은 노소라 변호사의 남편인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퇴임후를 생각해서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1층과 지하는 북 카페로 운영하고, 2-3층은 독서클럽 트레바리가 임차해 사용한다. 4층이 노 변호사 부부의 사무실이고, 5 층은 주거 공간이다.

(윗줄 왼쪽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북쪽 테라스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 노 변호사 부부가 수집한 고서, 북 카페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노 변호사가 기자에게 구한 말 시대 외국인이 찍은 사진집을 보여주고 있다. / (사진, 편집) 이민정 기자
‘노스테라스’는 중의적으로 “Noh’s terrace”를 나타내기도 한다. 노 변호사의 성(姓)을 이용한 재치 있는 표현이다. 노 변호사는 “老(늙을 로)’s terrace”가 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건물은 중의적인 표현만큼이나 특별한 의미들이 있다. 노 변호사는 판사 출신 법률가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일에 파묻혀 지냈던 한창 때를 접고, 부부가 함께 이전과 다른 새 삶의 지평을 여는 의미에서 이 건물을 마련했다고 한다.
노 변호사 부부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미국 철학자인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 부부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니어링 부부는 “인생의 3분의 1은 생업을 위해, 3분의 1은 커뮤니티를 위해, 3분의 1은 나 자신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일 때문에 숨이 가쁠 정도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커뮤니티를 위해서도 동일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소일거리나 친목 모임 등을 위해 일을 미뤄두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우리 세대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일하지 않는 건 무가치하다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특히 법조인들은 더욱 그랬죠. 하지만 과감히 이전의 가치관을 뒤로 젖혀두고, 3분의 1은 나 자신만을 위해, 3분의 1은 커뮤니티를 위해, 3분의 1만 생업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어요.”
IT와 결합하는 법조 시장,
어떻게 달라질까
노 변호사 부부가 커뮤니티를 위해 하는 활동 중에는 신생 스타트업들을 자문해 주고, 여러 측면에서 이들의 든든한 멘토가 되어주는 역할이 있다.
노 변호사는 “남편이 대표적인 IT 기업인 네이버 대표를 역임한 이력이 있고, 저도 기업 자문을 한 경험이 있는 까닭이라고 생각되는데, 아주 초기 스타트업 기업부터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 기업들까지 다양한 분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부가 이런 분들과 함께 고민하고 도움을 주다 보면 우리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전했다.
이렇게 만난 스타트업기업들 중 스마트스터디, 마이리얼트립, 트레바리 등은 노 변호사가 직접 법률고문역을 맡고 있기도 하다.
노 변호사는 법률서비스와 IT의 결합으로 인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법조시장의 변화를 실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획기적인 변화가 있게 될 거라는 예측도 했다. 이런 변화들은 긍정적이라는 게 노 변호사의 시각이다.
그녀가 기존 법률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은 것은 ‘정보 불균형’이다.
“제가 처음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현재 변호사 숫자는 무척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 불균형 문제로 인해 여전히 일반인 대다수는 변호사를 만나기가 어려워요.”
변호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저처럼 경력이 많은 사람들도 사무실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의뢰인을 만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케팅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법조인들은 자신을 대중에게 알리거나 수임료 등을 투명하게 밝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즉, 법률가 집단이 대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 입장에서는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변호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적 법조 병폐인 전관예우와 브로커 문제 역시, 변호사에 대한 정보가 대중들 입장에선 ‘깜깜이’였기 때문에 빚어진 폐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많은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이 기술적으로 메워가고 있기 때문에 노 변호사는 희망적이라고 했다.
그녀는 “수임료와 경력 등을 대중에게 투명하게 알리는 것에 대한 법조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현재의 변호사시장 상황에 맞지 않은 불필요한 변호사 광고 규제 등에 대해서는 개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향후 판례 등 데이터가 대중에게 더 많이 공개된다면, 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사법절차와 사법판단에 대한 예측 가능성도 일정 범위에서 대중에게 제공할 수 있어, 사법신뢰도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영상, 편집) 이민정 기자
여성 판사가 신기하던 시절에...
노소라 변호사는 1990년 초임 판사로서 부산지방법원에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 부산지방법원에서는 노 변호사가 유일한 여성 판사였다.
상사와 동료가 모두 남성인 직장에 20대 여성 홀로 발을 내딛는 심경이 어땠을까. 그런데 의외로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 혼자 여성이라는 생각보다는 초임 판사라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이 더 컸죠.”
노 변호사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여잔데’라거나 ‘내가 여자라서’라는 식의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 변호사와는 달리, 여성 판사가 드물던 그 시절 노 변호사의 주변인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노 변호사가 ‘여성이기 때문에’ 2차 회식을 면제해 주기도 하고, 형사 사건은 맡기지 않는 등 배려 아닌 배려를 해 줬다는 것.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지금은 영장전담판사가 있지만, 당시에는 당직 판사가 영장도 하고 즉결재판도 했다. 이는 초임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즉결재판에는 보통 그 전날 주취소란을 피워 경범죄처벌법을 위반한 사람들이 유치장에 있다 나와 아침 일찍 즉결재판을 통해 구류나 벌금 등을 선고 받는다. 판사가 재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서면 술 냄새가 확 풍겨오기도 했다고.
노 변호사는 “어느 여성 판사가 즉결 재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섰는데, 술이 덜 깬 주취자가 판사를 보고는 놀라서 “여자다!”라고 소리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여성 법관 비율이 30%를 넘는 지금의 법원을 떠올리면 사뭇 생소한 풍경이다.
한국 법 교육, 미국과 비교할 때 아쉬움 있어
노소라 변호사는 2005년 미국 조지타운 로스쿨에서 수학했다. 노 변호사는 “30년 전 한국 법대생으로서 받았던 수업과 비교하면, 미국 로스쿨 수업은 정말 재밌고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미국 로스쿨과 한국 법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질문’을 꼽았다. 미국에서는 교수도 학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학생의 질문도 상당히 독려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장려하고 수업도 교과서를 읽는 선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점은 노 변호사가 학부생이던 때나 지금 한국의 로스쿨 수업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노 변호사가 말했다. “제가 미국 로스쿨을 다닐 때, 저는 이미 한국에서 법학교육을 받고 실무 경험도 충분히 한 이후였기 때문에 질문 중심의 수업을 소화할 수 있었다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사법연수원이 없어져서 실무 교육까지 담당해야 하는 현재의 한국 로스쿨은 교수법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의 3분의 1은 스타트업 멘토로서 커뮤니티를 위해, 3분의 1은 커피향과 책에 둘러싸여 자신을 위해, 3분의 1은 오랜 시간 전문성을 다져온 변호사로서 생업을 위해 쓰고 있는 노소라 변호사.
그녀의 행복 넘치는 삶이 주변에 많은 영감과 좋은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