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유럽이라는 운명
[로드무비] 유럽이라는 운명
[law de movie]
덩케르크(Dunkirk), 2017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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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권재판소 심판정 모습. 47개의 재판관석과 2개의 사무관계자석이 놓여있다. 심판은 최대 17명이 한다. 자리가 모두 채워지는 경우는 재판소 행사 때 정도이다. /이범준 작가 제공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 접경 도시이다. 독일 켈에서 열차로 11분이면 라인강을 건너 이곳에 닿는다. 상당수 주민이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모두 말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프랑스의 지배를 번갈아 받아왔다. 1681년 루이 14세가 정복하면서 프랑스 땅이 됐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독일이 됐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프랑스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독일이 됐다가, 1944년부터 프랑스 땅이 됐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프랑스이지만 문화적으로 독일이라는 말도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회가 있는 유럽 정치의 중심이자, 유럽인권재판소가 있는 유럽 사법의 중심이다.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는 유럽을 바꾸어왔다. 영국 학교의 체벌 제도는 고문을 금지하는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위반이라고 1978년 유럽인권재판소가 결정해 영국에서 체벌이 사라졌다. 프랑스 병원의 식물인간 상태 환자에게 탄수화물 등 영양분 공급을 중단하라며 존엄사를 인정한 것도 2015년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이다. 유럽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13년 혼외자를 차별하는 민법 조항에 위헌을 선언하면서, 한국 헌법재판소가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면서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을 인용했다.
유럽인권재판소 부소장 앙겔리카 누스베르거(Angelika Nußberger) 재판관을 인터뷰하러 2018년 12월 스트라스부르를 찾았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테러가 일어나 5명이 숨졌다. 프랑스 경찰이 용의자를 이틀 만에 찾아내 총격전 끝에 사살했다. 용의자는 아이에스(IS‧이슬람국가) 소속 조직원이었다. 스트라스부르가 유럽정치의 중심지라는 말을 비극적으로 실감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47개 회원국 출신 재판관 47명으로 구성돼 있다.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회원국이 늘거나 줄면 재판관 수도 함께 변한다. 관할 인구는 8억 200만여 명이다. 재판관은 각 회원국이 추천한 후보를 유럽평의회가 심사해 과반 찬성으로 선출한다. 사건 내용과 성격에 따라 단독 재판관, 3인 재판관 위원회, 7인 재판부, 17인 대재판부에서 처리한다.

1959년 설립된 유럽인권재판소는 1949년 세워진 유럽평의회의 사법기구다. 유럽평의회가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럽은 폐허가 됐습니다. 건물만 무너진 게 아니라 정신도 무너졌습니다. 폐허를 불러온 것은 정치사상과 국가주의(Nationalism)입니다. 완전히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종전 이듬해인 1946년 윈스턴 처칠이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국가주의로는 유럽을 살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유럽평의회입니다. 적국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포함하는 계획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는 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제2차 대전이 없었다면 이런 시도가 없었을 겁니다. 완전히 파괴되고 나서야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온 셈입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1953년 발효한 유럽인권협약에 기반한다. 유럽인권협약 위반에 개인이 제소할 수 있다. 회원국 정부의 처분은 물론 법원 판결도 대상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인권재판소가 회원국 헌법이나 주권 위에 올라서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엔 유럽인권재판소도 지금은 없어진 유럽인권위원회(European Committee of Human Rights)가 제소한 사건이나, 재판소 관할을 인정한 당사국에서 청구한 사건만 처리했습니다. 개인이 직접 유럽인권재판소에 사건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유럽인권위원회에 제소해달라고 신청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국가주권을 중요하게 여기던 시스템입니다. 당시에도 공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국가주권을 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주권포기 문제는 지금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같은 초국적 기구이지만 유엔에는 재판소가 없다. "유엔도 처음에는 사법기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유엔인권위원회 초대 미국 대표) 엘리너 루스벨트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조약을 맺는 데 그쳤고 그나마 구속력 없는 것들입니다. 일종의 선언이죠. 유럽은 실제로 작동할 기구인 유럽평의회를 세우고 유럽인권협약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인권협약과 인권재판소가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메리카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다. 하지만 유럽처럼 현실적인 실행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이름만 남은 곳도 있다.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은 지구 반대편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권위가 있다. 이러한 권위는 실행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회원국이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을 수용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사법제도에 자부심이 큰 독일이나 영국, 정치환경이 다른 러시아 등이 그렇다고 한다. "인권재판소 일은 인권이 무엇인지 정하는 것이어서 갈등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사생활과 가족의 권리가 유럽인권협약 제8조에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무엇인지부터 이해가 다릅니다. 부모와 아이가 있어야 가족인지, 동성애 커플도 가족인지 재판소가 일률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결정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몰도바 지역이던 트란스니스트리아 자치지구를 러시아가 점령한 사건이 있습니다. 이곳 인권 문제에 대한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유럽인권재판소가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결정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주권국가이기도 한 회원국을 강제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했다. "강제력을 동원하지 못하는 것은 사법기구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결정을 거부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결정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회원국 외무장관으로 이뤄진 유럽평의회 각료회의(Committee of Ministers)가 해결할 문제입니다. 각료회의는 유럽인권재판소 결정을 집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최종적인 절차로는 유럽평의회 퇴출 방법도 있습니다. 1000개 결정 가운데 5개가 수용되지 않는 정도는 (재판소 시스템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결정을 거부하면 퇴출을 현실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인 선의도 없이 유럽평의회 회원국일 수는 없습니다."
유럽평의회는 나라마다 분담금이 다르다. 독일처럼 경제력이 앞선 나라들이 유럽평의회는 물론이고 유럽인권재판소에도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는 것은 아닐까. "유럽평의회도 그렇지만 대부분 국제기구가 회원국 인구수와 경제력에 비례해 기여금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다릅니다. 47개 회원국마다 재판관이 1명씩 선출됩니다. 독일 인구는 8200만여 명인데 산마리노 인구는 3만여 명입니다. 이 점에서 모든 나라가 동등합니다. 각국이 파견하는 연구관 숫자는 소송사건 수에 비례합니다. 인구 8200만명인 독일의 사건 수와 400만 명인 크로아티아 사건 수가 비슷합니다. 독일은 사법제도가 괜찮아서 사건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사건이 가장 많은 나라는 러시아이고 그래서 연구관도 가장 많습니다. 회원국의 경제력이 유럽인권재판소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누스베르거 재판관은 1963년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뮌헨대에서 슬라브어와 법학을 전공했다. 과도기 소비에트 헌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제공법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독일 쾰른대에서 동유럽 법을 강의했다. 서유럽 시민이면서 동유럽 법학을 전공한 국제법 교수인 누스베르거 부소장에게 아시아인권재판소의 설립과 성공 가능성을 물었다. 지구 반대편 유럽인권재판소 결정도 수입해서 쓰는 마당에 아시아 현실에 맞춘 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학계에 나왔다. 그는 이 문제에 관한 논의를 여러 번 들어봤다고 했다. 관심도 커 보였다. 그의 스트라스부르 사무실에는 일본 현대화와 중국 서화가 걸려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지 않나요. 인도와 중국만을 떠올려도 아시아에서 단일한 인권보장체제를 구축하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국·일본·중국 등 동북아로 좁혀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북한은 소통 통로 자체가 없죠. 한국과 일본 사이엔 특별한 역사 문제가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도 오랜 기간 싸워왔지만, 상대를 식민지화한 일은 없습니다. 중국은 인권보장을 위한 헌법재판이라는 경험 자체가 없습니다. 초국적 인권재판소를 만들려면 국가주권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당장 유럽인권재판소 같은 기구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속력 있는 재판소 대신 좋은 판결을 공유하면서 지역의 목표를 제시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소재다. 독일은 1939년 폴란드 공격해 전쟁을 시작하고, 이듬해인 1940년 프랑스를 침공한다. 기갑부대를 앞세운 독일군은 연합군 40만 명을 순식간에 프랑스 북동쪽 덩케르트로 몰아넣는다. 이에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몰살 위기이던 연합군을 영국으로 철수시키는 데 성공한다.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가 자연재해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자연재해가 특정한 사람을 골라 공격하거나 하지 않듯이, 영화에서 독일군도 무차별적이고 우연적인 폭력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독일군을 잔인한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폭력 자체로 묘사하고 있다. 유럽의 수많은 전쟁이 비인격적인 재해라면, 그걸 막을 제도는 정치일지 재판일지, 국경을 넘어선 공동체가 가능할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