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장기 이식 거부, 이혼 사유가 될까?
배우자의 장기 이식 거부, 이혼 사유가 될까?
"선단공포증 있다"며 이식 거부한 아내, 알고 보니 거짓말
장기 기증은 고도의 자기결정권
강요하고 폭언한 남편이 유책 배우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당신이 나 죽인 거나 다름없어. 그깟 메스가 무서워서 남편을 죽게 내버려 둬?"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의 절규였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내가 간 이식을 거부하자, 병실은 순식간에 비난과 고성이 오가는 전쟁터로 변했다. 남편은 살고 싶었고, 아내는 무서웠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부부. 남편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부부의 연은 법정에서 끝이 났다. 법원은 간 이식을 거부하고 거짓말까지 한 아내와 이식을 강요하며 폭언한 남편 중 누구 손을 들어줬을까.
"주사 바늘도 무서워"… 아내의 거절과 남편의 배신감
SBS 모닝와이드에 따르면, 평범했던 부부의 일상은 남편이 희귀 간 질환으로 1년 시한부 판정을 받으며 무너졌다. 살길은 오직 간 이식뿐. 불행 중 다행으로 가족 간 적합성 검사에서 아내가 이식 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남편은 희망에 부풀었지만, 아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미안하지만 못 하겠어. 나 '선단공포증'이 있어." 날카로운 물건이 다가오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공포증 때문에 수술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식은 거부했지만, 남편의 병수발은 지극정성으로 도맡았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 이성을 잃은 남편에게 아내의 간호는 위선으로 보일 뿐이었다. "간호 따위 해서 뭐 해?" 남편의 폭언이 이어졌고, 양가 부모님까지 가세해 "며느리가 남편 죽는 꼴을 보려 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거짓말 들통난 아내… "내가 잘못되면 애들은 어떡해"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기적처럼 뇌사자 기증자가 나타났다. 남편은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살아돌아온 남편은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내의 보험 기록 등을 조회해보니 과거에 수술받은 이력이 멀쩡히 존재했다. '선단공포증'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노한 남편이 다그치자 아내는 그제야 진심을 털어놨다. "거짓말 맞아. 그런데 너무 무서웠어. 내가 수술받다 잘못되면 우리 어린 딸들은 어떡해?".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본인의 안위를 위해 거짓말을 해서라도 수술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남편은 "결국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었던 것 아니냐"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배우자의 장기 이식 거부, 이혼 사유 될까
남편은 아내가 장기 이식을 거부한 것이 민법상 '악의적 유기'이자 '부당한 대우'라고 주장했다. 배우자라면 마땅히 남편을 살릴 의무가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1심 법원의 판단은 단호했다. "이혼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남편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장기 기증은 신체에 대한 고도의 자기결정권에 속하는 영역"이라며 "이를 거부했다는 사실만으로 혼인 파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민법상 부부간 부양의무는 서로의 생활을 보장하라는 의미이지, 생명을 걸고 신체를 희생하라는 뜻까지 포함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또한 아내의 거절 사유에 대해서도 "어린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보호자로서, 본인의 건강 악화에 대한 현실적인 불안과 우려가 있었을 것"이라며 타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거짓말한 아내 vs 강요한 남편, 유책 배우자는?
1심 패소 후에도 부부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결국 쌍방이 이혼에 동의하며 2심에서는 누구에게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가를 따지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의 거짓말이 신뢰를 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역시 남편을 '유책 배우자'로 지목했다.
법원은 혼인 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내의 이식 거부나 거짓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폭언과 강요에 있다고 봤다. 아내가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이는 자녀 양육과 본인의 생명권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방어적 행동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내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나를 죽이는 셈"이라며 죄책감을 심어주고 비난했다.
재판부는 "장기 이식을 강요하고, 거부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비난하며 부부간의 신뢰를 훼손한 남편에게 혼인 파탄의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