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추석…"집 비었겠지" 스토커부터 예초기 휘두른 8촌까지
판결문으로 본 추석…"집 비었겠지" 스토커부터 예초기 휘두른 8촌까지
따뜻한 명절 이면에 사기·폭력·살인 얼룩
2025년 판결문 10건 분석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민족 대명절 추석. 온 가족이 모여 풍요와 정을 나누는 시간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문에 등장하는 추석은 우리가 아는 따뜻한 명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는 명절 특수를 노려 사기 행각을 벌였고, 어떤 가족은 오랜 갈등이 폭발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선고된 판결문 중 '추석' 키워드가 들어간 10개 판결문을 분석해, 명절 이면에 숨겨진 모습을 들여다봤다.
"고향 가는 길 막막하시죠?" 명절 대목 노린 사기꾼들
고향으로 향하는 간절함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이들이 있었다. 피고인 A씨는 2024년 8월부터 중고거래 사이트에 '익산역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추석 SRT 기차표 4장을 12만 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A씨는 "대금을 먼저 입금하면 선물하기 기능으로 기차표를 보내주겠다"고 속였다. 그러나 A씨에게는 애초에 판매할 기차표가 없었고, 돈을 생활비 등으로 쓸 생각뿐이었다.
이러한 수법으로 A씨는 카메라 렌즈, 백화점 상품권 등 품목을 바꿔가며 총 54명의 피해자로부터 약 1,700만 원을 뜯어냈다. 재판부는 A씨가 "동종 범죄로 인한 가석방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고 또다시 다수의 피해자들에 대하여 유사한 수법의 사기 범행을 반복하여 저질렀다"며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법원은 A씨의 죄질이 나쁘고 죄책이 무겁다며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2024고단1878 판결).
명절 선물조차 사기 대상이 됐다. B씨는 "지인들에게 추석 선물을 보내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접근해 300만 원에 가까운 굴비 세트 25개를 외상으로 받아 가로챘다. B씨는 이미 식당 운영난으로 5억의 세금이 체납된 상태여서 대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법원은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B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고정2461 판결).
심지어 운행하지도 않은 버스를 운행했다고 속여 국가 보조금을 타낸 버스회사 대표도 있었다. C회사의 대표이사였던 피고인은 추석 당일 승객이 거의 없는 벽지노선을 운행하지 않았음에도 허위로 서류를 꾸며 합천군청으로부터 수년에 걸쳐 총 1,500여만 원의 손실보상금을 부정하게 타냈다. 법원은 그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25고정5 판결).
"명절이라 집 비었겠지" 빈집 덮친 스토커의 그림자
추석 명절, 집을 비운 틈을 노린 범죄도 있었다. 피고인 D씨는 편의점에서 우연히 본 26세 여성에게 흑심을 품고 뒤를 밟아 사는 곳을 확인했다. D씨는 "추석 명절로 피해자가 집을 비웠다고 생각하여" 2024년 9월 17일 새벽 3시경, 여성의 집을 찾아갔다.
인기척이 없자 D씨의 범행은 대담해졌다. 건물 외벽 배관을 타고 발코니로 접근했으나 창문이 잠겨있자, 길가에 있던 깨진 보도블록을 들고 다시 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침입했다. D씨는 집안을 뒤져 피해자의 속옷과 카메라, 모자 등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달아났다.
재판부는 D씨가 주거침입강간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지적하며 "범행의 경위에 비추어 보면,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24고단2472 판결).
"죽여라, 네가 날 못 죽이면 내가 널 죽인다" 명절에 폭발한 가족 갈등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회포를 풀기도 전에 묵은 갈등을 터뜨렸다. 그 끝은 법정이었다.
시누이와 올케의 난투극
2022년 추석, 피고인 E씨의 집에 시누이인 피해자가 찾아왔다. 사소한 시비로 시작된 다툼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피고인 F씨(E의 동생)는 올케인 피해자의 어깨를 밀치고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F씨는 벌금 100만 원을, 피해자는 반대로 시누이들을 폭행하고 상해를 입힌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4노655 판결). 한바탕 소란으로 끝난 명절은 가족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전과기록을 남겼다.

예초기로 친척 공격한 8촌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의 풀을 베는 벌초 작업은 오랜 전통이지만,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8촌 지간인 피고인과 피해자는 함께 벌초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가 약속 시간보다 먼저 작업을 시작하고 잔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한다며 격분했다.
그는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작동 중인 예초기를 그대로 휘둘러 피해자의 무릎과 다리에 6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혔다. 다행히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이 고려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 2024고단382).
"차라리 찔러 죽여 버려라" 비극이 된 형제의 술상
2024년 9월, 추석을 앞둔 어느 새벽. 형제의 집에서 술잔이 오갔다. 대화 주제는 "추석에 부모님 산소에 가는 것"이었다. 사소한 말다툼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격분한 동생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와 형에게 건네며 "차라리 찔러 죽여 버려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형은 정말로 칼을 들어 동생의 복부를 찔렀다.
동생은 폐에 구멍이 뚫리는 등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제대로 막지 않았다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동생이 칼을 건네며 도발한 점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낸 점 등을 고려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2025고단52 판결).
아버지가 아들 살해한 참극
2024년 추석 당일, 79세 아버지는 53세 아들을 허리띠로 목 졸라 살해했다. 아들은 2005년 이혼 후 부모님 댁에 들어와 살면서 상습적인 음주와 가정폭력으로 오랜 기간 가족을 고통에 빠뜨렸다.
사건 당일에도 술에 취한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그래 죽여라, 네가 나 못 죽이면 내가 너 죽인다"는 폭언을 내뱉었다. 아들의 도발에 아버지는 순간 격분해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질렀다.
법원은 이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 깊은 고뇌를 드러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은 그 행위에 상응하는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십 년간 이어진 피해자의 음주 문제와 가정폭력으로 가족 모두가 고통받아 온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다.
피해자의 딸들, 즉 피고인의 손녀들마저 할아버지의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법원은 아버지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서울고등법원 2025노488 판결).
"나 혼자는 안 죽어" 이혼과 음주가 부른 분노
명절 연휴,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거리와 타인을 향해 표출한 사건들도 잇따랐다.
4번의 전과에도 또다시… 명절 음주운전
G씨는 추석 당일 소주 1병을 마신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G씨는 "추석 당일이라 대리운전 기사 호출이 쉽지 않았다"고 변명했지만, 불과 10분간 세 차례 호출을 시도하고는 곧바로 운전을 시작했다.
이미 음주운전으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포함해 네 차례나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음에도 G씨는 또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하여는 실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원심의 징역 1년 형을 그대로 유지했다(광주지방법원 2024노1516 판결).
전 부인 직장에 휘발유 들고 찾아가 "직이 뿔라고 그랬다"
이혼한 전 남편 H씨는 추석 연휴 기간, 전 부인을 살해할 끔찍한 계획을 세웠다. H씨는 휘발유와 시너를 페트병에 나눠 담고 식칼, 망치까지 챙겨 전 부인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H씨는 다짜고짜 피해자에게 시너를 붓고, 사무실 바닥에 휘발유를 뿌리며 난동을 부렸다. 범행 전 H씨는 딸에게 "너 먼저 죽이주까", 직장 동료에게 "나 혼자는 안 죽어요"라는 섬뜩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체포 직후 H씨는 경찰에게 범행 동기를 묻자 "직이 뿔라고 그랬다(죽여버리려고 그랬다)"고 태연하게 답했다. 법원은 H씨가 스토킹 범죄로 처벌받고도 더 큰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자와 가족들이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울산지방법원 2024고합43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