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실 문 열었더니 웬 남자가? 쉴 곳 없어 화장실·통로 서성이는 KTX 승무원들
수유실 문 열었더니 웬 남자가? 쉴 곳 없어 화장실·통로 서성이는 KTX 승무원들
공간 하나를 수유실·기저귀 교환대·승무원실로 '돌려막기'
역사 내 휴게실도 원청 전용
노동법상 '휴게시설 설치 의무 위반' 소지 다분해

수유실 겸용하는 승무원실 모습. /연합뉴스
고객용 수유실에서 몰래 쉬는 KTX 하청 승무원들의 열악한 휴게권 차별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승객도 승무원도 민망한 '수유실 돌려막기'
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고속열차 내 같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촌극을 소개했다.
열차 내 수유실 문을 열었다가 안에 앉아있는 남성 승무원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승객들의 사연이다.
코레일 하청 소속인 유미정 승무원은 방송을 통해 "오히려 아기를 안고 오신 고객 분들이 미안해하신다"며 "웬만하면 문을 열고 사용하다가 고객이 오면 바로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간의 '다용도 돌려막기' 때문이다. 유 작가는 "공간은 하나인데 수유실, 기저귀 교환대, 그리고 승무원실 등 용도가 3개"라고 지적했다.
엔진 굉음 울리는 기관실 앞, 뾰족한 철제 의자… 1분도 편히 쉴 곳 없는 현실
핵심은 원청과 하청 간의 노골적인 휴게 공간 차별에 있다. 통상 고속열차에는 코레일 소속 열차 팀장 1명과 자회사(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 1~2명이 탑승한다.
원청인 코레일 소속 팀장에게는 별도의 '열차 팀장실'이 보장되지만, 하청 소속 승무원들에게는 전용 공간이 없어 수유실을 겸용하도록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내가 수유를 하러 갔는데 왜 남자가 저기 들어 있느냐"는 악성 민원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임시 쉼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효성은 '제로'에 가깝다. 기관실 앞 동력실은 엔진 굉음과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고, 물품 보관실 내 공간은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에도 비좁다.
코레일 승무원 A씨는 "너무 임시적으로 만들어 놓은지라 들어가 앉다가 뾰족한 부분에 바지나 옷이 찢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증언했다.
열차 밖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역내에 마련된 휴게 공간조차 원청 전용이라, 하청 승무원들은 "내어줄 공간이 없으니 고객용 대합실을 이용하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명백한 '휴게권 차별'
단순한 감정적 차별을 넘어, 이는 명백한 법적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법(산업안전보건법 제128조의2)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나아가 하청 근로자 보호를 위해 원청 사업주 역시 휴게시설 설치에 필요한 장소 제공 등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소음이 심한 동력실이나 비좁은 물품 보관실, 용도가 혼재돼 고객과 마찰을 빚는 수유실은 법이 규정한 적법한 휴게시설로 인정받기 어렵다.
근무 환경은 그대로인데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 KTX와 SRT의 통합 및 노선 변경으로 평일 운행은 23회, 주말은 26회나 늘어났지만 승무원들은 여전히 열차 통로 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코레일 측은 "현재까지는 이용객이 없는 상황에 한해 수유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서도 "이용객들의 불편 사항에 대해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겸용 해제 및 승무원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