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 주겠다"해서 골수 빼놓고 기다렸더니 막판에 변심⋯일방적 취소엔 어떤 책임 있을까
"골수 주겠다"해서 골수 빼놓고 기다렸더니 막판에 변심⋯일방적 취소엔 어떤 책임 있을까
장기 기증 기다리던 5살 아이⋯이식 준비 중, 기증자가 거부 의사 밝혀 사망
환자 입장에서는 목숨이 달린 일인데⋯기증 의사 번복하면 법적 책임져야 하나
변호사들 "장기기증하지 않겠다고 해서 처벌받지 않아"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기증자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데 기증을 약속하고 "기증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기증자에게 법적 책임이 있을까. /게티이미지⋅편집 및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백혈병에 걸린 5살 꼬마의 유일한 희망은 '골수 기증'이었다.
기증자 A씨가 나타났을 때, 꼬마의 가족은 하늘에 감사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이식 날짜가 다가오자 의료진은 꼬마의 골수 이식을 위한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고용량 항암제를 투약해 문제가 있는 꼬마의 골수를 제거해놨다. 새 골수가 들어올 준비를 해둔 셈이었다.
하지만 이식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A씨가 "기증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돌린 것. 꼬마의 골수는 이미 제거돼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골수를 이식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이를 보는 부모 마음은 미칠 지경이었지만, 기증자의 일방적인 결정에 부모가 취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꼬마는 결국 사망했다.
이는 책 '대한민국 병원 사용 설명서'에 소개된 사례다. 이 사연이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사람들의 분노를 다시 한 번 자아냈다. "A씨는 사실상 살인자"라는 댓글이 보여주듯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비난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안타깝게도 A씨가 법적으로 책임질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민⋅형사상 책임으로 나눠 알아봤다.
먼저 형사적 책임을 알아보기 위해 장기기증과 관련된 법률을 살펴봤다.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행위에 대해선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 제22조 제4항에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에서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기증에 동의한 사람은 "장기 등을 적출하기 위한 수술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동의의 표시를 철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기증자가 기증을 위한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는 기증 의사를 번복하는 게 가능하다.
법무법인 유준의 박지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장기 적출을 위한 수술 시작 전에는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며 "철회했다고 하여 형사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5살 꼬마에게 기증을 약속한 A씨도 법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법무법인 다움의 이성준 변호사도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은 어디까지나 기증자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장기기증 철회자를 법으로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지우의 이준석 변호사는 "(법률로 기증 철회를 처벌하면) 기증자의 대가 없는 자발적인 장기기증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나아가 현행법에서 금지하는 장기매매를 조장할 위험성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의 반대 등 피치 못한 사정으로 기증을 철회하는 상황이 있다. 이런 경우를 법으로 제한하면 장기기증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최악의 경우 이식을 위해 장기매매까지 이뤄지는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성준 변호사도 "장기적으로 기증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더욱 곤란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은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환자 측이 기증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려면 불법행위가 존재해야 하는데,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환자와 장기기증자를 각각 채권자(장기를 받기로 한 자)와 채무자(주기로 약속한 자)로 엮인 계약관계라고 본다면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박지혜 변호사는 "장기기증자가 호의에 의해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기증자와 환자 사이에 별도로 채권·채무가 존재하는 계약관계가 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준석 변호사도 "계약 관계를 위반한 사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기증자의 선의로 이뤄지는 장기기증의 특성상 민사상 책임도 묻기 힘들다는 취지다.
오히려 박지혜 변호사는 환자 측이 의료기관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의료기관의 과실로 기증을 기다리던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다.
박 변호사는 "장기 적출과 이식 수술이 보통 다른 병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긴밀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이식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라면 이 과정을 사전에 계산했어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기증자의 장기 적출이 확인됐을 때, 환자에 대한 이식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의 확인 절차에 과실이 있었다면 환자 측은 병원에 민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다.
종합하면 장기기증 철회를 법률로 제한할 수 없고, 환자가 피해를 구제받을 길 또한 마땅치 않다. 지금으로선 장기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철회하지 않거나, 장기기증과 이식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의 원활한 소통에 기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