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주치의, 수술 미룬 당직의⋯이해는 안 가지만 둘 다 처벌 피할 확률 높다
술 취한 주치의, 수술 미룬 당직의⋯이해는 안 가지만 둘 다 처벌 피할 확률 높다
"살인자 의사들과 산부인과 병원을 고발합니다" 글 올린 엄마
수술 미룬 당직의, 술 먹고 나타난 주치의⋯이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쌍둥이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갔지만, 당직의의 근무 태만과 술 취한 주치의 때문에 아이를 잃었다는 사연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양수가 터져 병원을 찾은 한 산모. 주치의가 오기를 기다리며 12시간을 버텼다. 당직의는 방관했고, 그토록 기다렸던 주치의는 술에 취한 채 등장해 수술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뱃속 아이의 심장은 멈춰버린 상태였다.
청주 소재 모 산부인과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사연. 피해 산모는 지난 21일과 22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주치의가 음주를 하고 수술하는 게 말이 되느냐", "당직의는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산모를 12시간 넘게 방치했느냐"며 함께 분통을 터뜨렸다.
믿었던 의료진에게 배신당하고 가족을 잃은 산모. 이번 사건의 전망을 의료 사건을 맡아본 경험이 많은 변호사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무겁게 답을 내놨다. 솜방망이 처벌만 가능할 것이란 지적이었다.
피해 산모는 해당 의사들의 자격을 박탈하고, 문제의 산부인과 역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야 한다며 강하게 주장했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의료진들이 방치해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선 사건관계인의 위법성이 조각나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말이었다.
법률 자문

①주치의 : 비번이었던 점, 심정지 후 수술했던 점 때문에 책임 묻기 어려워
더프렌즈 법률사무소의 이동찬 변호사는 "의료진이 술을 마시고 수술에 나섰다면 위험한 의료에 해당해 의료법상 징계행위가 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미 태아가 심정지 된 상태에서 주치의가 수술에 들어간 것이어서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주치의의 음주가 사고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과실 혐의를 벗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욱이 현행법상 의사가 술을 마시고 진료에 나서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두루뭉술하게 엮어 자격정지 등 행정처분에 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마저 대개 자격정지 1개월에 그친다.
법무법인 문장의 임원택 변호사도 동일한 의견이었다. 임 변호사는 "술을 먹느라 산모를 기다리게 한 의사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그러나 주치의가 태아의 심정지 후에 수술에 들어간 상황이라 과실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번이었던 주치의로선 응급환자를 인수할 의무가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이로써 주치의는 한 걸음 더 책임에서 멀어진다.
②당직의 : 병원 시스템상 수술 나설 수 없었다면 책임 회피 가능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이었던 당직의의 '태만'은 어떨까. 아침 일찍 산모가 병원에 왔지만 주치의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페이닥터여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임원택 변호사는 "의사에게는 진료 시기와 방법을 정할 재량이 있다"면서 "다만 피해 산모가 병원을 찾았을 때 진통이 없었고,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을 주장한다면 당직의 역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했다.
이동찬 변호사는 "당직의가 병원 시스템상 응급수술에 나설 수 없었던 상태라면, 당직의 개인보다는 병원 측의 책임이 더 크다"라고 봤다.
문제의 당직의가 피해 산모와 가족 앞에서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③ 병원 : 안일한 대처에 대한 책임 져야
두 변호사가 입 모아 이번 사건의 책임자라고 짚은 건 다름 아닌 '병원'이었다. 현재는 뒤로 빠져있지만, 이 사건에서 진짜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병원 측이라는 게 변호사들의 말이다.
이동찬 변호사는 "해당 병원이 음주한 의사가 수술에 들어가도록 방치한 자체가 문제"라며 "주치의가 비번이고 음주 등을 해서 적절한 진료를 볼 수 없었다면, 대체 의사를 신속히 배치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환자를 옮겼어야 한다"고 병원 측의 안일한 대처를 꼬집었다.
임원택 변호사도 동일한 문제를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선 병원 측이 적정한 운영과 관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피해 산모는 병원 측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짚었다.
다만 배상액은 위자료 수준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태어나지 못한 태아에겐 손해배상 권리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태아의 죽음이 산모의 노동능력 상실 등으로 인정된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생기겠지만, 우리 법원은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임 변호사는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 산모는 가족을 잃었다. 어렵사리 태어난 동생은 쌍둥이 오빠를 만날 수 없게 됐다. 회복하기 힘든 피해가 발생했지만, 당연하게 책임을 질 줄 알았던 이들 모두 유유히 빠져나가게 됐다. 명백한 사고 이후에도 해당 병원과 의사들이 당당하게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