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릴 때까진 성폭행할 생각 없었다니까요? 강간치상 적용 억울합니다"…이 주장 통했다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때릴 때까진 성폭행할 생각 없었다니까요? 강간치상 적용 억울합니다"…이 주장 통했다

2021. 04. 22 11:16 작성2021. 04. 27 12:10 수정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강간+상해=강간치상죄 아닐까? 법으로 보면 아니었다

변호사들 "범죄 간 인과관계 입증 못 하면 개별 범죄로만 처벌"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범죄였지만, 각각 나눠서 일어난 범죄처럼 판단했다

폭행, 신체 촬영, 성폭행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범죄가 벌어졌다. 1심에서는 '강간치상'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그런데 2심에서는 '강간'만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로 형이 대폭 깎였다. 왜 그런 걸까?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연락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남자의 무차별적인 폭력은 시작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집 안에 있던 가위를 들어 여자친구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후 옷을 강제로 벗긴 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곧장 도구를 이용한 가학적인 성폭행이 이어졌다. 폭행, 신체 촬영, 성폭행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범죄가 벌어졌다.


결국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성. 그는 강간치상,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협박, 상해, 특수협박,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재판받는 와중에도 "사랑해서 그랬다"와 같은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이 사건을 맡은 1심 법원(대전지법 제12형사부 이창경 부장판사)은 그에게 강간치상죄를 물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단순 성폭행이 아니라 상해를 수반한 성폭행이었으니, 강간보다 형량이 훨씬 높은 강간치상을 적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판결이 항소심(2심)에서 뒤집혔다. 지난 1월 대전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신동헌 부장판사)는 "이 사건 성폭행과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강간 혐의만을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때릴 때까지는 성폭행할 생각이 없었다 → (때리고 나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빠진 뒤 성폭행할 마음을 먹고 성폭행을 했다 → 피해자의 상처는 폭행으로 생긴 상해일 뿐, 성폭행을 위한 폭행에서 발생한 상해가 아니다 → 그러므로 강간치상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피고인 측 주장이 통한 것이다.


강간과 상해 사이 '연결고리' 없다면, 강간치상죄로 가중처벌 불가능

성범죄 사건을 자주 다뤄온 변호사들에게 해당 판결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놀랍게도 "항소심(2심) 판결의 법리에 문제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순히 성폭행과 상해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 범죄를 '강간치상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법무법인(유) 강남의 주영글 변호사는 "항소심은 피해자가 입은 상해를 성폭행 의사 없이 가해진 앞선 폭행 때문이라고 봤다"며 "강간치상죄는 성폭행으로 인해 상해를 입은 때에만 성립하기 때문에, 원심과 달리 단순 강간죄만 적용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변호사 천주현 법률사무소의 천주현 변호사 역시 "항소심이 폭행과 강간을 각각 별개의 고의로 이뤄진, 별개의 범죄로 판단했다"며 "이렇게 되면 자연히 강간치상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변호사 김연진 법률사무소의 김연진 변호사(사법연수원 43기)는 "항소심의 판단은 타당한 결론으로 보인다"면서 "강간치상죄는 결과적 가중범으로 상해와 강간이 별개로 성립되는 경우보다 그 행위의 불법성이 커서 무겁게 처벌하는 점, 이 사건과 같이 폭행 당시 강간의 범의(犯意)가 없었던 경우까지 강간치상의 죄책을 묻는다면 책임주의 법리 내지 죄형법정주의에 반할 소지가 적지 않은 점 등에 미루어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 가중범이란 ①고의로 발생한 기본 범죄가 있고 ②기본 범죄를 저지르다가 또 다른 '나쁜 결과'(예를 들어 상해)가 발생했을 때 ③형벌을 가중하는 범죄 유형을 말한다.


이 사건에 적용해본다면 강간이라는 기본 범죄로 인해(①) 상해가 발생했을 때(②) 강간치상죄가 성립한다(③). 이 연결고리가 깨지면 강간치상죄가 아니라 폭행과 강간이라는 두 개의 개별 범죄가 별도로 성립한다.


법률 자문
(왼쪽부터) '법무법인(유) 강남'의 주영글 변호사, '변호사 천주현 법률사무소'의 천주현 변호사, '심앤이 법률사무소'의 심지연 변호사. /로톡DB
(왼쪽부터) '법무법인(유) 강남'의 주영글 변호사, '변호사 천주현 법률사무소'의 천주현 변호사, '심앤이 법률사무소'의 심지연 변호사. /로톡DB


이 부분에서 원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갈렸다는 것이 변호사들의 공통 의견이었다.


원심은 폭행과 강간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상해가 발생했다고 봤다. 이와 달리 항소심은 폭행 범죄가 먼저 발생했다가 종료됐고, 그다음 별도의 강간 범죄가 일어난 것이라고 정리했다. 두 범죄 사이에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강간치상죄 구성요건을 깬 것이다.


"강간치상죄로 볼 수 있는 쟁점은 존재했다" 아쉬움 나타내기도

변호사들은 이 사건 항소심이 오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강간치상죄가 성립할 수 있는 요건도 일부 존재했던, 아쉬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심앤이 법률사무소의 심지연 변호사는 짧은 시간차로 일어난 연쇄 범죄라는 점에 주목했다. 심 변호사는 "폭행에서 카메라 촬영, 강간으로 이어지는 연속 범행 간에 시간 차이가 크지 않다"며 "이러한 사실관계를 감안하면 '강간의 수단으로 사용된 폭행으로 인한 상해'가 인정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1심에선 아예 범행 자체를 부인했었다"며 "이렇게 보면 피고인의 진술 신빙성이 극도로 떨어지는데도, 폭행 당시에 강간의 의사가 없었다는 주장을 콕 집어 인용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이 결과적 가중범의 법리적 해석에만 집중했다는 느낌이라는 게 심 변호사의 의견이다.


천주현 변호사는 "피해자가 폭행과 강간 직후에 정신적 불안이나 공황 상태 등에 처했을 게 분명한 상황"이라며 "이에 따른 피해자의 생리적 기능 훼손을 상해로 주장했다면 강간치상죄가 성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강간치상죄 혐의로 기소를 하면서, 얼굴의 멍 같은 신체적 상해만 고려한 것이 아쉽다는 평가였다. 덧붙여 특수폭행 혐의가 빠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천 변호사는 말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른 것은 명백한 특수폭행"이라며 "만약 특수폭행으로 기소가 됐다면, 설사 강간치상죄가 깨지더라도 강간죄만으로 처벌이 약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라고 꼬집었다.


특수폭행 혐의로도 기소가 됐다면, 강간죄와 함께 유죄가 선고되면서 최종 형량이 올라갔을 것이라는 취지였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독자와의 약속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