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결근에 16개월 근속 '0일' 처리…쿠팡 퇴직금 리셋, 검찰은 왜 눈감았나
단 하루 결근에 16개월 근속 '0일' 처리…쿠팡 퇴직금 리셋, 검찰은 왜 눈감았나
문지석 부장검사 '무혐의 지시' 폭로
노조 "쿠팡 주장 복사-붙여넣기 수준 불기소장"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가 16개월을 일했지만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단 한 달, 근무시간이 1시간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연합뉴스
16개월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성실히 일해온 한 일용직 노동자는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단 한 달, 기준 근무시간에서 딱 1시간이 모자랐다는 이유였다. 그가 1년 넘게 쌓아온 모든 근속 기간은 '리셋' 버튼이 눌린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는 쿠팡이 일방적으로 변경한 '퇴직금 리셋 규정'이 낳은 비극 중 하나다. 최근 문지석 부장검사가 국정감사장에서 이 사건에 대한 '무혐의 처분'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법을 집행해야 할 검찰이 왜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서명 안 하면 출입카드 없다"⋯동의 없이 바뀐 취업규칙
문제의 발단은 쿠팡이 일용직 노동자들의 퇴직금, 주휴수당 등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든 취업규칙 변경이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최효 사무장은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단 하루의 공백이 발생하면 그동안 쌓아온 근속 기간이 모두 0으로 초기화되는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는 근무 기간에 공백이 있어도 이를 제외하고 합산해 1년이 넘으면 퇴직금을 지급했지만, 규칙이 바뀐 뒤로는 11개월을 꼬박 일했더라도 마지막 달에 근무일수가 하루만 부족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경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동의는 사실상 강요에 가까웠다. 최효 사무장은 한 노동자의 제보를 인용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2023년 쿠팡 고양센터 앞에서 한 일용직 노동자가 "출근명부를 작성하는데 인사팀 담당자가 동의 서명지를 들이밀더니, 여기에 서명해야 현장 출입 카드키를 주겠다고 했다"며 다급하게 알려왔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94조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쿠팡의 방식은 충분한 설명이나 토론 없이, 출근을 볼모로 한 사실상의 '강제 서명'이었다. 최 사무장은 "내가 무엇에 대한 동의를 하는지 모른 채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서명한 분들이 많다"며 절차적 위법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검찰 불기소장에 담긴 쿠팡의 논리⋯노조 "복-붙 수준"
결국 이 문제는 검찰로 넘어갔지만, 결과는 '무혐의' 처분이었다. 그런데 국정감사장에서 부천지청 문지석 부장검사가 "윗선의 무혐의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최효 사무장은 "법대로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상식적인 문제 제기조차 자기 삶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검찰 조직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충격을 표했다.

검찰의 불기소이유서는 쿠팡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었다. 최 사무장은 불기소이유서를 직접 읽어본 소감을 묻는 말에 "쿠팡의 입장과 검찰의 입장이 거의 복사 붙여넣기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일용직 노동자는 매일 근로계약을 체결하므로 계속적 근로관계로 보기 어려워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쿠팡 측의 핵심 논리와 일치한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은 부당한 동의 절차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서류만을 근거로 "피의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끝나지 않은 싸움⋯"미지급 퇴직금 반환하고, 재수사해야"
논란이 커지자 쿠팡은 국정감사장에서 "퇴직금 기준을 원상복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의 입장은 단호하다.
최효 사무장은 "쿠팡이 스스로 모든 체불 당한 노동자들을 다 찾아서 체불임금 및 지연이자 지급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규칙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을 넘어, 그동안 부당하게 지급되지 않은 모든 퇴직금을 소급하여 지급하라는 요구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법적 다툼도 이미 시작됐다. 피해 당사자가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상급 기관에 다시 판단을 구하는 항고를 제기한 상태다. 최 사무장은 "항고가 어떻게 처리될지 가장 주목하고 있다"며, 만약 항고가 받아들여진다면 재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