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법적 분쟁으로 본 "코로나19는 천재지변인가"⋯변호사와 알아봤다
'사냥의 시간' 법적 분쟁으로 본 "코로나19는 천재지변인가"⋯변호사와 알아봤다
영화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공개 앞두고 제작사와 배급사 법정 공방
"천재지변으로 인한 계약 해지" vs. "동의 없는 일방적 계약 해지이며 이중계약"
법원은 배급사 손들어줬지만⋯코로나19로 인한 법정 비화의 시작, 술렁이는 영화계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은 "영화가 한 번 공개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상영을 막아달라"는 콘텐츠판다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해외 공개를 금지했다. 사진은 '사냥의 시간' 3월 개봉을 알리는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공식 페이스북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는 영화계에도 치명적이었다. 극장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이용 자제 지침도 이유였지만, 시민들이 감염을 이유로 방문을 꺼린 탓도 컸다. 이 때문에 "지금 영화를 개봉을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으로 100억원 이상을 쓴 '사냥의 시간'도 같은 상황에 몰려 있었다. 원래 2월 26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기약 없이 무기한 미뤄진 상태였다.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하에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에 150억원을 받고 판권을 넘겼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에 "영화를 전 세계에 서비스해도 된다"는 조항까지 동의하면서다. 당장 해외 배급을 맡은 업체가 들고 일어섰다.
'사냥의 시간'의 해외 배급사는 콘텐츠판다였는데, 이미 해외 30개국에 영화를 판매한 상태였다. 콘텐츠판다 측은 "'사냥의 시간'을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하고, 현재까지 해외 30여 개국 선판매를 하는 등 1년 넘게 진행해왔는데 넷플릭스 상영을 강행해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넷플릭스에 영화가 풀리면 사람들이 영화관에 갈 가능성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데, 콘텐츠판다 측은 이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정당한 계약 해지"라며 주장했지만, 콘텐츠판다 측은 넷플릭스에 해외 공개 권리까지 넘긴 것은 '이중계약'이라며 법원에 "넷플릭스의 해외 상영을 막아달라"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일 잠정적인 결론을 일단 내렸다. "영화가 한 번 공개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상영을 막아달라"는 콘텐츠판다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단지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정이 (계약 해지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넷플릭스는 지난 9일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사냥의 시간' 공개를 보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진짜 법적 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이 잠정적인 가처분 판단이기 때문이다. 한편,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판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 10일 긴급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의 주장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계약 해지'다. 코로나19 사태가 천재지변이니, 그로 인해 계약을 해지한 건 정당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런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긴 힘들 거라고 분석했다.
법률 자문

법률사무소 오페스의 송혜미 변호사는 계약 해지의 원인을 천재지변으로 본다면 "천재지변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계약 불이행의 원인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를 천재지변으로 보고 계약 해지가 정당하다는 사례는 드물다는 입장이다. 송 변호사는 작가 출신으로 엔터테인먼트 관련 소송을 많이 다뤘다.
법무법인101의 한상훈 변호사도 위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한 변호사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천재지변이라는 객관적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면서 "메르스나 신종플루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명확히 천재지변이라고 규정한 사례나 판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KBS PD 출신으로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콘텐츠경영학과 겸임교수다.
리틀빅픽쳐스는 3월 초 콘텐츠판다에 해외판권 계약 해지를 요청했으며 뒤이어 내용증명도 보냈다고 주장한다. 정당한 계약 해지였다는 입장이다.
콘텐츠판다의 입장은 다르다. 리틀빅픽쳐스의 계약 해지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일방적으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콘텐츠판다는 계약이 해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와 계약했으니 '이중계약'이라고 말한다.
송혜미 변호사는 계약서에 "구두 통보나 내용증명을 보낸 후 며칠 이내에 회신이 없다면 이를 승인으로 간주한다는 계약서상의 해지 조항의 근거가 있다면 (리틀빅픽쳐스가 주장하는) 계약 해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개 계약서에는 서면을 통한 해지 의사의 합치를 하도록 조항을 기재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해지 의사의 통보를 계약 해지로 보긴 어려워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송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해지가 되지 않은 상태가 되고, 이는 콘텐츠판다가 주장하는 이중계약에 해당할 수 있다.
한상훈 변호사는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판다가 작성한 계약서에 '온라인 유통(SVOD)'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따라 이중계약 여부도 결정될 것이라고 봤다. 한 변호사는 "계약에 온라인 유통 부분을 포함하지 않았다면 리틀빅픽쳐스와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이중계약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반대로) 포함되어 있다면 이중계약"이라고 말했다.
제작사인 리틀빅픽쳐스가 콘텐츠판다에 넘긴 권리가 어디까지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영화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 예정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제작사와 해외 배급사 간 다툼으로 보류하게 된 상황.
한상훈 변호사는 넷플릭스가 이 사안에 대해 문제 삼는다면 손해배상청구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 변호사는 "제작사와 플랫폼사 간의 유통 계약에는 일반적으로 진술 및 보증(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조항 등에 제작사가 제공 콘텐츠와 관련한 권리관계에 문제가 없거나 해결되었다는 내용(Rights Clearance)을 포함하고 있다"며, "만약 제3자가 권리를 주장하는 등 진술 보증 내용과 배치되어 손해가 발생한다면 플랫폼사는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송혜미 변호사도 "(리틀빅픽쳐스가) 넷플릭스에 콘텐츠판다와 계약이 해지되었다고 이야기하고 계약을 맺었다면 이중계약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넷플릭스가 이미 관련 분쟁을 알고서도 계약을 한 것이라면 손해배상청구는 어렵다고 했다.
